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에게서 답장이 왔다.

by 최미야

지난 이틀간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동안은 OO이와 통화하는 것에 대해 크게 간섭하지 않았지만, 가까이 이사 온 이상 상황에 맞게 명확한 규칙을 정했으면 합니다. OO이는 아직 어리고, 급격한 환경 변화에 혼란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 OO이에게 전화할 때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 해주길 바랍니다.

•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러 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 면접 교섭 또한 당분간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가 동행한 상태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OO이에게는 아빠 허락 없이 엄마를 만난다거나 만나러 가는 것은 안 된다고 교육하고 있으며, 전화 또한 앞으로는 허락하에 하게 할 예정입니다.

위 내용이 잘 지켜질 것이라 믿기에 따로 기계적인 제한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제한을 할 수도 있음을 알아주세요. OO이가 성장하면서 차차 자연스럽게 풀릴 일이겠지만, 이제 입학을 앞둔 상황임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OO이를 생각한다면 본인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겨주세요. 제 입장에서는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OO이를 만나게 하는 것이 마음 편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OO이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생각보다 주변에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믿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OO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봤으면 합니다.


전남편에게서 이틀만에 답장이 왔다. 그 답장을 여기에 그대로 붙여보았다. 읽고 나서 역시 내 전남편이다, 했다. 정말 계획적이고 철저한 인간. 모든 것이 딸 위주로 돌아가는 인간. 어쩔 수가 없는 걸 알지만 내용들을 보고 좀 속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가 양육권자, 친권자인 입장에서 나는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면접 교섭은 1주는 제가 만나고 1주는 조부모님을 만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반응은 긍정적이니 됐다. 앞으로 아무때나 전화할 수 없다는 게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규칙은 규칙이니. 전남편은 내가 정신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한 사실도 알고 있고, 또 결혼 생활 내내 내가 조울증으로 별 개지랄을 다 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상황이다. 즉 내 심신이 언제든지 불안정해질 수 있으므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나는 조금의 열패감과 좌절감이 들었다. 내 개인적인 일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지만, 아이는 역시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오늘은 일주일 동안 난리를 쳤다가 처음으로 아무 일정도 없는 날이어서 그런가 몸이 계속 늘어졌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블랙커피를 마시고 쉬고 있는데 딸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딸은 내 이사 소식이 꽤나 궁금한지 계속해서 거실을 보여달라고 하거나 문은 어디에 있냐고 하고 물었다. 나는 엄마 방에는 거실이 없어, 하고 웃었다. 내 딸은 지금 우리 엄마집에 있는데 방금 또 전화가 왔다. 울면서. 엄마랑 놀고 싶었는데 엄마가 집에 없어, 하고. 딸은 내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터다. 나는 이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어서 내 집에서 딸과의 면접 교섭이 이행되고, 그 생활이 익숙해지면 좋겠다. 전남편의 생각해보겠습니다, 라는 말은 긍정적인 신호로 봐도 무방하다. 그 사람은 아닌 건 칼같이 차단하니까. 다만 당장 엄마를 못 봐서 울고 있는 딸이 걱정된다. OO아, 엄마는 지금 경기도 모 시에, 우리 딸이 사는 곳 근처에 혼자 있어. 엄마는 널 기다리고 있어. 모든 걸 준비해 놓고 기다릴게. 항상 여기에 있을게.


