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고독하고 외로워서 몇 시간을 내리 울었다. 내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찌 어른은 이다지도 혼자서 끌어안아야 하는 걸까. 어찌 어른은 이다지도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 할까. 성마르게 섣불리 아무 사람에게나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고, 연락하면 나만 바보 될 것 같아서 꾹꾹 참았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내 불안과 고독의 감정들을 나 혼자서 온전히 삭여야 했다. (결국 하이볼 한잔을 하고 아픈 머리를 쥐어짜며 잠에 들었다) 부모가 있어도, 딸이 있어도, 연인이 있어도, 친구가 있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내 내면의 문제들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혼자 미치도록 울고 발악하고 난리를 쳐도 그 감정들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말 차갑고, 정말 야속하지만 사실이다. 난 그런 끔찍한 밤을 어제 한번 건너왔다.
힘들어서, 힘들어서 괴로울 때 딸의 사진을 보고, 딸과 영상통화를 했다. 그러니 눈물이 더 났다. 내가 밤을 무서워하게 된 지 거의 2주가 지난 것 같다. 조증 삽화가 시작된 걸까, 나는 더럭 겁이 난다. 밤이 정말 싫다.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밤이 너무나도 싫다. 낮 동안에는 태양이 내뿜는 열기에 취해 머리가 마비되어서 그런가, 밤에 풀리는 공기들로 인해 영락없이 나는 무너진다. 나는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조금 죽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죽어간다. 어제 저녁은 특히 심했다. 내 마음속 어딘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표면적인 문제들보다도, 내 안의 근본적인 불안과 고독이 나를 계속 할퀴어댔다. 그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못했다. 나는 또 나 스스로를 구했고, 살아남았다. 나밖에 없는 것이다.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여, 울지 마. 울지 마...
그렇게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고 침을 닦고 일어난 나는, 종합비타민을 챙겨 먹고 어제 먹다 남은 한우 스테이크 샐러드 그릇을 치우고, 우편물을 확인하러 갔다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오늘 오후쯤 며칠 전에 주문했던 팬티 두 장이 오고, 내일은 딸이 온다. 내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려면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 하는 것이다. 뭐든 하는 거다. 분리수거를 하고, 빨래를 하고, 독서를 하고, 밥을 먹고. 아, 오늘 원래 당근 모임 사람들과 약속이 잡혀 있었는데 어제 급히 취소를 했다. 도저히 이 기분으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져 있는 내 모습은 나만 보는 게 낫다. 사람을 통해 받는 에너지가 크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내 안의 감정의 소용돌이 상태로 볼 때, 이건 절대로 사람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그래, 내 문제가 뭐 그리 큰가. 난 그저 인간관계로 이리저리 흔들릴 뿐인데.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다 잘하고 있는데 뭐가 문젠가. 나는 아무리 불행하고 힘들어도 남의 불행으로, 남의 비탄을 엿보는 것으로 기분이 나아지고 싶지 않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우위에 서 있다고 느끼고 싶지도 않다. 난 집요하게 견디며 이겨내고 싶다. 나 혼자 스스로 서고 싶다. 엄마의 안 좋은 버릇이 그거다. 꼭 남의 불행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리는 살 만하니 너무 걱정 말자, 하고 말한다.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남들의 인생과 비교 분석해서 내 인생 올려치기 하는 비열한 짓은 하기 싫다. 이 지구별에 사는 인간들 중 뭐가 그리 잘나고 못난 게 있다고 비교를 하며 내 인생 올려치기 내려치기를 하겠는가. 난 나 홀로 서야 한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뭐가 되었든 말이다.
조울증이 이렇게 지랄맞다. 조증인가 싶으면 우울증이고, 좀 평온기에 접어들었나 싶으면 조증이다. 약을 상황마다 매일 바꿔 써야 하고, 고혈압이나 당뇨약처럼 매일마다 먹어야 한다. 수시로 내 기분 체크를 해야 하고 수면 패턴을 체크해야 한다. 정말 힘든 병이다. 왜 이렇게 지랄맞은 병에 걸렸나 한탄해봐도 소용없다. 이미 걸린 걸 어떡하겠어. 조울증 환우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 병과 맞서싸우는 게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일인지. 얼마나 종잡을 수 없는 병인지. 다들 힘내시라. 힘내시라... 계속 우울증세가 지속되면 병원 예약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어떡하겠어. 내가 안고 가야 할 병인데. 내 지병인데. 내가 스스로 관리해야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데. 내가 스스로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지, 뭐.
좀 더 정숙하고, 좀 더 바르게 걷기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힘내자! 하고 으라차차 일어설 수 있기를. 비틀비틀거려도 넘어져도 스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그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 의지하지 말고 나 스스로 내 단도리하는 법을 알아서, 높고 깊고 고독해져 본다. 난 또 싱그러운 딸의 얼굴을 보면 미소 짓겠지. 엄마가 끓여주시는 된장국에 음! 하고 감탄사를 내뱉겠지. 그래, 좀 더 바르게 걷기를 바라 본다. 오늘 점심 뭐 먹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고, 빨래를 널 수 있는 체력이 있음에 감사하고, 내일 딸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자. 감사하자. 그게 뭐든. 감사하자.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어제 저녁은 너무 슬펐어.
그렇다고 오늘을 살아가지 못할 이유는 못 돼.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야,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야,
일어나렴.
주위를 휘 둘러보고 한 번 날아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