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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hayn May 21. 2024

정글 숲을 지나

전시 «남동아시아 오역하기: 7개의 구멍» 에세이

1. 스터디 하기

지난 여름 스터디를 시작하며 우리는 남동아시아의 다채로운 문화와 예술을 탐험하기로 결정했다. 탐험의 길라잡이로 『Charting Thoughts Essays on Art in Southeast Asia』와 『Ambitious Alignments New Histories of Southeast Asian Art, 1945–1990』의 글 중 몇 편을 선정했는데, 열 명의 필자는 남동아시아의 곳곳을 가로지르며 지난한 역사와 예술가들의 몸부림이 어떤 형상이었는지 각자의 시각에서 서술했다. 우리는 영어로 쓰인 글을 해석한 뒤 자료와 질문을 더하는 방식으로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한자나 태국어, 미얀마어 같은 비교적 낯선 언어를 해독하기 위해 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sa$6&g, Myint Myint Tin g&Egose, Tin Tin Sann oosco, Khin Myint Myint adg®g&,Aung Myint ess&f&, Khin Maung Than sss00"라던가 "#t,#l, Cheung Yee 36 # 및 Wucius Wong E#JB", "Xianggang guoji huihua shalong화된향港國際繪畫 DRE" 같은 번역할 수 없는, 일그러진 글자들의 조합은 조현아와 내가 이어온 스터디의 가장 솔직한 면을 드러낸다. 잘못된 번역, 즉 '오역' 행위는 나의 무지함과 편협한 시각을 들추는 다소 겸연쩍은 경험이었지만, 오역의 가능성은 남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불완전함을 인정하게 했다. 오류가 만드는 틈은 연구자로서 개입할 틈을 만들어주었고, 동시에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한 명의 탐험가로서 알지 못했던 지역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낯선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로 흥미로운 모험을 지속할 수 있었다.

            남동아시아로의 여정은 수많은 섬을 가로질러 생소한 정글로 잠입해 가는 것과 같았다. 마치 신대륙(이라 믿었던 것)을 발견했던 과거의 인물들처럼, 우리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번뜩이며 낮은 포복으로 무성한 수풀 사이를 헤매야만 했다. 남동아시아 스터디를 '정글'로 달리 부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남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조현아와 달리 나에게 그곳은 미술사적으로 생소한 곳이었고, 상술한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해석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또한 대상 국가의 검열이나 아카이빙의 결여, 보존 기술의 문제 등으로 추가적인 자료가 부족한 경우가 왕왕 있었고, 주로 온라인에 의존해야 했던 조사 방법은 한정적인 지식의 습득과 경험을 허락했다.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거듭된 번역과 해석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오역'을 낳았고, 우리는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탐사 과정에 즐거움과 의의를 두기로 했다. 생경한 풀과 꽃을 발견하고 반가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 엉긴 풀잎마다 남동아시아의 예술가들이 감내해야 했던 시대의 아픔과 고통이 서려 있었고, 그 잎에 맺힌 이슬은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셍유진(Seng Yu Jin)의 글 「남동아시아의 문화전쟁: 1970년대 비판적 전시회의 탄생」은 내가 '지역성'을 깊이 있게 고민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글의 서문에서 저자는 “남동아시아는 자연적인 지역이 아니라 인위적인 관념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러셀 파이필드도 그의 글 「지역 개념으로서의 남동아시아」에서 비슷한 생각을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동아시아 연구는 지역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 남동아시아 개념의 타당성은 주로 해당 지역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인식에 달려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관점을 공유했다. 그러던 중 셍유진의 글에 언급된 두 가지 용어 '지역주의(Regionalism)'와 '지역성(Region-ness)'을 남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명확히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나는 필자에게 이메일로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했고, 같은 날 그로부터 관대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셍유진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인구에 대한 충성심이나 문화적 동일성을 가정한다. 남동아시아의 경우 다양한 언어와 인종, 종교와 문화적 관습이 뒤섞여 있어서 다문화적이다. 후자는 남동아시아 내에서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및 역사적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구축된 개념으로 나타낸다."*** 셍유진과의 대화는 우리 공부에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내가 전시 ⟪밤의 터미널⟫(부평문화재단, 2024.02)을 기획하는데 단초가 되어주었다. 전시는 동시대 '부평'의 개념의 구성 방법을 질문하며 그 해답을 왕래 발착하는 부평의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고자 했다. 이는 스터디의 배움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되겠다. 최근 스터디에서는 미얀마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엄격한 검열 사례를 소개한 멜리사 칼슨(Melissa Carlson)의 에세이를 공부한 뒤, 역시 이메일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보냈다. 해외 연구자들과의 적극적인 교류는 우리가 한국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 정글 숲을 함께 헤쳐 나갈 좋은 선배, 동료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고 스터디 과정에 많은 용기를 심어주었다.