당장 엄마집에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난 엄마 아빠 얼굴을 잠시도 보기 싫다, 지금은. 내 고집도 참 대단하다. 딸이 저렇게 우는데도 안 간다. 못되고 양심없는 엄마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전남편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게 되는 딸을 많이 걱정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혹시나 엄마의 급격한 이동이, 딸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난 언제까지나 시골 그 구석에서 살 수 없었다. 엄마의 감시를 받으며 살 수 없었다. 잉여인간처럼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혼자 살아야 한다. 독립해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합리화 같은 말일지라도, 나는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한번 거쳐야 할 변화였고, 그게 조금 앞당겨진 것뿐이라고. 내 생각과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일은 등본을 떼러 행복센터도 다녀와야 하고, 통장사본을 떼고 카드와 통장을 만들러 은행에 가야 한다. 주문한 슬리퍼는 내일이나 내일모레 도착할 것 같다. 나는 그냥 담담하다. 조용한 원룸 안에서 나는 어색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혼자 있으니 편안하다. 평생을 거실 있고 방 3개 이상 있는 곳에서 살다가, 원룸에서는 처음 살아보는데, 정말 이상하다. 작은 주방이 현관 바로 옆에 있고, 메인 방과 주방을 분리시켜주는 문이 하나 있다. 그리고 작은 베란다에는 세탁기가 있다. 방 안에는 냉장고 하나만 덜렁 있다. 그리고 화장실. 내 물건들을 하나씩 채워가고는 있지만 정식 이사 전까지는 많이 채우고 싶진 않다. 이 미니멀한 원룸이 좋다. 청소도 쉽고, 동선이 간단해서 편하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적응하려고 한다. 앞으로 여기에서 새 삶을 꾸려 나가야 하니까.


전남편의 메시지 중에서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 생각보다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건 나도 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소식을 듣고 걱정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와 동시에 놀랍게도 무관심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잘 살길 바라겠지. 내가 무너져내리는 꼴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 있다 해도 난 신경 안 쓴다. 우선 내가 할 일은 내 딸과의 면접 교섭일을 잘 중재해서 조만간 내 집에서 딸을 하루 빨리 보는 것이다. 쓰지도 않는 주방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자르고 지지고 끓이고 해서 딸에게 맛있는 밥을 해줄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행복하다. 딸이 좋아하는 크림파스타와, 된장찌개를 해줄 생각이다. 콩나물을 좋아하는 내 딸. 두부를 좋아하는 내 딸. 엄마가 좋아하는 거 잔뜩 해줄게, 내 딸. 언제든 와, 엄마집에. 우리 딸만큼은 항상 환영이야. 사랑해, 내 딸.


내일 일정을 소화하고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정주행할까 생각 중이다. 다음 주 한 주 동안은 산책도 하고 도서관에도 가보고 동네 탐방을 제대로 해야겠다. (그 김에 딸이 사는 아파트 단지까지 걸어서 가볼 참이다, 전남편은 싫어하겠지만) 점심에 햄버거 세트를 푸지게 먹었는데도 저녁이 되니 또 배가 고프다. 사람은 유기체다. 먹고 싸고 자고 하는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 병이 나고 만다. 많은 것들이 AI로 대체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람이란, 참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먹고, 싸고, 자야 한다. 필수적으로 그렇다. 당연한 말을 하는 것같지만 의식해 보면 당연하지 않다. 매 끼니를 챙겨야 하고, 매번 싸야 하고, 매번 양질의 수면을 해줘야 한다. 정신은 몸이란 그릇에 담긴 것. 난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몸을 잘 챙겨야 한다. 몸이 무너지면 안 된다. 잘 먹이고, 잘 싸고, 잘 재워줘야 하는 것이다. 난 내 몸에게 잘해줄 의무가 있다.


엄마에게 집나온 뒤 처음으로 카톡을 했다. 전남편이 이렇게 문자가 왔어. 같이 논의해 봐야 할 것 같아서 카톡해, 라고. 아직 답은 없다. 엄마는 여러가지 수를 생각 중이신 것 같았다. 최선의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라면. 아직은 엄마와 이야기하긴 싫지만 그녀의 배를 찢고 나온 나는 그녀의 자식. 면접 교섭에 대한 논의가 잘 끝났으면 좋겠다. 잘 이행되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대로 다 되었으면 좋겠지만, 전남편이 제시한 조건은 잘 지켜주는 게 도리이므로, 아무튼. 아무튼. 부디 새로 시작한 내 생활 리듬에 딸과 기타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작게 소망한다. 이제 진짜 다시 만난 세계라고. 진짜 다시 내 세상을 만난 거라고. 그리고 그 세상은 내게 조금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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