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이길 수 없지.

by 최미야

꼭 한 번씩 그런 날이 있다. 나는 세상과 멀리 똑 따로 혼자 떨어져 있고, 다른 사람들은 너무 다른 우주같고, 외롭고, 외로운 날들. 내 자아가 조그맣게 변해서 방구석을 둥둥 굴러다니는 것 같은 느낌. 방금 꾼 꿈에 나는 어렸다. 이모들과 함께 바다에 놀러를 갔다. 나는 시원한 파도 위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수영을 했다.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 아직은 내 세상이 철저한 보호와 사랑으로 둘러쌓였을 때의 그 안온한 느낌을 즐겼다. 나는 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깨어나 잠이 들지 못하고 있다. 바깥은 너무나 싸늘하고 내 곁에는 딸이 없다. 자다 일어났을 때 딸이 옆에 있다면 이런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을 텐데. 나는 마치 좀비가 당장에라도 튀어나와 나를 물 것 같이 스산한 바깥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들어와 이 글을 쓴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훈훈하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으려나 보다. 그러다, 다정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꿈 속의 이모들처럼, 전전남친이 우리집 문고리를 고쳐주었을 때처럼, 딸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눈을 맞춰오던 것처럼, 내가 아플 때 먹고 싶다던 딸기를 굳이 밤중에 사왔던 엄마처럼, 그런 다정한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찔끔 났다.


다정함은 이길 수 없지. 그 다정함으로 감싸워진 일상들이 얼마나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는지 모르는 사람은 죽어도 모르지.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을 이긴다. 다정함은, 그래, 다정함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 믿는다. 나는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고, 솔직히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날은 "왜 이렇게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많지?" 하며 툴툴거릴 때도 있다. 난 사람을 굉장히 가리고, 선택적으로 다정하다. 내가 현자, 마더 테레사처럼 타인에 대한 커다란 마음씨를 지녔다면 내 다정함의 총량은 더 커졌겠지. 홀로 이렇게 외로울 때, 나는 좀 더 다정해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물건이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뭐든, 그게 뭐든지 간에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남을 이기기 위해 다정함으로 무장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 스스로 부드러워지기 위해,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좀 더 부드러운 풀밭으로 사람들을 데려가기 위해.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내 부드럽고 무해한 사랑으로 남들을 좀 더 감쌀 수 있다면 좋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같은 인간을 아무 대가 없이 돕는 일. 가장 인간적인 일. 난 딸을 키우면서 그걸 직간접적으로 체험해봤다. 한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사랑해주고 돕는 일을, 나는 해봤다. 그건 정말 숭고한 느낌이었다. 내 자신을 한없이 비우고 재련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보통의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나, 나는 엄마가 되고 좀 더 부드러운 인간이 된 것만 같다. 다행이다.


요즘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생각이 가끔 난다. 그 안에서의 작은 질서들, 규칙들, 일상들이 생각난다. 쭉 줄을 서서 물을 받고 약을 먹은 뒤 입 안을 검사받던 것들,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으면 간호사가 혈압을 재거나 피를 뽑으러 오던 것들, 끔찍하도록 규칙적으로 나오던 식사들. 나보다 어린 환자들의 노랫소리들. 닥터의 끊임없는 질문 세례들, 나갈 수 없어서 병동 안만 배회하던 나 자신, 아직도 인연의 끈을 붙잡고 전전남친과 통화하던 나. 환상을 좇던 나. 후회한다거나 그 모습들이 끔찍하게 싫다거나 하진 않는다. 그냥 나는 뭔가를 통과하고 있었던 것뿐, 그게 다다. 그 길은 내가 지나왔어야만 했던 길이었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었다. 발작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급격하게 자지 않고 먹지 않고 눈을 도록도록 굴리던 그 애는 다정함을 갈망하고 있었다. 눈물나도록 외로웠다. 몸 안에 전해질 농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병이 생기는 것처럼, 인생도 일정한의 다정함의 농도가 지켜지지 않으면 탈이 나는 것 같다. 누군가 하나쯤은, 날, 아껴주겠지 하는 생각. 그리고 도리어 내가, 그 누군가 하나쯤을, 아껴줘야지, 하는 생각들이 사람을 일으켜세운다. 그건 꽤나 강하다.


새벽이 오고 있다. 새들은 지저귀고 새 아침을 맞는다. 안분지족의 나날들이다. 시절인연은 지나가고 다시 온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게 강한 인연들을 만들어준 내 인생의 경험들을 사랑한다. 내 배에서 태어난 내 딸, 엄마 배 속을 가르고 태어나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 그 어느 하나 잘못된 것은 없었다. 나는 올바르게 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정함은 나의 무기. 부드럽고 따뜻한 것으로 나를 감싸자. 좀 더 웃자. 요즘 나는 40대를 맞아 피부 관리에 매진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씻고 바르고 하는 것도 이혼 후 오랜만인 것 같다. 까슬까슬했던 내 발의 뒤꿈치를 발각질제거기로 정리하고, 열심히 손발톱을 깎고, 귀청소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내 몸을 정돈한다. 깨끗한 옷을 입는다. 아침에 반짝, 하고 눈을 뜬다. 발작적으로 딸을 생각한다. 웃는다.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게 되는 그 경험들을 난 조금 더 하고 싶다. 난 결국 사람을 향한다. 박애주의자는 아니지만 마음은 항상 열려 있다. 사람들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각자 살려고 발버둥치고 힘내고 하는 그 모습들이 난 대단하고 귀여워 보인다. 타고난 자신의 우주를 감당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다들 힘내. 사랑해. 힘이 빠질 때면 내가 힘이 되어 줄게요.


세상에 철저히 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오는 무섬증도 있지만 짜릿함도 있다. 그건 아마 내 우주가, 내 세상이, 나 없으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서 오는 안심이겠지.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난 무로 돌아간다, 결국. 며칠 전 머리가 아팠을 때, 엄마는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그 따스한 된장국을 먹고 나는 나았다. 나는 부모님을 마음 깊이 사랑하진 않지만,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돌보고 보살펴 주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아마 내 딸에게 하는 마음 그대로겠지. 항상 노심초사, 불면의 밤을 보내며 나를 걱정해 주시는 부모님. 그들에게 나는 이제 좀 안심하시라고, 당신들 딸 이제 좀 안정되었다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난 가시밭길을 지나 조금은 평탄한 길로 들어섰고, 이제 발에 박힌 가시 상처들이 나을 때도 되었다고, 이제 별로 아프지 않다고. 그렇게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오늘도 난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러 등원해야 한다. 벚꽃이 화려하게 핀 이 나날들, 나는 집에 와서 또 집안일을 하고 쉴 것이다. 뭉툭하고 낮은, 두둥실 떠 있는 저 구름이 귀엽다. 무슨 일로 대기 중에 떠서 저렇게 낮게 공기를 짓누르고 있는 걸까. 한바탕 비가 오고 얼른 날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새로 산 핑크색 드레스를 입을 것이고, 신나게 걸어갈 것이다.


다정함을 감싸안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신새벽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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