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by 최미야

아까 낮잠을 잤는데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남동생이 같이 마당에 누워 있는 꿈을 꾸었다. 엄마가 이불 좀 갖다주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꿈속에서 남동생이 가져다준 듯했다. 그러다 팟, 하고 깼다. 그러고 나서 담배를 피우러 나왔는데 갑자기 엄마 아빠의 울타리 속에 살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네 가족, 소탈하게 그리고 부족함 없이 나와 남동생을 길러낸 우리 엄마 아빠. 나의 원가정. 그 넷이 지냈던 시간들이 흘러들어왔다. 얼마나 희생하셨을지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가장의 나이. 하지만 나는 내가 만든 원가정을 찢어버리고 나와 홀로 있는 상황이다. 딸은 저기에, 나는 여기에. 순간 딸이 지금의 가족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했다. "왜 엄마는 아빠랑 따로 살아?" 하는 질문 한번 한 적이 없는 내 딸. 궁금하지 않을까? 왜 같이 살지 않는지, 아빠에게는 왜 여자친구가 있는지, 왜 엄마는 2주마다 한번씩만 볼 수밖에 없는지. 그런 게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 엄마 아빠는 지지리도 싸우긴 했지만 한 번도 가정이 불안전하고 불편하다는 느낌을 들게 한 적은 없었다. 난 쾌활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간 건지 알 수조차 없다. 물론 엄마가 고된 시집살이의 지난함을 내게 풀어냈다는 점, 아빠 욕을 수시로 내게 하면서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했다는 점들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을 엄마에게 불편하다고 직선적으로 말을 했고 엄마는 다시는 내게 그런 고충들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감정적으로 어느 구석엔가 불구가 되어 버린 느낌. 이혼한 후 내 상태는 항상 그랬다.


2021년 6월에 이혼했으니 이제 벌써 이혼 6년차가 된다. 이젠 혼자 서 있을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불안불안한 느낌을 지울 순 없다. 자유로워진 걸까, 아니면 더 고독해진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남편 하나 없다고 징징거리고 싶지도 않고, 또 이혼했다고 동네방네 떠들면서 나 이제 진정한 자유를 찾았어! 하고 확언하기도 미적지근하다. 누구는 말한다. 이혼하면 더 잘 산대요. 또 누구는 말한다. 남편 없어서 어째. 또 누구는 말한다. 너만 잘 살면 돼.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더 살아봐야 알 것 같고, 난 그저 딸이 날 잊지 말길, 딸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형성되기를, 그것만을 바라고 있다. 전남편은 몇 년 전 만난 여자친구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영상통화를 하는데, 딸이 '이모'가 사줬다는 선물을 내게 한참이나 구경시켜주었다. 나는 머쓱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내가 딸에게 준 것은 직접 만든 쿠키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딸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장난감을 사줬어야 하나 후회를 했다. 몇 만 원을 들여서 만든 쿠키였고 또 딸이 잘 먹어 주었으므로 나 혼자로서는 만족했지만 딸은 전화기 너머로 '엄마, 크리스마스 선물 또 없어?'라고 물었다. 아무래도 쿠키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난 미안했다. 더럭 겁이 났다. 그 '이모'라는 사람에게 질까봐, 전남편의 여자친구가 내 자리를 빼앗게 될까봐. 그래,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다. 내 배로 낳은 딸이 설마 친엄마인 나보다 새엄마를 더 좋아하랴. 하지만 내 노력 여하와 앞으로의 컨디션에 따라 딸의 심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는 있다. 정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은 하루하루. 비양육자 돌싱은 참 여러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양육자의 새 배우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까지 하려니 힘들다. '어차피 내가 친엄마니까 넌 날 이길 수 없어' 하는 정신승리도 별 소용 없어 보인다.


