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엄마 아빠가 지어주신 순 한글 이름. 뜻은 없는. 그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미야, 미야 하고 불러서 미야가 되었다는. 그 시절 무난한 이름도 많았을 텐데 굳이 미야로 지은 이유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모르겠다는. 나는 최미야다. 잠시 브런치 필명을 다른 것으로 바꿨다가 다시 내 이름으로 돌아왔다. 최미야는 최미야 거.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거. 나는 올해 41살이고, 딸이 하나 있지. 아주 예쁜 딸이지.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조울증을 앓고 있지. 지금은 조증 삽화도, 우울 삽화도 없는 중간 상태라서 아주 좋다지. 난 자기애가 강한 편이다. 자존감은 물론이고 자존심도 강하다. 난 내가 선택하는 물건들도 특별하길 바라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특별하길 바란다. 누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좋은가요? 난 "호기심 많고 지적으로 나를 자극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만큼, 세상에 재밌는 사람들과는 전부 다 교류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난 내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가 좋다. 내 오른손 검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좋다. 난 내 목소리가 좋다.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 최미야는 노래하고 춤추고 글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난 누가 봐도 사람 좋아 인간이고, 다정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 비꼬아 말하기, 돌려까기는 내 앞에서는 소용없다. 난 곧이곧대로 듣고 믿고 말한다. 솔직하지만 무례하지 않다. 예의를 중시한다. 최미야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즐겁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인간이다.
즐겁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최미야가 있는 반면, 외롭고 슬프고 우울한 최미야도 있다. 한없이 쪼그라들고 작아져 어딘가로 숨고만 싶은 최미야. 그런 날이면 난 홀로 담배를 피우면서 음악을 듣는다. 깊고 어마어마한 슬픔이 나를 짓누를 때면 한번 울고 치운다. 그러고 나면 조금 낫다. 이혼하고 몇 년 동안은 전남편과 딸과 헤어졌다는 데에 적응을 하지 못해 이리저리 어지러웠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균형잡힌 내가 되었을까. 한없이 조그마해지는 내 영혼을 붙들어 올리기 위해 참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더랬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떠나갔고, 또다시 만났다. 영혼이 쪼그라들 때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습관적으로 그렇다. 나는 원래 무에서 유로 태어났고 무로 언젠가 돌아갈 존재라는 것을 상기한다. 그러다 보면 생이 얼마나 찰나이고 아름다우며 생생하고 아찔한지 알게 된다. 죽음은 나의 선생. 최미야의 어둠은 어느새 밝고 환한 햇살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환하게 웃어 본다. 세상의 모든 색깔들을 지닌 나, 특별한 나. 그리고 그 내가 가진, 아니, 알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바로 내 딸이다. 나 자신 최미야를 가장 특별한 존재, 엄마로 만들어주는 내 딸을 나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내 온 마음과 몸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다.
요즘 여러 모임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묵은 인연은 정리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꼭 사람들과 양질의 대화를 하란 법은 없지만, 결이 맞는 사람만 만나리란 법도 없지만, 일단 사람을 만나면 오가는 대화 속에 흘러드는 공감, 연대의 느낌이 들어서 좋다. 아주 작은 공통점이라도 발견하면 기뻐하는 사람들, 어떤 주제와 그 사람의 삶이 연결된 지점에서 풀려나오는 갖가지 이야기들, 사람 만나는 걸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글도 사람들을 만나는 좋은 방법이다. 글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기쁘다. 어제는 글을 써서 발표하는 작은 시간을 보냈는데 너무 좋았다. <내 강아지에게>라는 책을 읽고, "할머니가 쓰는 강아지 소개서"라는 주제로 작은 글을 발표했다. 그 글을 쓰면서 나는 딸을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기보다는, 우리 엄마와 내 딸의 관계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편지글 형식으로 썼는데 여기에 잠시 소개해 볼까 한다.
우리 강아지, 잘 지내지?
눈빛이 영롱하고 영혼이 맑은 우리 강아지, 할머니가 누룽지 끓여줄까?
우리 강아지는 할머니가 만들어 준 누룽지가 최고랬잖아.
넌 엄마 아빠의 세상이야, 전부야.
이 할머니의 전부이기도 해.
사랑의 결정체.
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내 새끼.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렴.
엄마는 널 사랑해 마지않아.