⟪밤의 터미널⟫(부평문화재단, 2024.02) 전시 전경

  

            이렇게 남동아시아의 역사와 예술을 톺아보는 일은 얽히고설켜 있는 세계의 지배구조와 체계를 읽는 일이었다. 우리는 남동아시아를 봄으로써 미국을, 영국과 프랑스를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보았다. 전쟁과 식민의 역사가 증명하듯 각 국가는 결코 균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힘의 차이는 균열을 만들고 불공정한 착취가 자행되는 것을 허락했다. 식민 제국은 주권을 찬탈하고 이념을 주입함으로써 남동아시아의 대립과 분열을 지속하게 만들었고 빈곤의 늪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혼란의 틈에 내부의 권력자들도 제 몫을 챙기기에 바빴다. 폭력적인 군홧발은 자유를 짓밟고, 권위적인 독재 정권은 검열의 날을 벼렸으며, 자욱한 담배 연기에 여성의 모습은 흐려져 갔다. 무자비한 권력은 자신들의 모습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표현하기를 요구했다. 푸른 초원에서 여유롭게 가축을 먹이거나, 수려한 용모의 농민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밭을 매고, 여신 같이 묘사된 여성이 풍요로움을 자아내는 것이 그 예다. 우리의 공부는 남동아시아의 아름다운 해변에 반짝이는 윤슬과 청량한 야자수가 허상이었음을, 이러한 이미지가 치욕을 망각시키고 아픔을 덮는 고운 보자기일 뿐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얼룩진 역사의 물결 속에서 남동아시아 사람들, 그리고 예술가들은 무기력하지 않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찾아 부지런하게 항거했다. 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그림을 내걸었고, 엘리트들은 서양의 지식과 기술을 배워 현지의 생활에 접목하고자 했으며, 억압받던 여성들은 검열의 낙인을 피해 외부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그리고 강가우 빌리지에서 대학생들이 동지애를 다졌듯이,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단체를 조직하여 순회 전시를 다니며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모색했다. 남동아시아의 자각 있는 예술가들은 전략적으로 사회에 관여하면서 민주주의 이룩과, 경제 발전 및 국가 건설과 관련된 지식의 최전선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했다. 그들의 실천은 쉬는 법이 없었고, 투쟁의 깃발은 오늘날에도 휘날리고 있음을 목도한다. 한편, 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탐험을 시작했던 나에게 수치—남동아시아를 편협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나의 태도에 대한 수치, 무지에 대한 수치, 그리고 오역의 수치—이기도 했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동아시아 알기를 지속했다. 


