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에 딸에게서 전화가 와서 깼다. 딸은 엄마~ 엄마 방에 스티커 써도 돼? 하더니 알았다고 하자마자 끊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어젠 그렇게 보고 싶다고 울더니 또 적응했나보다, 했다. 나는 일어나서 씻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옷을 입고 나갔다.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등본을 뗐다. 현주소가 떡하니 뜨는 그 등본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 진짜 이사했구나. 나 정말 여기 살러 왔구나, 실감이 났다. 그러고는 은행으로 가서 통장과 카드를 만들고 통장사본을 뗐다. 지갑을 열어보니 내가 엄마집에 살 때 가지고 다녔던 도서관 회원증이 두 개나 있길래 오는 길에 버렸다. 이제 갈 일 없겠다 싶어서 그랬다. 바로 밑에 스벅이 있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올해 생일에 받은 스벅 쿠폰만 15만 원이라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다) 다이소에서 투명파일을 사고, 침구집에서 딸이 쓸 베개를 2만 원 주고 사들고는 집으로 왔다. 그러고 집에 앉아 있는데 배가 고픈 것이다. 요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해서 근처에 있는 애슐리로 향했다. 무려 네 접시나 먹고 왔다. 디저트와 커피까지 야무지게 먹고 마시고 나온 나는 집에 와서 낮잠을 잤다. 아주 달디단 낮잠이었다.
원룸이라 그런지 머리카락 떨어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다. 나는 보일 때마다 청소를 하고 있다. 원래 청소 같은 건 몰아서 하고 잘 하지도 않는 성격인데 진짜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하게 된다. 옆에 있는 딸의 베개를 흐뭇하게 쓸어보았다. 이 집에 들어온 지도 벌써 5일차가 되었다. 고시텔에 상주하지 않고 여기로 바로 계약해서 온 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좁고 춥고 어두운 모텔방은 어찌저찌 견뎠다 하지만 고시텔은 정말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더러운 침대와 더러운 화장실, 좁디 좁은 공간. 난 거기 있었으면 아마 독립한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이곳으로 들어온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원룸이지만 있을 건 다 있고, 난방 잘되고 따뜻한 물도 잘 나오는, 세탁기도 냉장고도 에어컨도 있는 이 작은 집. 이 집에서 나는 하나하나 일상들을 꾸려 나가야 할 것이다.
최대한 옆집 윗집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담배는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피우는데, 환기는 잘되어서 좋다. 작지만 베란다가 있는 게 다행이다. 보일러 위에는 누군가 받아놓고 안 가져간 꽃다발이 보였다. 누구였을까, 내 직전 이 집에서 산 사람은. 잘 살고 나갔을까. 난 이 집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 우선 2년 계약인데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내가 돈을 잘 모으고 형편이 좀 나아지면 투룸으로 옮길까 싶다. 일단은 이곳에서 잘 적응하는 게 목표다. 동네에는 외국인이 정말 많다.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 같다. (우리집 바로 앞에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 있는데, 저녁이 되면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나는 언젠가 한 번 가보고자 한다) 방금은 띵동! 하고 벨이 울려서 나가봤더니 교회에서 전도하러 사람이 왔다.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안에서 바깥을 보는 유리너머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가세요! 하고 소리질렀다. 기독교라면 질색이다. 딸과, 숙모와, 아는 언니밖에 지인이라고는 없는 이 경기도 모 시에서, 나는 아무리 외로워도 종교 활동 따위는 안 할 것이다.
화장실 문이 다 안 닫힌다. (웃음) 화장실은 샤워할 공간만 간신히 나오는 구조다. 나는 바닥에 매트를 깔고 이불을 깔고 베개를 던져두고 바닥생활을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침대 생활을 해온 내게는 아주 불편한 구조다. 이 글도 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쓰고 있다. 여러모로 현타 올 상황이지만 난 의외로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다. 이 정도면 독립해서 나온 보람이 있다, 하고 생각 중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2분만 걸어나가면 시내고, 내가 있는 곳은 죄다 주택가라 조용하다. 윗층 사람이 쿵쿵대는 소리, 말하는 소리가 조금 들려오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벌레만 안 나오면 되는데, 하수구에 벌레 퇴치용 장치를 해야겠다. 주방은 아직 한 번도 안 써봤는데 아무래도 딸이 오기 전까지는 방치될 듯하다. 난 원래 요리 안 하고 또 하기도 싫어하니까. 쓰레기는 절대 음식물이 나올 수가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 혹여나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벌레가 들끓으면 안 되니까.
