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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Aug 09. 2022

외롭고 괴롭고 슬퍼서 쓰는 글.

누가 봐도 읽기 싫은 글을 나는 쓴다. 올해 초여름부터 다시 조증삽화가 발병되어 별 용천 지랄을 다 했는데도 아직도 병증은 진행 중이다. 기분의 상승과 하강이 몇 주마다 반복되고, 다시 상승할 때마다 조증삽화의 강도는 더 심해지기만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조증삽화는 이미 스물 초반에 시작된 게 맞다. 그때는 우울증인 줄 알고 우울증 약만 먹었었다.


스물 초반, 여름 언저리의 내 방을 생각한다. 나를 생각한다. 팬티가 다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에 짙은 화장을 하고 대학 수업을 나갔고, 혹은 수업을 아예 나가지 않았다. 당시 내 방 네 군데의 벽은 물감으로 그려진 기괴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나체를 마티스 풍으로 그린 그림부터 시작해서 남자 성기를 그린 그림, 만난 남자들을 그린 그림, 기괴한 폭탄을 그린 그림 등. 뭐가 뭔지 찾을 수도 없는 더러운 책상, 발 디딜 틈도 없이 만화책으로 가득찬 바닥. 매일마다 춤을 추고, 매일마다 술을 먹었다. 그러다 지옥같은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양극성 정동장애인지도.


외롭고 괴롭고 슬프다. 조증삽화 때 일어난 일들은 브런치에 자세히 쓸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지저분하다. 나는 결국 여러가지 일들을 저질렀고, 그중 몇은 접었고, 몇은 아직 진행 중이다. 나는 한 끼 먹는다. 나는 잠을 적게 잔다. 나는 과도하게 '어떤 것'에 집착한다. 스쳐갈 인연과 두고 볼 인연을 구분하지 못한다. 전 남편은 아이로 맺어진 관계임에도 자진해서 끊어 버리더니, 스쳐갈 인연들은 간절하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뇌가 망가져 버린 걸까. 금요일날 한양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간다. 지금 나는 메스껍고 토할 것 같다. 얼른 병원에 가고 싶다. 날 좀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 가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해서 침대에 묶어 놓고 빨대로 밥을 먹어도 좋으니, 날 움직이지 못하게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외롭고 높고 고독하고 싶다. 나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이를 재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잘못으로, 이런 엄마를 갖게 된 걸까? 하고. 어쩌다 보니 나를 엄마로 두긴 했는데, 어쩌다 보니 천륜으로 엮이게 되었는데, 이럴 수가. 아이는 분명 언젠가 나를 원망할 것이다.


지독하게 긴 머리카락을 지닌 나. 지독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나. 나는 나와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케이스다. 나와 딱 붙어 있다. 혹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동동 기분 좋은 그 거리감 유지를 잘 못한다. 쓰러지는 나, 기어가는 나, 다시 일어서 허우적허우적 걸어가는 나. 그런 나를 봐야 한다.


저녁에 아이 손을 잡고 유아 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고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사탕을 사러 가기도 했다. 오는 길에 커피와 얼그레이 시폰 케이크도 샀다. 저녁을 다 챙겨 먹자마자 아이는 "엄마, 케이크 같이 먹어요" 했다. 나는 "OO이는 이제 케이크 산 것도 기억하는구나!" 하고 놀랐다. 아이의 발달에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는 점점 자라나고 커가는데, 나는 아직도 그 조그맣고 가냘프게 떨던 한살배기 아기로 기억하고 있으니. 아이를 재우고 어두운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눕자마자 외로움과 괴로움과 슬픔이 몰려왔다. 곧장 베란다로 가서 담배 하나를 피운다. 점심 때 들은 오아시스의 샴페인 수퍼노바를 읊조리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누가 봐도 읽기 싫은 글을 나는 다시 쓴다. 내 책상을 본다. 라이터와 콘돔과 조울증 약이 뒹굴고 있다. 이 지독한 일상을 나는 꾸역꾸역 남들에게 전시하기 위해 글을 쓴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쓴다. 안으로 욱여넣는 울음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쓴다. 살아 있는 나를 느끼고 싶어서 쓴다.


아이의 다리에 난 여러 곳의 모기 물린 자국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부드럽고 벌겋고 도톰하게 올라온 그곳은 내가 모기에 물렸을 때와 똑같이 반응한다. 귀엽다고 느껴 풋, 웃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를 보면서, 대체, 너는, 왜,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거니, 하고 물어보았다, 조그맣게. 아주 조그맣게.


젊음은 고갈되고, 여름은 끝난다. 입추가 도래했다. 새로운 글은 읽기 싫고, 낡은 글은 지친다.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 하나 없는 폰을 나는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다. 보낼 수 없는 편지를 계속해서 부치고 있다. 나조차 나에게 가닿지 못하는데, 내가 누구에게 가서 닿을 수 있으리. 이제는 마른 내 몸을 봐도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비쩍 마른 팔과 다리를 보면 괴물같다는 생각만 든다. 납작해진 엉덩이를 벽에 비벼 본다. 뼈가 부딪히는 게 느껴진다. 그래, 나는 오늘 점심에 새우버거를 먹었지. 감자튀김은 다 남겨서 버렸지. 저녁은 아이와 함께 먹은 케이크 한 입이 전부다. 우리집에는 물도 없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서 가래 섞인 기침을 하루에 몇십 번은 한다. 내 글에 묻어나는 우울의 냄새를 꼭 남에게 묻혀야만 하는 걸까, 하는생각에 잠시 빠졌다가, 나는 다시 쓴다.


나는 다시 쓴다. 어떤 이는 도취된 행복에 잠겨 있고, 어떤 이는 닥쳐올 시험에 대비하고 있으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꽃을 샀다고 한다. 내 우주는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이렇게 꾸려져 버렸는데, 나는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널 일으킬 사람은 이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 뭘 어떡하냐고 징징대. 네 몸에 담긴 네 영혼, 한때는 빛났던 영혼, 그 혼을 다시 일으킬 사람은 이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가 되고 싶다던 너는 어디 갔니.


넌 아직도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가 되고 싶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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