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슬플 때, 기쁠 때, 외로울 때, 내 친구가 되어 주는 글. 해방과 동시에 나는 글을 찾았고, 글은 내 안에 계속 살아 숨쉬고 있었다. 글은 나를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내가 외면했을 뿐, 글은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골짜기에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그 골짜기를 걷는다. 험난한 지형일지언정 나는 발걸음을 놀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너 거기 있었어? 응. 여기 있었어. 푸른 원피스에 입에는 말보로 블랙후레쉬를 물고, 손에는 아이스카페라떼를 들고, 내가 좋아하는 캠퍼 부츠를 신고 터벅터벅 걷는다. 온 세상이 노랗다. 나는 오랜 기간 방황했었던 방랑의 시간들을 멈추고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이 내 작은 공간 안에서 나는 온 우주와 소통한다.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의 빛을 다 받는 듯하다. 모든 어둠과 친구가 된 듯하다. 나는 크게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싶다. 나 살아 있다고, 나 돌아왔다고.
나는 많이 아팠다. 자지 않고 먹지 않고 씻지 않고 밖으로 밖으로 나다녔다. 내 사고와 언어는 쉽게 와해되었고, 한 문장 한 문단으로 압축할 수 없을 만큼 쉽사리 팽창되었다. 나는 도저히 그것들을 한데다 모을 수가 없었다. 메타포적으로 표현해 낼 수가 없었다. 내 어둠이 너무나 깊고 짙어서, 글을 쓰면 피처럼 붉게 뚝뚝 흘러내렸다. 그런 피같은 글을 쓰고 나면 나는 곧장 삭제하고 말았다. 너무 아파서, 도저히 대면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이제는 피같은 글 말고, 밥같은 글을 쓰고 싶다. 몽글몽글 김이 솟아나는 그런 글,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그런 강력한 주문같은 글들을 말이다. 내 안의 강함을 확인하고 싶다. 내가 세상으로 줄 수 있는 영향력을 체감하고 싶다. 그래, 나는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고, 수련하는 구도자이다. 어쩔 수 없다. 오아시스가 그랬다. "나는 수영을 못하지만, 내 영혼은 절대 물에 빠지지 않아." 내 영혼은 항상 글을 향하고 있었다. 이 자신만만한 40대의 여자가 앞으로 어떤 글을 쏟아낼지 지켜보시라.
작은 방에서 세 살짜리 아이와 함께 떨고 있던 나를 생각한다. 이혼 직후에 둘이 남겨져서, 그렇게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던 나를 생각한다. 이제 아이는 전남편에게로 갔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물론 아이와 나는 이어져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나 자신을 비하하기에 나는 너무나 건강해져 버렸고, 스스로를 자책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긍정적인 인간이 되었다. 조울증이 다시 재발하지 않게끔 건강에 유의하면서, 항상 나를 관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끊임없이 읽고 쓴다. 그래야 한다. 쓰는 행위는 명상하는 것과 똑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면서 글쓰기만의 호흡을 내쉬고 들이마신다. 생생함을 글자로 찍어 누른다. 한여름의 햇살을 훔쳐 본다. 짙은 담배 연기 사이로 내 망상들이 둥둥 떠다닌다. 망상들은 내게 따뜻한 바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우르릉 쾅쾅! 하며 우짖는 천둥소리가 될 수도 있다. 내 손끝에서 쓰여지는 이 모든 언어들이 유의미하길 바란다.
내 영혼의 색깔은 무지개. 내 눈빛은 또렷하고 영롱하다. 나는 뭉게구름 꿈을 꾼다.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글을 쓴다. 내가 사랑하는 글을.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는 글을 쓴다. 심연을 들여다보며 쓴다. 내 가장 어둡고 축축한 곳에 가본다. 그렇게 내 마음을 방문하는 과정이 글을 쓰는 일이다. 당신의 마음을 자주 들락거려주어라. 그리고 표현해 보아라. 나는 지금 승리의 깃발을 지고 전장 앞으로 용감히 발을 내디딘 병사이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란 말이다. 어떤 글이든 좋다. 내지르자. 벗어던지자. 발견하자. 내 글 속에서 반짝거리는 영혼의 편린들을. 난 긴 여행을 마치고 방금 집으로 돌아왔다. 홈 스위트 홈. 방랑자에게도 집은 있다. 내 집은 글이라는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 내가 있어야 할 시공간. 숨쉬기 위해서 쓴다. 살기 위해서 쓴다. 살아남기 위해서 쓴다. 글쓰기는 치열한 생존 기록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쓴다.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는 오늘도 즐겁게 지저귄다. 내 슬픔에, 외로움에, 지독한 고통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애쓴다. 괴팍스러운 조증이 나를 찾아올 때, 나는 다시금 심호흡을 하고 눈을 부릅뜨고 스스로를 살필 거다. 어김없이 글을 쓸 거다. 글쓰기는 나의 힘, 나의 희망, 나의 고독. 당당히 부르짖겠다. 과히 이 인생 잘 살아낼 수 있다고, 난 자신 있다고. 록큰롤에 머리를 흔들며, 한여름의 소나기를 입에 머금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미친듯이 배를 잡고 웃으며.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신성스러운 기운들을 나는 믿는다. 나를 감싸는 이 따스하고 다정한 오라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 그 기운 안에는 내 딸의 웃음 한 스푼, 나의 눈물 한 방울,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먼지 한 톨이 들어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쿠바 해변에 떨어진 조개껍질 하나에도 내 영혼이 깃들어 있다 믿는다. 새벽이 끝나고 맑은 아침이 돌아오면 나는 떠나고 없을 것이다.
자, 보아라. 나는 망망대해의 한 섬 위에 우뚝 서 있고, 주변은 온통 천둥소리로 가득하다. 언제고 폭우가 쏟아질지 모르는 이때, 나는 오히려 하늘을 향해 얼굴을 치든다. 온몸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나고 있고 발걸음은 점점 지쳐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좋은 기운이 감돈다. 내 얼굴에는 미소가 만면해있고, 내 가슴은 당당하게 펴져 있다. 낡고 스러진 나는 이제 버렸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내 건강한 팔뚝으로 힘차게 수풀을 젖히고 나아간다. 끝없는 열대우림 속에서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커다란 나무 위에서 잠을 청해 보기도 하고, 동식물들과 말없는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지쳐 있기에 내 눈은 너무도 생생하고, 마음은 저 멀리 하늘 위의 구름처럼 두둥실 떠 있다. 해방 선언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내가 사랑하는 이 글로 돌아오기 위해. 그 여정은 아프고 슬프고 외로웠지만 이제 난 위풍당당하다.
상처는 아물었고, 이제 움직일 시간이야.
다시 한번 이 세상에 출사표를 내던져.
누구보다도 멋지게 걸어가.
너만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