이렇게 쉽게 찢어질 수 있는 약하디약한 원가정을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떻게 지금껏 지켜낼 수 있었던 걸까. 어제 아빠는 해돋이 영상을 단톡방에 올리며 '우리 가족 한해 만사형통하길 바란다' 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 아빠는 투닥거리면서도 잘 지내신다. 수십 수만 번 이혼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을 텐데, 엄마 아빠는 어떻게 견딘 걸까? 내가 참을성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 성격이 이상한 걸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건 너가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는 위로 같은 걸 받고 싶은 게 아니다. 이혼하고 돌싱으로 살아가는 거, 솔직히 보통 일은 아니라서 그렇다. 나도, 나도, 원가정을 지키고 세 가족 울타리 안에서 소소하게 살아갔다면 지금쯤 행복했을까? 아니. 아니다. 난 전남편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내 인생을 저당잡힌 기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전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 여자에게 발목이 잡혀서 내 인생 다 망가지기 직전이야, 하고 머리를 싸쥐었을 게 분명하다. 얼마 전에는 전 시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같이 식사를 하는 꿈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전남편이 자기 여자친구를 데려와 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소개를 시켰다. 나는 안 돼, 안 돼, 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전남편은 이제 남인데, 나와 완전히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인데, 대체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그딴 꿈이나 꾸는 건지, 원.


이혼하고 나서 무슨 싸움하듯이 연애를 주야장천 해댔다. 아무 남자나 닥치는 대로 만났고 닥치는 대로 헤어졌다. 물론 사랑한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건 말 그대로 자학이었다. 외로워서 닥치는 대로 하는 연애는 진짜 자학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홀로 고독하고 높고 깊고 쓸쓸해 본 자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오늘도 깨닫는다.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가족과도 지인들과도 점점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를 배갈라 낳아주신 엄마조차도 먼 먼 타인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 누구도, 정말 그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더럭 겁도 난다. 벼랑끝인생 같아서. 하루에 담배는 한갑 반을 피우는 꼴초에, 조울증약을 먹지 않으면 조증이 튀어올라서 용천지랄을 하고, 커피 중독에 도파민 중독. 성질은 불같아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면 곧잘 때려치워 버리는. 독서 편식이 심하고 영상 취미도 까다로워서 아무거나 못 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단번에 싹둑 잘라버리는. 좋아하는 것만큼 싫어하는 것도 무지 많아서 살기가 힘든. 그런 나. 나 자신을 비루하다고도, 특별하다고도 생각하는 나. 나는 어디에 와 있나? 어디에 서 있나? 어떻게 살고 있나. 엄마 아빠를 보면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수많은 세월을, 그 고통의 가시밭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어오셨나, 하고. 나는 이제 불혹을 넘어섰고 진검승부가 남아 있다. 진짜 승부를 보여야 할 때인데 내 몸은 너무나 늙고 낡고 지친 것만 같은데. 어떡하라고.


작년에 우울한 퇴사를 하고 난 후 아주 달디단 꿈을 많이 꿨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했을 때의 그 비참함이란. 단약 때문에 조증이 올라와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고 쉬어야 했지만 난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되었었다는 그 느낌 때문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말 괜찮은 병원이었는데. 사람들도 좋고. 일도 괜찮고. 그런 자리를 내 병 때문에 걷어찼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내 개인 유니폼과 명찰이 부여되었고 수습이 끝나 정직원으로 승격된 직후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작년에 내가 했던 실수, 그리고 이혼 후 몇년 간이나 방황하면서 저질렀던 실수들은 정말 참담한 것이었다. 난 그럴 때마다 비참하고 진창같은 현실과는 정반대의 달콤한 꿈을 꾸곤 했다. 마치 현실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꿈속에서의 나는 날아올랐고 반짝거렸다. 3년여 간의 연애 끝에 헤어진 전남친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는 벌써 힘듦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 몸은 그걸 받쳐주지 못할 만큼 많이 상했다. 사실 나는 지금 희망을 노래할 기운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새아침에 눈을 뜬다. 커피를 마신다. 사람들을 만나 웃는다. 걷는다. 그래, 걷는다. 묵묵히 삶을 살아간다. 어째서? 어째서 살아가는 걸까. 어째서 이 지난하고 신비한 생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걸까, 이 말이다.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 삶을 포기하는 건 싫다. 지금 나는 내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살만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역설이 인생에는 항상 함께하는 것인가?


