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by 최미야

나는 아침 8시쯤 일어나서 블랙커피를 한 잔 마셨다. 엄마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잘 먹고 잘 지내라, 하고.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한 시간쯤 더 자고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3일 만에 하는 샤워였다. 그동안 씻을 정신도 없이 뭘 하느라 못했던 샤워를 하니 꽤나 개운했다. 점심으로 모텔방 바로 옆에 있는 서브웨이에 가서 블랙커피와 안창살비프샌드위치를 먹었고, 조금 쉬다가 바로 면접을 보러 이동했다. 경기도 모 시에 있는 한의원이다. 내가 있는 모텔에서는 1시간 반이나 걸렸다. 일찍 도착해서 스타벅스에 들어가 블랙커피를 시키고는 앉아서 면접 준비 겸 심호흡을 하고 할 말을 구상했다. 면접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나는 2시 반이 되자마자 한의원으로 올라갔다. 한의원은 인산인해였다. 명절 연휴에도 사람이 이렇게 오다니, 하고 나는 놀라면서 들어갔다. 3시 면접이라고 말을 하고 조금 기다리니 직원이 안내해 주었다. 나를 인터뷰하는 사람은 나보다 어려보이는 아가씨였다. 매우 친절했고 깍듯했다. 내 MBTI도 물어보고, 유니폼은 몇 사이즈를 입는지, 집은 어딘지 등등의 질문을 했다. 나는 다소 차분하게 대답했고 뭐 궁금한 거 없어요? 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안정적이고 오랫동안 일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더니 그분의 표정이 너그러워졌다. 나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의원을 나왔다. 느낌은 좋았다. 결과 발표는 금요일에 난다.


집에 오니 5시였다. 옛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내 사정을 알고 돈을 보내줬다. 나는 그 돈으로 실로 며칠만에 한식을 먹었다. 배부르게. 그러고는 노래를 들으며 딸 사진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딸이 전남편의 집에서 밥먹는 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툭 하고 흘러내렸다. 그때의 감정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딸이 이혼한 부모 슬하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내 딸은 이제 영엉 엄마 아빠와 셋이서 함께 식사할 리도 없고, 같이 놀러 갈 수도 없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고 미안했다. 가여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족할 것 없는 친아빠 밑에서 부족함 없이 크는 아이지만, 그치만, 원가정을 찢고 나와 내가 내 손으로 세 가족을 갈라놓았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는 엉엉 울었다. 그동안 딸에게 미안했던 게 터져나왔다. 모텔방에 혼자 있는 여자가 엉엉 우는 것을 옆방 사람들은 다 들었을 것이다. 저 여자는 뭔데 설날에 모텔에 혼자 와서 처울고 있지, 하고 생각하고 넘겼겠지. 남들은 상관없다. 난 다 울고 또다시 블랙커피를 사왔다. 담배를 연거푸 두 대나 피웠다. 그리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설날에 혼자 엄마집에서 담배를 찢었다 버렸다 하면서 결국은 피우고, 또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던 소도시에서는 일자리가 정말 먹고 죽을래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초창기에 이력서를 너무 과도하게 뿌린 나머지 갈 데가 없었다. 그런 것뿐인가, 퇴사도 세 번이나 했으니 갈 데가 없는 건 더 심했다. 퇴사 세 번 중 두 번은 자의였지만 한 번은 타의였다. 나는 조울증이라서 직장에서 잘렸다. 나 때문에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결국 날 자르기로 결정했다. 다른 요건들은 다 충족했지만 내가 조울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만으로 직장에서 잘린 것이다. 소도시에서 갈 만한 곳은 다 돌았다고 보면 된다. 며칠 전 냈던 이력서들은 연락도 없고, 나는 벼랑끝에 내몰린 것 같았다. 자립, 독립, 말로만 했었지 이렇게 빨리 실행할 줄은 나도 몰랐다. 과연 이게 방종인지, 호승심인지, 그냥 호기롭게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건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나는 나를 믿지만, 어디 세상 일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만 될 수가 있나.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때로는 내 이름, 내 본명을 걸고 브런치 활동을 하는 게 두렵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검색해서 들어올 수도 있고, 내 실상을 다 알아버린다면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나는 그저 활동한다. 조울증인 걸 들키면, 자르라지, 뭐. 내가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굉장히 우울한 인간이라는 걸 알아보라지, 뭐. 숨기고 싶진 않다.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알리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나는 사실이 아닌 것은 쓰기 싫기 때문이다. 내 감정과 사유에 솔직하고 싶어서 브런치를 하는 것이고, 알아봐도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나는 계속 쓸 것이다. 혹독하고 촉박하고 지난하고 외롭다. 지금의 내 상황이다. 어쩔 수가 없다. 사실이 그런데 어쩌겠는가.