엄마는 조금 아프지만 널 위해서라면 희망을 잃지 않는단다.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렴.
다정함을 잊지 말려무나.
세상 속에서 당당하려무나.
넌 엄마를 닮아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 2세가 되었지.
자유롭고 아름다운 아이야, 사랑을 온데 모아놓은 생생한 존재야,
할머니는 너의 엄마를 낳았고 너의 엄마는 너를 낳았지.
너도 언젠가 너의 피와 살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을 낳을지도 모르겠지.
그땐 알게 될 거란다, 이 할머니가 네가 하는 말들을.
네 영혼이 빈약해지고, 한없이 초라해진다 해도 잊지 마렴.
높고 고독해지렴.
혼자라고 생각되어도 슬퍼하지 마렴.
죽음이 찾아온단다, 얘야.
모든 생에는 끝이 있단다.
하지만 넌 신록, 이제 막 피어나는 들꽃.
세상에 던져진 너는 방금 발을 디뎠지.
네 가슴은 부풀어 올랐고, 네 웃음 소리는 천둥같지.
엄마를 똑닮은 너는 꼭 복숭아 같은 엉덩이를 지녔지.
이 할머니는 세상 여행을 잘 마쳐가고 있고,
우리 강아지 넌 갓 여행을 시작한 여행자야.
네 심장은 굳세고, 네 눈은 별빛처럼 빛나지.
아이야, 마음껏 자유롭거라.
아이야, 마음껏 아름답거라.
이 할머니를 잊지 말거라.
네 안 어느 곳에 항상 자리하고 있을 테니, 어깨를 펴고 당당히 떠나거라.
우리 강아지가 돌아올 자리를 항상 마련해 둘 테니,
언제든 지치고 힘들 때 훌쩍 이곳으로 와도 된단다.
할머니가 말이 많았지?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손주, 우리 강아지.
사랑한단다.
나의 굳세디 굳센 별, 너에게.
할머니가.
내 영혼에 균열이 일었을 때,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세상은 너무나 크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난 섣불리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좀 더 재밌게 해 줄 수는 있다. 최미야는 당신의 말을 잘 들어줄 자신이 있다. 최미야는 딸이 보고 싶어 가끔 울지만, 그래도 그 몇십 배는 더 많이 웃는 사람이다. 며칠 전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딸과 언젠가 죽음으로 헤어질 상황에 놓일 거란 게 슬퍼서 울었다. 그러고는 뚝 그쳤다. 살아 있는 동안에 딸과 함께 많이 웃었으면 했다. 좀 더 건강해져야지, 팔팔한 말처럼, 잡초처럼, 비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대자연처럼 딸을 감싸 주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비타민을 주문하고, 소처럼 밥을 먹었다. 간만에 일이 들어와서 열심히 일도 하고 있다. 내일은 사람들과 하이볼 모임이 있는데, 술은 아예 못하지만 분위기에 취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생각이다. 좋은 사람들, 그리고 맛있는 음식. 밤. 그 무엇보다도 매혹적인 밤. 친구는 영혼을 빚지고 사는 존재. 조금씩 기대어 사는 존재들. 재밌다. 재밌어 죽겠다, 사는 게.
최미야는 최미야,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1인. 록음악을 좋아하는, 초록색과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는 당신을 지진처럼 뒤흔들 웃음과, 당신을 녹아내리게 할 다정함을 지녔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나를 사랑해. (어릴 적 치아 교정 예쁘게 시켜준 엄마아빠 그리고 의사쌤께 감사) 난 더 더 아름다워질 거고 밝아질 거고 많이 웃을 거야. 조울증은 내 칭구칭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전남편의 여자친구도 이제 질투하지 않을 거야(웃음). 최미야가 좋아하는 여름이 다가와, 그 여름이 성큼 다가왔을 때 난 짧은 여행을 다녀와야지.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민소매 탑과, 청바지와, 샌들과, 가방을 걸치고, 길을 나서야지. 난 해방되었어. 드디어, 친구들, 난 해방되었어.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려던 악의 무리들을 물리치고 이곳에 섰어. 난 당당해, 난 멋져. 내 다정함과 웃음으로 세상 전부를 무지갯빛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딸의 손을 잡고, 민트색 우산을 쓰고, 오동통한 여린 풀들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그렇게 난 걸어갈 거야.
다들 반가워. 다시금.
최미야로 돌아온 날, 명상하듯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