내가 팔자 좋아 돈 많은 남자 하나 물어서 재혼할 리도 없고, 당장에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할 리도 없다는 것을 안다. 어찌저찌 남자가 나타난다 해도 난 또 실패할 것 같다. 이런 정신머리로는 타인을 아껴주고 챙겨주고 할 다정함이란 쥐어짜내도 안 나올 것 같다. 냉소적으로 변한 걸까, 아니다, 나는 냉소주의가 싫다. 그저 지친 것이다. 이러다가도 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다면 난 두근두근 뿅뿅 모드로 전환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고요함이 좋다. 사랑한다, 이 고요함을. 몇 년 만에 경험해 보는 혼자인 느낌. 조용한 카톡 메시지, 매일 통화하는 사람은 엄마 아빠 아니면 딸. 만나는 사람은 친목 모임이나 영어 원서 읽기 모임 멤버 그나마도 여자들이 다인. 난 어쩌면 딸의 고충을 걱정하기에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나 살기도 너무 힘들고 벅차서, 딸이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인생보다 내 인생이 더 심각해 뵌다. 그런 배경에는 내가 전남편을 너무나도 믿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전남편이 진짜로, 한 치의 그릇됨도 없이 딸을 잘 키우리라는 믿음. 그 믿음은 지난 십 몇 년간 그 사람이 내게 심어준 진실이다. 그래서 그나마 한시름 덜었다. 전남편이 만약 난봉꾼에 여자나 막 갈아치우고 돈 펑펑 쓰고 밖으로 나돌고 이랬으면 난 절대 딸의 양육권을 전남편에게 넘기지 않았을 테니까. 그말인즉슨 내가 그랬다는 것이다. 난 정말 쓰레기처럼 살았다. 딸을 혼자 키우는 내내 바깥으로 돌았으니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쓰레기였다. 딸을 전남편에게 자의 반 타의 반 내어줄 수밖에 없을 지경까지 만들었으니까. 물론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조증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상황이라 그랬지만, 그런 것도 다 변명 같다. 그냥, 다 내 잘못이다. 딸을 내어준 것도 잘 살지 못했던 것도 다 내 탓이다. 이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으니까. 자식을 낳은 채로 원가정을 찢어발긴다는 게 이렇게, 이렇게 비참한 일인지 몰랐으니까.


머리를 자르고 한껏 화장을 하고 셀카를 찍은 날이 있었다. 난 아직 이렇게나 예쁜데, 이렇게나 젊은데, 나이가 벌써 마흔에 접어들었다니, 하고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갈구하는 것은 돈인가, 사랑인가, 안정인가. 아직 모르겠다. 오늘 내가 가족 꿈을 꾸고 나서 느꼈던 것은 씁쓸함이었다. 아마 이혼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상을 나도 겪을 수 있었겠지. 전남편, 나, 딸 이렇게 셋이 거실에 누워 평온하게 낮잠에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시간. 내 것이 아닌 시간. 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런 시간들을. 그런 시간들을 포기하고 다른 시간들을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더 강해지고 정교해져야만 한다. 정말이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오른손 검지에 끼워진 반지. 그것은 목표를 뜻한다 했다. 올해는 그래도 뚜렷한 목표가 몇 있어서 그걸 꾸준히 이뤄내기만 하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해도 잘 살았다 싶은 해일 것이다. 나는 올해도 많은 꿈들을 꿀 것이고 그것은 나를 일정 씁쓸하게도 달콤하게도 만들겠지. 나의 꿈. 무의식 속에서의 내가 겪는 무수한 일들. 기괴하고 뒤틀린 일상, 오히려 꿈이 현실같은 이상한 감각. 꿈보다 더 살벌하고 무서운 현실. 나는 살아내야만 할 것이다. 몇 년 간의 폐관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나온 나, 이 날만을 기다렸다. 난 해내야 한다. 살아가야만 한다. 꼴랑 몇십년 남은 내 인생, 또 많은 꿈들을 꾸겠지. 달콤한 꿈이 현실이 되어 보길, 꿈보다 현실이 더 꿈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길 기다린다. 나는 이제야 막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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