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했다.

by 최미야

오늘 하루 종일 바빴다. 9시에 눈 뜨자마자 자금처에서 돈을 받았다. 12시에 모텔방을 체크아웃해서 그동안 나를 서울에서 돌봐주었던 언니와 마지막 점심을 한 끼 하고, 경기도 모 시로 이동했다. 고시텔에 도착해서 계약을 하고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는 또다른 곳의 면접을 갔다. 5시에 면접을 마치고 바로 월세방을 알아보러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 방을 봤다. 고시텔의 삭막함과 좁음을 1시간 동안 경험한 나는 고시텔 계약을 취소한 뒤 환불받고 월세방을 계약했다. 아직 정식 이사는 아니지만 일단 입주한 것은 맞으니 오늘이 이삿날이다. 집 나온 지 6일 만에 집을 구한 것이다. 짐은 필요한 것만 최소한 풀어놓고 글을 쓰는 중이다. 내일은 오전 9시에 집주인 아들이 거실등을 갈러 오고, 11시에 2차 면접, 2시에 아는 언니와의 커피 약속이 있다. 이제 일만 확정되면 완전한 정착이 가능해진다. 부모님, 그리고 전남편에게는 일이 정해진 뒤에 사실을 알릴 생각이다.


당장 살 곳이 정해지니 필요한 게 많았다. 휴지, 세제, 이불, 매트, 베개, 물을 샀다. 고시원 위약금이 좀 돼서 아깝긴 하지만 오늘 월세 계약을 한 데는 후회가 없다. 매우 잘한 것 같다. 시내와 아주 가깝고 조용하고 방도 깔끔한 풀옵션에 무엇보다도 다니게 될지도 모르는 직장에서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출퇴근 시간이 길게 걸리는 걸 매우 아까워한다. 그래서 방도 최대한 근처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이상하게 나는 부동산 운이 따라서 방을 계약하거나 집을 매매할 때 항상 애먹는 일이 없었다) 그래, 일단 일은 저질렀고 이젠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한다. 새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으려니 좀 어색하긴 한데, 내일은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에 동네 산책을 해봐야겠다. 아까 편의점에 다녀오는데 집 바로 앞에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앞으로 살게 될 이 경기도 모 시에는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높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아침에 아주 오랫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몇 시간 동안 카톡을 나누었다. 우리는 그동안 못다했던 이야기를 했고, 지금 상황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친구는 처음에는 놀라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말했지만, 내가 결심한 것을 보고 그냥 격려해 주었다. 며칠 전에 밥값하라고 돈을 보내준 그 고마운 친구 맞다. 나는 모든 게 정리되면 네가 사는 충청도로 가서 밥과 커피를 사마, 하고 말했다.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참, 그리고 어제 저녁에는 또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한 언니와 연락이 닿아서 2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좋다. 그렇게 내가 아꼈던 사람들과 한꺼번에 연락이 닿아서 난 기분이 좋다. 연락하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나눠 묻지 않는 것은 슬프니까. 난 항상 내 친구들을 궁금해한다.


이곳 정도면 딸을 데려와 놀아도 되겠다 싶은 곳으로 집을 계약했다. 고시텔에는 두 달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딸과 면접교섭 때 갈 곳이 없을 것 같았다. 둘이 모텔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밖에만 있긴 계절이 춥고, 당장 딸을 데려올 적당한 집이 필요했다. 이제야 떠돌지 않고,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신기하다. 나도 혼자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난 많이 억눌려 있었던 것 같다. 한꺼번에 폭발해 급하고 서둘러 집을 나오긴 했지만 내 계획들은 실현되는 중이다. 고시텔에서 이것저것 사는 바람에 짐이 조금 있었는데 부동산 중개업자가 차로 실어 날라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계획에 대해서 술술 말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과도 스몰토크를 잘한다) 그녀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며 떠났다. 기분이 묘했다. 이제 진짜 혼자구나, 하는 생각.


내일은 우리 딸 어린이집 졸업식이다. 전남편한테 간다고 말했더니 오지 말라고 했다. 아마 내일이 전남편 생일이기도 하고 졸업식이고 해서 전 시가 식구들이 올라오나 보다 했다. 친구한테 말했더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했다. 응, 괜찮아. 그렇게 말했지만 난 사실 딸의 어린이집 졸업식에 너무 가고 싶다. 가서 축하한다고, 우리 딸 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딸이 사는 집과의 거리는 차로 5분 걸리는 곳에 내가 산다. 딸은 언제든지 내 집에 올 수 있다. 학교 끝나고 엄마집에 놀러갈래! 하면 언제든지 반겨줄 것이다. 정식으로 이사를 마치고 나면 집에서 밥도 해먹을 수 있도록 작은 식탁과 의자 두 개를 사야겠다. 그만큼 방이 좁아지겠지만 딸과 식사할 공간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오늘은 이삿날이니까 조금 행복한 상상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서 같이 내 집에서 먹는 상상.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너무 너무. 눈물나도록.


점심에 쌈밥을 먹었고 저녁은 아직이다. 배고파서 뭘 먹을까 하다가 오늘이 이삿날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짜장면이 생각났다. 이제 혼자 사니까, 그리고 앞으로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야 하니까 배달은 무리고, 편의점에 가서 짜장라면이나 한 그릇 먹기로 했다. 전남편은 내가 이곳으로 온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솔직히 부모님보다 전남편이 어떻게 반응할지 더 신경쓰인다. 싫어하면 어쩌지. 모르겠다. 일단 직장이 잡히면 바로 알릴 생각이다. 오늘은 이 집에서의 첫 날, 정말 특별한 날. 근처 편의점의 위치와 분리수거 버리는 곳 등을 확인하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왔다. 우당탕탕 굴러가기는 하지만 일단 뭔가 하나씩 잡혀가고는 있다. 내가 그동안 저질렀던 실수를, 실패를 만회하는 시간이다. 빚 갚을 시간이다. 열심히, 하나하나씩 바로잡아 가는 시간이다.


나 혼자 산다.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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