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했다.

by 최미야

면접 합격해서 3월부터 출근이다. 두 곳 정도 선택지가 있었는데 페이가 더 괜찮은 곳으로 골랐다. 나는 지금 돈을 벌어야 하니까. 오늘 하루도 정신 없었다. 아침부터 또 다른 곳 2차 면접을 보러 갔고, 행정복지센터에 전입신고를 하러 다녀왔다. 임대차 신고까지 마치고 필증을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보내주었다. 그러고는 오무라이스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집에 와서 조금 쉬다가 예전부터 알던 언니와 스벅에서 만나 커피를 마셨다. 오후 4시가 넘어가도록 면접 합불합 소식이 오지 않아 초조했는데, 다행히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집 나온 지 7일 차, 월세 계약을 하고 직장도 구했다. 이제 열심히 일만 하면서 잘 살아가면 된다. 원래 출근은 다음 주부터였는데 이것저것 할 게 있다고 하고 3월 출근으로 미뤘다. 합격하고 나서 작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라는 안도감보다 이제 시작이다, 하는 각오가 컸다. 일하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것이니까.


오늘은 딸의 어린이집 졸업식이었다. 가족카톡방에 딸의 졸업식 사진이 올라왔다. 나는 저장하고 보기만 하고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았다. 조금 숨을 고르고는, 아빠와 전남편에게 내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카톡을 보냈다. 전남편은 네, 하고 단답이었고 아빠는 아직 답장이 없다. 엄마하고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 싫었기 때문에 아빠에게 보낸 것이다. 지금 이 그림이, 바로 내가 집을 나오기로 결심한 그 날, 밤을 샌 날 꿈꾸던 것이었다. 정확히 7일 만에 모든 게 현실이 되었다. 얼떨떨하다. 출근 날짜가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았으므로 나는 내일부터 동네탐방을 할 예정이다. 딸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아마도 전남편이 딸을 내게 보내지 않으려고 할 것 같다. 어떤 집인지, 어디에 다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네, 라고 대답하는 쌀쌀맞은 그가 솔직히 밉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은 전남편 생일, 아까 딸과 영상통화를 했을 때 '그 여자', 그러니까 전남편의 여자친구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 그래. 그렇지. 그랬구나, 싶었다.


어제는 이사를 축하하며 편의점 짜장라면을 먹었고, 오늘은 취업을 축하하며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은 5300원으로 훨씬 비싸다. 난 지금 사치를 부릴 때가 아니다. 자금처에서 받은 돈이 있지만 함부로 쓸 시기는 아니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아껴야 한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오늘만큼은 맛있는 거 먹어! 하고 답장이 돌아왔다. 나는 웃으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내 형편에 만 원 이상의 돈을 밥값에 쓰는 건 지금 사치였기 때문이다. 난 소망한다. 바란다. 내가 직장에 잘 적응해서 꾸준히, 근속할 수 있기를. 내일은 아침부터 집 근처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한양대 병원까지 가기가 까다로우므로, 내가 먹는 조울증 약을 들고 가서 그대로 처방을 받거나, 아니면 초진 상담을 받고 약을 새로 지어야 할 것이다. 오전에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잘되길 바랄게. 약 꼭 챙겨먹고 다녀, 그것만 지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엄마는 내 병이 걱정인 것이다. 내 몸이 걱정인 것이다. 딸래미가 어디 가서 무리했다가 다치진 않을까, 병이 도져서 길거리를 나돌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걸 게다. 난 진짜 이제부터 보여드려야 한다.


글을 쓰는 도중에 아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장문의 카톡이었다. 아빠는 내 독립을 지지해 주고 있었다. 다행이다. 딸의 면접교섭을 상의하려면 엄마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직은 이야기하기가 싫다. 아직 다음 면접 교섭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한다. 여기까지는 내 반항심과, 극도로 억눌렸던 본성이 튀어나와 견딜 수 있었다면 이젠 진짜 본선이다. 진짜다. 진짜는 버틴다. 이겨낸다. 나도 그리해야 한다. 그나저나 진짜 이젠 나 혼자 살아야 하는데, 이 고요한 방이 낯설다. 편안하긴 한데 낯설다, 아직은. 나만의 공간을, 나만의 집을 처음으로 가져본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다. 앞으로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고요한 느낌을, 그리고 이 공간에 결국은 딸을 초대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요리해 주는 단 한 사람, 내가 세상에서 이 방으로 초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내 딸. 내 딸이 보고 싶다.


이사에 취업에 성공했다고 도취해 있긴 싫다. 출근은 정확히 3월 3일, 그 때까지 나는 산책을 하면서 체력 관리를 해야 한다. 장시간 근무이기 때문에 체력을 반드시 단련해야 한다. 여기에서 5년을 살았지만 도심으로는 나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동네 구경이라도 할 겸 마실을 다녀와야겠다. 도서관, 책방, 영화관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파악해 놓았다. 왠지 오늘 밤은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다. 기뻐서 그렇기도 하고, 설레서 그렇기도 하고, 두려워서 그렇기도 하다. 사실 두렵다. 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조증이 재발되진 않을지 두렵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지금 안전하고 따뜻하고 혼자인 공간에 잘 있다. 잘, 있다. 잘 먹고 잘 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렇게 외로워 말자. 두려워 말자. 일하는 건 다 힘들다. 돈 벌자. 독립하자. 그래서 딸에게 나도 멋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걸, 행복하게 잘 사는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세상 사람들아!

저 독립했대요.

아직 미약하고 서툴지만 그렇다네요.

이제부터 진짜예요.

진짜 삶의 시작.

내가 찾은 나만의 미래.

새로운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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