오늘이 벌써 집 나온 지 4일째다. 시간은 참 잘 간다. 그 사이에 딸과 영상통화도 하고 면접도 보았다. 목요일이 되면 더 바쁠 것이다. 자금처에서 돈을 받고 집을 구하고 입주해야 한다. 그전까진 수중에 남이 준 돈밖에 없다. 설날에 면접을 보고 모텔방에서 혼자 엉엉 운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사람도 있다. 사실, 브런치에 내 탈출기를 올린다는 자체가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도 말할 사람이 없어서, 내 탈출기를 누군가가 보아주고 읽어주고 하는 게 고맙기도 하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더니 지금의 감정에 매몰된 글을 쓰지 말고 일상의 담담함을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쓰라고 했다. 나는 이제 각오나 신념을 다지는 글은 덜 쓰리라 마음먹는다. 그런 마음먹음을 쓰는 게 오히려 더 그 약해 보이니까.


면접 결과는 금요일에 나온다. 그 사이에 다섯 곳 정도 더 이력서를 보냈고 나는 기다리고 있다. 오늘 면접 보러 간 곳이 위치상 사정상 베스트인데, 꼭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짧지만 한의원 경력도 있고, 오늘 나를 인터뷰한 사람의 인상도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을 하게 된다면 정말 고되고 복잡하겠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는 각오하에 집을 나온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만약 취직하게 된다면 나는 당분간 일에 모든 것을 올인해야 할 터다. 물론 딸의 면접교섭일은 전남편과 엄마와 상의해서 조정해야겠지. 그런 문제는 일자리와 거주지가 정착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허술해 보여도, 미숙해 보여도, 일단 굴러가고는 있다, 내 계획들. 어쩌면 한순간에 무산될 수도 있는 내 계획들. 촉박한 시간에 쫓기고는 있으나 그래도 짜본다.


내일이면 방을 옮긴다. 모텔 사장님이 방을 바꿔주신다고 했다. 청소도 해야 하고 환기도 시켜야 한다면서. 나는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책상에는 빈 물통과 재떨이가 쌓여있고 쓰레기통도 가득 찼다. 좁고 어둡고 추운 이 방 안에서 나는 오늘도 혼자다. 설날에 혼자라는 것은, 설날에 혼자 울었다는 것은, 좀 서글픈 데가 있다. 남들은 가족들과 윷놀이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맛있는 걸 먹고 하는 때에, 나는 왜 지금 혼자인가. 뭐, 그렇게 마냥 슬프지는 않다. 이 모든 과정이 독립을 향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서글프지는 않다. 어떤 일을 저지를 때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그냥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다.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닌다. 금연한다고 하면 금연한다고, 독립하면 독립한다고 다 떠들고 다닌다. 조용히 실행하는 사람이 대단하다지만 난 원체 그런 성격이 못 된다. 소위 엉덩이가 가볍고 맹랑하다. 자기 멋대로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래도 아무나 붙잡고 전화하는 성격은 아니라 다행이다. 조용히 내 공간에서 글 쓰는 것으로라도 위로가 되니 말이다.


오늘은 그래도 씻었고, 밥도 배부르게 한식으로 먹었고, 면접도 봤고, 짧게 나마 오는 길에 산책도 했다. 그나저나 모텔방에서 밴 담배 냄새를 빼느라 죽는 줄 알았다. 올리브영에 가서 급히 핸드크림을 사서 온몸에 떡칠을 하고 갔다. 담배냄새는 어느 정도 잡혔지만 옷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상당했다. 4일 동안 6갑을 피웠으니 말 다했지. 내일은 어제 만난 언니와 커피를 한잔 할까 한다. 목요일날 자금처에 문제만 생기지 않으면 돈이 들어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디 문제없이 자금처의 현금 운용이 잘되길 바란다. 렌즈가 뻑뻑하다. 안 하던 화장을 하고 렌즈를 끼고 갔더니 금방 피로해져서 허기가 그렇게 졌던 것 같다. 오늘 밤은 그냥 조용히 쉬면서 사유할 것이다. 딸 사진을 보며 우는 일은 그만. 우습게도 내리사랑은 어찌할 수 없는지 부모님 걱정은 전혀 안 된다. 부모님은 오로지 나만 걱정하고 계실 텐데. 나는 이 상황에서도 딸 걱정뿐이다.


떠나고 나서 보면 별게 없었어

큰일 같던 것도 별일이 아닌 먼지처럼

괜히 바둥거렸어

돼야만 한다고 믿었던 일들도

멈추고 나서 보면 착각이었어

나는 어디에,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조용필, <Feeling Of You>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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