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온 지 이틀차, 난 여전히 모텔이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회색빛 커튼이 쳐져 있어 어둑하다. 점심에는 어제 나를 맞아준 언니와 다시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잠깐 산책을 하고 나는 낮잠을 잔다는 핑계를 대고 들어왔다. 너무 시간을 많이 뺏기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11살이나 많은 언니라 내심 내가 걱정이 되나 보다, 했다. 어젯밤엔 어떻게 잤는지, 방은 어떤지 계속 물어보셨다. 실존주의니 부조리니 대화를 하다가 언니가 대뜸 당신이 한 건 가출이 아니라 출가라고 해야 맞다고 하셨다. 이 나이에 가출은 안 어울린다고. 단어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 그럴싸했다. 면접 준비는 잘되어 가요? 네. 저는 면접은 잘 보거든요. 시끄러운 카페 안에서 언니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나를 배려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얼마나 제정신의 상태를 지니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려 하시는 것 같았다. 고마웠다. 정말.
난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 이 말을 '그'에게 하고는 호되게 야단 맞았다. 그러고는 더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나는 지금 너무나 제대로 혼자이고, 누구에게도 말할 사람이 없어 '그'에게 내 현재 위치를 알리고 뭘 하고 있는지 습관적으로 보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 하는 사람이랑은 더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라고. 물론 거짓말이다. 난 엄마 아빠가 나 독립하는 걸 보고 뿌듯해하셨으면 좋겠다.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과정은 험악하고 거칠었지만 결과는 훌륭했으면 좋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면접 보고, 두 눈 크게 뜨고 집 구하고, 그렇게 경기도 모 시에 정착하려고 한다. '그'는 아마 지금 강릉에 있을 것이다. 강릉은 예전에 엄마와 함께 카페를 가느라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도시 자체의 이미지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갑자기 '그'의 강원도 사투리가 살짝 섞인 말투가 그립다. 그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안심될까. 다 헛된 꿈이다. '그'는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이제.
머리를 며칠 동안 감지 않아서 간지럽다. 모텔방도 춥고 욕실은 더 추워서 샤워하기가 싫다. 집 나와서 씻지도 않고 모텔방에서 싸매앉아 글이나 쓰려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나 산책하기는 더 싫다. 언니가 산책을 제안했는데 나는 거절했다. 출가한 탕아 주제에 한가롭게 산책이라니. 지금은 이런 나 자신을 끊임없이 북돋워주고 치켜세워주는 일이 필요하다. 내 감정을 재련하는 데는 글쓰기가 최고다. 그래서 나는 쓰는 것이다. 이 며칠의 기록을 생생히 박아두기 위해서. 지금 쓰는 수기들은 전부 탈출기다. 최서해의 <탈출기>에서 따왔다. 그 내용이 뭔지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내 작은 탈출 경험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지난하고 고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가. 난 지금 고초를 겪고 있는 건가.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일들은 지금 내가 살아왔던 인생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또다시 생각해 본다. 내일 죽는다면 넌 뭘 할래?
난 그래도 탈출할래. 나올래. 떠날래. 단 한 번뿐인 삶인데 뭘 망설여? 그냥 해 버려. 감행해. 그냥 해! 좀. 난 무엇에서 탈출해 나왔나? 엄마? 아빠? 아니, 나는 내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온 것뿐이야.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했어, 헤세가. 나는 하늘을 날고 있던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가 아니라,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였는지도 몰라. 이제야 알을 깨고 바깥 세상을 본 건지도 몰라. 얼마나 추울지, 얼마나 비정할지 모르는 이 세상에 내 몸을 부딪혀 볼 거야. 온 힘을 다해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볼 거야. 엄마도 아빠도 나중에 가면 다 알게 되겠지. 내가 깨고 나오려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당신들 눈에는 그저 작고 소중한 딸로 보이는 이 내가, 이 한세상에 홀로 서서 독립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딸은 지금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엄마 어디로 갔어? 엄마는? 엄마 보고 싶어. 가슴이 찢어진다. 섣불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영상통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지금 출가한 몸, 고향땅에서 떠나와 이 먼 서울까지 날아온, 막 어둡고 좁은 모텔방에 도착한, 아무것도 없는, 정말 맨땅에 헤딩한, 그런 사람이다. 딸이 보고 싶다. 그 애의 따뜻한 두 볼을 만지고 부드러운 귓불에 키스하고 싶다. 엄마! 하고 부르는 꾀꼬리 같은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듣고 싶다. 딸을 생각하니 눈물이 치솟는다. 집에 갔는데 엄마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는 걸 딸이 알았을 때 받을 충격을 생각해 봤다. 난 옳게 한 걸까? 지금 이 모든 게 현실인데, 너무나 생생한 현실인데, 너무나도 시간은 태연히 잘 흘러간다. 난 여전히 살아 있고, 빌어먹을 생각 속에 묻혀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다. 딸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 애는 여전히 나를 찾고 있을까. 그 애는, 그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애는, 그 애는 엄마가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상처받았을까 봐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찢어진다.
어쨌든 이 글은 탈출기. 나는 떠나왔고 여기에 있다. 일자리를 빨리 구해야 한다. 면접에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완전히 가족과 단절된 채 보내는 인생 최초의 설 연휴다. 내일은 그 언니와 오전 10시에 모닝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지금 내가 인생의 분기점에 서 있다는 것을 안다. 너무 잘 알아서, 너무 생생해서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내가 감행한 일들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살고자 발버둥치는 내 존재가, 내 몸뚱이가, 내 에고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생명을 지속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어떻게든 혼자서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 그 의지만큼은 대단하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도, 누구도 내 안부를 묻지 않아도, 혼자 묵묵히 살아보겠다. 그럴 거다. 딸이 마음에 걸리지만 결국 내곁에는 나뿐.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서울에 막 도착해서 길을 걷는데 도시 자체가 새로워 보였다. 거지, 비둘기, 담배꽁초, 매연, 도를 믿으십니까, 한강, 빌딩들... 마치 19살 때 갓 서울에 상경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떠남이, 이 탈출이 부디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되길.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길. 내가 원하던 것들 다 이루고 가진 못해도, 그래도 죽기 전에 후회할 일은 남겨두지 않기. 그래, 후회하지 않으려고 나는 왔다. 죽기 전에 통탄하며 땅을 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왔다. 거인이 되진 못해도 소인배는 되지 말자.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끈기있게 임하면 뭐든 될 것이다. 자기 속박에서 벗어나 나는 자유롭게 해방될 것이다.
기필코.
이 탈출은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