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왔다.

by 최미야

딸이 아침에 내가 담배 피우러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한 달 넘도록 금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고, 엄마는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가 살아! 이렇게 소리쳤고 아빠는 넌 정말 복에 겨웠다, 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지옥도의 한 편 같았다. 시골 전원주택에서 나는 딸과, 엄마와, 아빠를 내버려두고 홀로 걸어나왔다. 길을 걷고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해서 차를 얻어탔고, 버스터미널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멍하니 표를 끊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가 다가왔다. 어떻게 왔어? 응, 차 얻어 타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집에서 명절 내내 생각해 봐. 니가 나가든 아니면 엄마 아빠랑 같이 살든 충분히 생각해 보고 결정해. 하지만 나는 이미 엄마에게 담배 피운다는 것을 들킨 그 순간 결심했다. 바로 이 순간 집을 영영 나가버리자고. 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픈 노모를 두고 나가버리자고.


나는 어제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와서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생각했다. 내일 내가 죽는다면? 내 인생이 끝난다면? 난 어떻게 살고 싶었던가. 난 무엇을 기대했던가. 결론은 하나였다. 나 혼자 독립하는 것. 엄마 아빠의 심적 물적 도움 없이 나 홀로 서고 싶다는 것, 오로지 그뿐이었다. 나는 백수에 캥거루였다. 용돈을 타썼다. 나이 마흔두 살에. 두 시간 정도 영어로 내 인생에 대해서 독백으로 나불거리다가 갑자기 나는 번뜩하고 생각에 휩싸였다. 떠나는 거다, 라고. 나는 그 즉시 경기도 모 시의 병원들에 이력서를 일제히 돌렸다. 그러고는 집을 알아보았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결정된 것이었다. 아침에는 보험설계사에게 전화를 해서 중도 인출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다음주 화요일, 면접이 잡혔고 목요일에는 집을 보러 간다. 나 정말 저질렀다. 온실 속 화초가 드디어 잡초가 되는 순간이었다.


진짜 잡초인지 아닌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고, 나는 지금 모텔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아빠집에서 버스를 타고 떠나와 엄마집에 도착한 그 순간 나는 짐을 바리바리 챙겼다. 그러고는 정말 휙 떠나버렸다. 다신 안 볼 것처럼, 그렇게 떠나왔다. 물론 불안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안온했던가, 얼마나 따사로왔던가. 엄마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이는 생활은. 그러나 나는 더이상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고 그렇게 살기 싫다. 엄마 아빠가 내가 떠나간 것으로 많이 절망하고 상심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떠났다. 아빠가 그랬다. 딸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실시간으로 엄마와 할머니가 싸우고 엄마가 픽 떠나는 것을 봤으니 딸의 충격은 만만찮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책하긴 싫다. 이건 예견된 떠남이었고 언젠가는 꼭 있어야 할 떠남이었으니까. 홀로 서지 못하면 백번 천번을 노력하고 생각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난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래, 나는 질식 직전이었다.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게 압박이었다. 아빠는 내가 나가겠다는 말에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어디 거리에서 굶어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거렁뱅이가 될 것이다, 너는. 가스라이팅 같은 그런 말들에 나는 지쳤다. 너는 일을 못할 거야. 너는 할 수 없을 거야. 너는 쉬어야 해. 너는 조금 더 준비해야 해, 같은 말들. 언젠가 그 모든 것들에다 대고 큰 소리로 웃을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서울에 도착해서 바로 아는 언니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정황에 대해 토론했다. 차분한 논조로 내 상황을 판단하고 조언해 주는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녀는 내 손에 십만 원을 쥐여주고는 모텔비를 결제해주고 갔다. 저녁밥도 사주었다. 그녀의 형편에 대단한 소비가 아닐 리가 없었다. 나는 목요일날 내가 마련한 돈이 들어오자마자 그녀에게 모조리 되돌려 줄 것임을 스스로 약속했다.


그러니까, 바로 이 내가, 최미야가, 집을 떠나온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임을 독자님들은 아셔야만 한다. 나는 평생 보호자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 어려서는 엄마 아빠가, 커서는 이모가,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이혼하고 나서는 다시 엄마 아빠가 내 보호자가 되었다. 누군가의 비호 아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속편한 일이다. 복잡하고 골치아픈 일들을 그들이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언한다. 난 이제 누구의 보호도 필요없다고. 나 홀로 설 수 있다고.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와는 오늘부로 연락을 끊었다. 또다시 내가 연락할 테지만 이제 그는 답장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것도 내 정서적 독립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몇 년 동안 내 육체와 정신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타인들에게 주고 살았다. 나는 이제 내 육체와 정신의 주인이 될 것이다. 나는 내 거. 최미야는 최미야 거.


폐관수련은 끝났다. 담배를 끊어야지, 하는 말들은 전부 다 거짓임을 안다. 내가 비록 집을 떠나왔지만 엄마와 아빠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올바로 서야 한다. 아직 전남편에게는 경기도 모 시로 내가 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내가 구하려는 방은 내 딸이 살고 있는 곳과 불과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난 일부러 딸에게로 왔다. 전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많이 놀라진 않을까. 이제 면접교섭의 형태가 많이 달라질 텐데, 나와 소통을 더 해야 할 텐데, 그가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딸의 친엄마, 나는 정당하게 양육비를 내고 있고 딸을 만날 권리가 있다. 내가 급히 떠나온 것 때문에 딸과의 면접교섭이 어그러질까 솔직히 겁난다. 딸은 지금 울고 있을 텐데...


실패로 돌아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버틸 거다. 최선을 다해서 버틸 거다. 내가 딸의 우는 모습까지 내버려두고 돌아나온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난 변덕스러운 인간이지만, 기분이 이랬다 저랬다, 생각이 이랬다 저랬다 하지만, 기필코 나는 홀로 서고 살아남을 것이다. 오늘은 정말 신기한 날이었다. 어찌해서 나는 죽음을 생각했고, 또 죽음이 온다면 난 무엇을 할까 생각을 했고, 무엇이 하고 싶었던가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는가. 아빠의 쓸쓸한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내게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라고 조용하게 말을 남기고 나간 아빠. 난 그런 아빠의 바람을 다시 한 번 배신한다. 엄마의 바람을 배신한다. 기대를 저버린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지난 한 달 동안 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도통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존버를 외쳐봐도, 아무리 정신승리를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최미야, 인생 최초로 가출하다.

그것도 마흔둘에, 쪽팔리게, 이제서야, 홀로서기를 하러.

여기에 왔다.

직장을 구하고, 방을 구하고, 혼자 산다.

딸을 내 방으로 데려올 것이다.

다 이루어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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