셔츠 한 벌, 니트 두 벌, 외투 하나, 바지 두 개, 양말, 속옷 세트 15개. 이게 내가 가진 옷의 전부다. 나올 때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다 두고 왔다. 정식 이사가 잡히면 엄마 얼굴을 봐야 하는 게 괴롭다. 엄마가 아빠집에 가셨을 때 후루룩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1년 정도는 엄마 얼굴을 안 보고 싶다) 쿠로미가 그려진 내 검은색 캐리어에는 면접 교섭과 양육비 내용이 적힌 서류와, 부동산 계약서 같은 게 나뒹굴고 있다. 방금 딸과 또 영상통화를 했는데 딸은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와 함께 꽃을 보러 간다고 했다. 딸은 기분이 괜찮아 보였다. 그 애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확 놓였다. 딸, 미안해. 지금 당장 딸을 보러 갈 수 없는 엄마를 이해해줘. 엄마는 지금 잔뜩 웅크리고 출근 준비 중이야. 일할 준비 중이야. 엄마가 미안해. 사랑해.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내 딸.
이제 서류 준비도 다 되었고 여기서 딱히 할 일은 없다. 약속도 없다. 따로 약속을 잡고 싶지도 않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연락해서 만날 수도 있지만 굳이 나가고 싶진 않다. 거의 9일을 집에서 혼자 보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다행히 출근 전까지 시간을 좀 벌어놔서 이것저것 하면서 쉴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거의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이렇게나마 살아 있는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이 벌레처럼 느껴지거나, 살기 위해 발악하는 쥐새끼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 살려고 몸부림치는 한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냥 나는 인간. 그저 혼자 한번 살아보겠다고 용쓰는 한 인간일 뿐이다. 길고양이들이 한적한 길 위로 지나다니는 것을 본다. 한 아이는 임신한 건지 배가 불룩하다. 아,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오만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따뜻한 집이 있고, 먹고 마시는 데 부족함이 없고, 직장도 있고, 언젠가 이 집으로 딸을 데려올 수도 있다는 데에 감사함을.
그래, 감사함을.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집을 나왔고, 내 손으로 많은 일들을 진행시켜 여기까지 왔다. 의기양양한 것까진 아니다. 아직 직장 이슈가 남았다. 내가 잘 적응해야만이 이 독립은 완전해진다. 최소 1년이 지나야만 내 독립은 유효한 딜이 될 것이다. 난 허무맹랑한 꿈같은 건 안 꾼다. 현실 가능한 것에만 도전하고 실행한다. 로또 사는 것도 안 한다. 내가 엄청난 부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항상 현실에 발붙이고 두 발로 서서 주위를 둘러보려 한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앞뒤 다 돌아봐도 답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은 거절한다. 아까 행정복지센터 계단을 올라가는데 이런 글이 보였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저기도 나중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반드시 행복해지리라. 노래 <VVS>의 가사가 생각났다. "보여줘야겠어, 내가 망할 거랬던 놈들에게도, 내가 잘될 거라 했던 너에게도". 내가 망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난 반드시 필연적으로 잘될 것이다. 잘된다는 게 떼돈 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응, 난 별일 없이 지내. 하고 말할 수 있으면 성공이다. 누구에게 과시하기도 싫고, 누구에게 동정받기도 싫다. 난 진짜 소소한 걱정거리를 떠안고도 별일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1인이 되고 싶다. 그 평범한 행복을 향하여 드디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벌벌 떨렸다. 하지만 나는 해내고야 마는 인간이다. 나는 욕심이 어마어마한 인간이다. 나는 이상이 높고 깊은 인간이다. 지난 5년간 많이 방황하고 아파했지만 이젠 다 떨쳐내리라.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