2. 전시 만들기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냉전, 대공황,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 등 세계의 굵직한 사건과 남동아시아 나라들의 역사를 나열하고 비교했다. 연대기적으로 남동아시아와 주변의 관계를 살피는 과정에서 우리는 남동아시아 도처에 새겨진 일곱 개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식민, 현대, 영어, 시대, 기술, 종교, 추정으로 정의한 구멍은 남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주조하는 벽돌의 곳곳에서 마치 곰팡이 포자처럼 발견되었다. 이식되고 뚫어진 구멍은 빠른 건설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모르타르 틈새를 파고들어 구조를 썩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역의 재료, 이를테면 대나무 같은 요소는 그 질김과 유연함을 내세우며 구멍이 만든 빈 곳을 엮었다. 덕분에 남동아시아는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 죽은 괴물인 '혼란'처럼 쉬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연대기를 추적할수록 각 국가의 지역적 특성이 더욱 뚜렷해졌다. 지역의 다양성과 불안정한 이질성으로 맞물린 경계를 넘나들며 지역성은 동시대를 우회한다. 남동아시아의 국가들은 동시대라는 환상을 거부하며 저마다의 속도로 각자의 서사를 써갔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디자인 작업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스터디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덕분이었는지 생각보다 빠르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래픽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는 조현아가 발리에서 마주한 야자수다. 조현아는 리조트 울타리 안에서 자라난 야자수를 보며, 어딘가 처량하고 꿋꿋한, 거칠고 지친 느낌을 받았음을 회상했다. '넓은 바다를 바라만 보며, 그곳으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을 오롯이 견디고 있는 나무가 남동아시아의 얼굴 같았다'는 그녀의 감상은 이번 전시의 많은 것을 축약하고 있다. 나는 반짝이는 모양으로 남동아시아를 감싸고 있던 화려한 포장지의 단면을 그려냈고 동시에 예쁜 반짝이들이—루빈의 꽃병이 착시를 일으키듯—구멍을 만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일곱 개의 구멍을 찾는 과정에서 지도가 되어준 남동아시아의 연표를 관람객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리플릿을 가로로 길게 만들었고, 전시장에도 벽면 가득 남동아시아의 역사를 기록했다. 특히 이번 전시의 시발점이 된 '스터디' 라는 특징을 살리고자 노트의 형식을 빌렸는데, 관람객들이 각자 찾은 구멍을 리플릿에 표시하며 우리의 여정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루빈의 꽃병(Rubin vase) 또는 루빈의 얼굴(Rubin face)과 전시 디자인에 사용된 그래픽
리플릿 디자인 초안
전시장 답사 후 수정된 구성
디자인 아이디어를 반영한 초기 전시 공간 디자인


3. 여정 이어가기 

구멍을 통해 본 남동아시아의 이야기는 적응의 과정이자 주체적인 전략의 실천임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남동아시아는 단지 아시아의 남동부에 위치한 어느 지역이 아닌 투쟁이자 갈망이자 염원이자 예술의 총체이다. 나는 그들의 서사를 오역하는 행위가 승자가 만든 완전한 역사에 균열을 내고, 지역에 기반한 새로움을 가져오리라 믿는다. 조현아가 내가 헤쳐온 혼란의 숲이 이곳 전시장에 펼쳐질 때 군데군데 나버린 구멍이 다음 여행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우리는 묵묵히 정글을 지나가고 있다.



* "It is critical to acknowledge that Southeast Asia is not a natural region but an artificial notion—a social construct—born from a collective social imagination and geography in terms of territo- rial proximity, economic exchanges and inter- territorial movement of peoples." Seng Yu Jin, Cultural Wars in Southeast Asia: The Birth of the Critical Exhibition in the 1970s, Charting Thoughts, National Gallery Singapore. (2017) p.214 > > >
** "Southeast Asian studies are founded on the regional concept. [...] The validity of the concept of Southeast Asia rests largely on past and present political perceptions of the area as a region." Russell H. Fifield, Southeast Asia as a Regional Concept, *Southeast Asian Journal of Social Science* Vol. 11, No. 2, IDEOLOGY IN SOUTHEAST ASIA (1983) p.12 >
*** "'Regionalism' assumes a sense of loyalty or cultural identification with a more or less homogenous population. In the case of Southeast Asia, it is culturally diverse with multiple languages spoken and different cultural practices. 'Region-ness' denotes a consciousness of such cultural, social and historical diversities within Southeast Asia as a constructed concept." 문혜인과의 메일 내용 중 발췌 (2023. 9.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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