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한번 시원하게 놀다가 가보자. 딱 한 번 살고 죽을 인생 신나게 한판 뛰다가 가자. 문득 모든 것에 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다 사라질 것들, 다 죽어 없어질 것들 아닌가. 순간이 영원이 되는 찰나가 온다지만 우리는 원래 별의 자식들로 어차피 무로 돌아갈 것들. 너무 한 치 앞에 매몰되지 않고 멀리 생각해 보자는 거다. 일이 뭣같이 힘들어도, 삶의 무게가 저 지하까지 내려가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다 죽어 없어질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나아진다. 그래, 물론 우주에 내던저진 나란 존재는 굉장히 특별하다. 특별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다 똑같아진다, 결국엔. 누가 돈을 더 벌고 더 배웠고 더 잘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암묵의 살인자인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시간. 그 야속한 것. 우리는 확실히 죽는다. 어쩌나, 나는, 나야말로 이 생을 똑바로 직시하며 뚜벅뚜벅 걸어나갈 것이다. 외면하고 회피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맞선다. 돌아보면 난 정말 용감한 인간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그렇기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 현재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너무 소중해서 아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어쩜 이렇게 우리는 찰나를 살까. 안타까울 지경이다. 두 눈 부릅떠야 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난 미련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무섭게, 불타오를 만큼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 이 새 아침이 그저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매 순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여기에, 지금 살아 있다는 것만큼 대단한 축복이 어디에 있는가. 내 특별함과 평범함을 알고, 내 존재에 감사하며, 살아 숨쉬는 자체에 경탄해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경탄해야 한다, 매 순간. 딱 한 번이기에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삶. 놀랍지 않은가.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의 작고 큰 선택들이 무수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재밌지 않은가. 누군가 툭 던져준 이 생이라는 놈, 정말 재밌지 않은가. 그러니 한 판 잘 놀다 가야 한다. 마치 딱 한 번만 상영하는 연극을 하는 배우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 봐야 하는 게 이놈의 인생이라는 거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아직도 휘청이는데, 나는 뭣도 모르고 또 다른 생명을 덜컥 이 세상에 내놓아 버렸다. 내 딸도 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것 같은 삶을 살아내다 죽어가겠지.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서. 그러나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라질 것들이지만 반짝 하고 살다 가는 이 생이 인간에겐 결국 축복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겠지만 갈 때가 되면 모든 순간이 축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테지. 그러니 난 언제 이 여행을 끝내고 아쉬울 게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겠다. 망설이지 말고 인연을 만들고, 떠나갈 인연은 붙잡지 않으며, 미련두지 않으며, 새로운 인연은 반갑게 맞아들인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즐겁고, 밤이 오면 밤의 기운에 휩싸여 그 공기 내음을 들이마실 수 있음에 즐거워해야 한다. 내 꼴을 알고, 내 분수를 알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만 한다.
내 글도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난 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난 글을 쓰면서 살아 있다고 느낀다. 내가 내 기능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글로 내 생각을 풀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잠시나마 글을 만지는 일을 했다는 것도 뿌듯하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직종으로 바꾸어 돈을 벌고 살아가고 있지만 절대 글은 놓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글에 대한 내 의지와 사랑을 느낀다. 그래, 난 존나게 명명백백히 살아 있다. 기뻐서 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다. 시작은 어설플지언정, 얼렁뚱땅 엉망진창이어도 좋다. 시작만 하면 난 더 견고해지고 기민해진다. 난 시작하는 데 주저없는 사람이다. 끈기도 있다. 용기도 있다. 난 정말 대단하다. 내 자아상은 원래부터가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낙관적이며,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나아가려는 성질머리를 갖고 있다. 내가 일단 선택하고 추진하면 아무도 날 말릴 수 없다. 그 끝이 실패든 절망이든 성공이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시작하고 노력하고 해봤다는 데 의의를 두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은 키스와, 더 많은 눈물과, 더 많은 다정함을. 내가 아직 엄마 뱃속 씨앗이었을 때, 그때부터 품어온 자그만 희망을 잊지 않을 것. 그래, 난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 난 충분히 강하다. 내 안에 끌어오르는 생명의 의지를 느낀다. 아주 작은 불꽃이지만, 그래도 조용히 타오르는 그 불꽃을 나는 사랑한다.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한다. 내 꼴을 사랑한다. 내 본을 사랑한다. 내 지난 족적이 남긴 상흔조차 사랑한다. 제아무리 사특한 뱀의 무리가 날 위협한대도 내 우뚝 선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용감하게 나아가겠다. 앞장서겠다. 젠장할, 나는 내가 나인 것이 너무 좋다. 그렇게 수없이 짓밟혀왔건만 다시 일어나 살아갔던 나 자신, 너무 대단하다. 난 사람의 꼴을 너무 사랑해. 사람으로 태어난 게 너무 좋다. 어리석지만 아름다운 것들, 언젠가 재가 될 몸뚱어리들. 그 타오르는 불덩이를 너무 사랑한다는 말이야.
사랑해.
사랑해.
내가 나임을, 네가 너임을, 우리가 우리임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