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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May 08. 2024

이제야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 사람과 연락을 안 하게 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나는 그동안 새로운 공부에 매진해 애써 그 사람을 잊어 보려고 노력했다. 공부에 빠져 있는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만난 날, 나는 마지막으로 연애 편지를 썼다. 좋아해요, 하고 끝난 그 편지는 무참히 밟혀졌다. 찢어 버리라고 했으니까 이미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을지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나는 이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마치 최종의 최종 파일을 제출하는 것처럼 그 사람과 만났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하면서. 하나의 문은 결국 닫혀 버렸다. 내가 닫았다. 그러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데, 다른 문이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집 안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울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울다가 한숨을 쉬다가 담배를 피웠다가 왔다갔다 했다. 드디어 내가 이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제야, 이제서야 이별을 인정한 것이다. 그 많은 시간들이 있었는데도 나는 마음 정리를 못하고 그 사람에게 매달렸고, 사랑이라고는 없는, 시체같은 그 사람의 육체만 어루만졌다.


어째서 난 이렇게 느린 걸까. 어째서 난 이별하는 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걸까. 막상 헤어졌을 때는 눈물도 안 나더니, 왜 한 달이나 지나서야 눈물을 흘리는 걸까. 마음의 구멍 난 곳을 바라보게 되었을까. 그 사람과 함께했던, 다정했던, 그래, 한때 다정했던 그 사람의 모든 행동과 사소한 선물들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이별하고 나서 받은 꽃, 이별하고 나서야 준 편지. 모든 게 의미없어졌다. 되도록이면 브런치에 그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아 버둥거렸는데, 오늘은 써야겠다. 써서 내 마음을 훌훌 털어버려야겠다.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하고, 내 브런치를 찾아와줄까. 최미야를 검색해서 내 브런치에 들어와 내 글들을 읽어볼까. 그 사람은 나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내 브런치를 알아서 검색해 들어와 구독을 했다. 난 그때 좀 소름이 돋았었다. 그 사람의 왕성한 호기심과 나에 대한 관심이 생경하게 느껴졌었다. 어째서 다정함은, 따뜻함은,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되는지. 그토록 짧은 기간을 만났는데도, 이렇게 강렬하게 하나하나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지. 나쁜 건 생각나지 않고 좋았던 것만 생각나는지. 바보같고 미련스럽다, 이런 내가.


이제야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다. 겨우 겨우 발버둥쳐서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독서모임 한 곳을 탈퇴했고 쓸데없는 남자들의 연락처를 다 지워버렸다. 내 마음 청소를 하지 않으면 나는 묵은 때가 낀 것처럼 무거워질 테다.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그 사람을, 그 사람과의 추억들을. 그런데도 잘 되지 않는다. 추억들은 방울방울 내 담배에서, 내 몸에서, 내 마음 끝에서 달랑거린다. 그 사람이 내게 준 것들을 모두 다 모아서 다 버려 버렸는데도, 그 사람의 체취나 그 사람의 몸에서 느껴지던 온기 같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정한 말투, 조신하게 음식을 먹는 버릇, 왼손잡이인 것까지 하나하나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은 그토록 사소한 데서부터 시작되는지. 큰 게 아니다. 작은 것들이 내 마음속에 박혀 씻어지지 않는다. 나는 두 번을 크게 울고 소리내어 이별 노래를 따라 불렀다. 눈물이 주룩주룩 뜨겁게 흘렀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처음 터진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이별을 고하는 눈물. 그 눈물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눈물. 그 눈물은 이제 내가 진짜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눈물. 그렇다. 이별의 끝에 선 눈물방울들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내 마음은 마치 세례를 받은 듯 깨끗해졌다. 아직 지우지 못한 그 사람의 흔적들을 나는 굳이 삭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전화번호. 잊혀지지 않는 그 빌어먹을 숫자들. 지금이라도 메시지를 하면 답장을 할 거라는 걸 아는 나는, 절대 연락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 내 마음을 정리했다고 통보하는 식으로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 봤자 같은 말의 번복일 뿐이고 나만 더 우스워진다. 나 혼자 삭여야 되는 것이다. 이별은.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그 사람의 체온. 날 안아주던 큰 팔과 품. 내가 좋아했던 가무잡잡한 그의 피부. 몸. 말투. 목소리. 그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웠다. 미야야, 하고 날 불러주던 그 사람의 목소리를 떠올리자면 눈물이 차오른다. 다정하게 미야야, 하고 불러주었던 게 대체 언제인지. 미야야, 미야야, 미야야. 수백 번은 들었을 그 말들이 이토록 크게 남아 잊혀지지 않는 건지. 차라리 버리지 말걸. 받은 선물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을걸. 그 사람이 사준 것들을 그토록 한번에 다 내다 버리지 말것을. 그 모든 것들은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었을 텐데. 멀리서도 나를 만나기 위해 매번 운전을 해서 와 준 그 사람의 마음을, 나는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한창 좋았을 때, 사귈 때, 서로가 서로를 향해 있을 때, 나는 왜 그때 몰랐을까. 내 병증 때문에, 내 지랄맞은 성격 때문에, 배려심 없고 이기적인 내 성질 때문에 점점 더 그 사람이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왜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이제 사랑이라고는 없는, 그 시체 같은 사람인데도,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만 더 만나서 어루만지고 바라보고 말을 건네고 싶다. 아니,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별이란 이토록 가혹한 것. 오래 가는 것. 나는 아직 이별 중이다. 그래, 전남편을 떠나보냈던 것처럼 또 나는 한 사람을 떠나보낸 것이다. 이 아픈 마음들을 나는 필사적으로 다독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는다. 내가 살아야 한다. 내가, 이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 기필코 살아남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는 울컥하는 마음들을 애써 누르려고 하지 않으리. 울면 우는 대로, 멍하면 멍한 대로, 그대로 있을 것. 그대로 그 사람을 떠나보낼 것. 잘 보내 줄 것.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나요. 그 마지막 인사말이, 나를 또 아프게 했다. 내게 좋은 사람은 당신인데, 왜 당신은 내게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하나요. 왜 당신은 날 사랑해 주지 않나요. 왜 당신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나요. 왜 당신은 나를 소중히 여겨 주지 않았나요. 미안해요. 내가 저지른 모든 행동들 때문에 그 사람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내 탓을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 둘 사이의 일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내밀하고 은밀하고 치밀하고 비밀스럽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우리 둘만이 아는 그 세계를 다른 누구하고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 오로지 그 사람의 기억에 내 좋은 점들만 남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실수를 했고, 많은 상처를 주었다. 온 몸에 생채기를 내고 칼로 쑤셔 버렸다. 그 사람은 내게 말했다. 난 살면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너 때문이라고. 미안했다. 정말 미안한데도 나는 그 사람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껍데기만 남은 채로 1년여의 시간을 보냈고, 그동안 내 영혼은 멍들어갔다. 사랑받지 못한 채로 그 사람과 몸을 섞는 일은 정말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 짓거리를 이제 그만두지 않으면 난 영혼이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그 사람과 연락을 끊어 버렸다. 잘한 일이다. 잘한 일이야. 그래, 잘했어, 미야야.


난 이별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아프고 힘들다.

그렇지만 결국 이겨내야 한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별을.

헤어짐을.

떠나보냄을.

닫힌 문을 뒤로하고 이제는 새로운 문을 열 시간이다.

가자,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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