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좁은 원룸에서.

by 최미야

쓴다. 어제는 엄마집에 다녀왔다. 화해하고, 이야기하고, 잘 마무리했다. 부모님은 내 독립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신다고 하셨고, 더이상의 말은 없었다. 면접 교섭은 당분간 내 집에서 이루어질 것 같은데, 전남편의 부탁대로 외할머니,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동행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보기 싫은 얼굴이었는데, 우리 엄마, 노모의 얼굴을 보니 그 낡고 지친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 가족의 연은 쉬이 끊어지지 않는구나, 했다. 나는 딸과 하루종일 놀아주었다. 슬라임 놀이를 하고, 카페에 가고, 다이소에 가고, 산책을 하고, 눈싸움을 하고, 공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계란말이와 돈까스를 해주었다. A형 B형 독감을 차례대로 앓은 딸은 입맛이 크게 없었다. 나는 50분 넘게 밥상에 앉아서 딸에게 밥을 떠먹여 주었다. 그래도 엄마가 해준 거라고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데 너무나 행복했다.


이번 달까지 엄마 아빠가 양육비를 보태주시고, 다음 달부터는 아예 일절 경제적인 지원은 안 해주실 예정이다. 나는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은 점심에 같은 동네에 사는 숙모를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사서 드라이브를 했다. 숙모에겐 내가 시조카인데, 숙모는 마치 아는 언니처럼 포근한 느낌이 있다. 근처에서 항상 있을 테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해. 그 말만으로도 나는 마음에 큰 힘이 되었다. 경기도 모 시, 낡고 좁은 원룸에 여자 혼자 사는 나는 이곳에 아는 이라고는 네 명밖에 없다. 내 딸, 전남편, 숙모, 아는 언니. 이렇게가 다다. 아마 정식 이사는 다음 달에 시간 날 때 할 것 같다. 책상과 침대와 작은 살림들을 가져올 예정이다. 엄마집에 다녀오면서 양말과 바디샤워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조금 챙겨서 나왔다. 아침에 아직 잠기운에 빠져 침대에 가로로 누워 뒹굴거리고 있는 딸에게 '엄마 갈게, 3월에 봐, 딸.' 하고 뽀뽀를 쪽, 하고는 난 여지없이 집을 나왔다.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사는데 사장님이 대체 어디 갔었냐고 묻는다. 이사했어요. 아이구 그랬어요. 섭섭하다. 엄마집에서 살던 살림이 아직 정리가 안 되었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갔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추석에나 보겠네요. 네. 잘 살아요. 그렇게 한 사람의 축복을 받고 나는 편의점을 나왔다.


친구가 미용학원에 등록한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응원해 주었다. 부끄럽지만 나를 보고 동기 부여가 많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 친구는 내가 이번 설에 가출(웃음)했을 때 돈을 보내 줬다. 우리는 이야기를 해서 지난 응어리들을 잘 풀었고, 다시금 친구가 되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라면 슬픈 거지만, 그래도 이 관계를 지속하리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들에게 크고 작은 말실수를 한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생각해 봤다. 내가 과연 마냥 착하고 순한 아이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에고가 굉장히 강하고, 때로는 자의식 과잉에 안으로 쏟는 에너지가 엄청날 때가 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말실수를 하고야 마는 것이다. 남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한다. 그걸 놓쳐 버릴 때가 있다는 게 놀라운데, 아무튼 앞으로는 역지사지의 기운을 빌려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앞서 미용학원에 등록한다는 친구는 직업을 여러번 바꾸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난 걔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트랜스포머같다. 나 역시 출판편집자에서 간호조무사로 직종을 급하게 변경했지만, 걔만은 못한다. 나중에 샵을 차리면 놀러 가야지, 하고 생각한다. 내 친구가 만져주는 머리, 내 친구가 해 주는 메이크업. 기분 좋을 것 같다.


내 기분은 어떠한가. 나는 일을 앞두고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지난 5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정신없이 외롭고 허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던 일, 단약해서 조증이 올라와 힘들었던 일,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일, 누군가를 사랑했다가 상처받은 일, 직장에서 실패하고 다시 집에서 칩거했던 일 등등. 나는 대체적으로 우울하고 가라앉은 글을 쓰지만 올해부터는 조금 더 희망찬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벼랑끝까지 몰려있었어도 나는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내 자신이 평범한 동시에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놓지 않았다. 나는 언제까지나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로 살아갈 것이다. 아까 숙모 말이 기억에 남는다. 미야 너는 멋진 사람이야.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돌아오면 돼. 괜찮아. 그래, 돌아오는 길이 조금 멀었지만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앞으로 20년은 무슨 일을 해서든지 노동해야 하고, 그건 빼도박도 못한 진실이다.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다. 늙어빠져 지쳐버린 종달새가 되어도 삐이- 삐이- 하고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이제 출근은 6일 남았다. 행정업무는 다 처리해 놨고, 간호화도 새로 사놓았다. 유니폼은 회사에서 제공할 예정이니 출근 날 바로 입고 근무하면 될 일이다. 작년에 일한 게 간호조무사로서 예행연습이었다면 이젠 실전이다. 딱 봄이 시작되는 3월에 첫출근인 것도 맘에 든다. 첫 출근 날, 내 딸은 첫 초등학교 등교날이다. 나도 딸과 같은 새로운 새 마음으로 시작해 봐야지. 내가 다니는 곳은 교통사고 환자가 많이 오는 한의원으로, 365일 운영하는 곳이다. 주4일이긴 하지만 많이 바쁠 것이다. 각오하고 있다. 한 달 정도지만 그래도 한의원에서 일해 본 경력을 최대한 살려 팀원들과 협동하고 소통하고 같이 잘 일해 볼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출판 편집자를 하다가 갑자기 간호조무사로 직업을 바꾼 데에 많이들 놀란다. 난 적게 벌더라도 오래 일하고 싶은 직장을 찾은 것이다. 나이는 문제가 안 되지만 난 지금 간호대학을 갈 생각도 없고 그저 간호조무사로 만족한다. 돈을 벌고, 내 작은 생활만 돌아가게 한다면야, 나는 직장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샤카 칸의 <I Feel For You>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결코 앞날에 행복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고난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겨내야 할 것이다. 슬픔과 고난에 잠식되어 나 자신을 놓아버리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다. 딸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 나는 그 애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 주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게는 남자도, 많은 돈도 필요없다. 그저 딸의 바람직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그 애를 지켜줄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잘 지키는 일. 그것밖에 없다. 그 애를 지키려면 나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딸, 그동안 엄마가 슬픔에 잠겨, 고난에 다쳐 너의 아름답고 빛나는 사랑을 다 받아줄 수 없었던 것에 미안해. 엄마는 우리 딸이 세상 최고로 사랑 많은 아이가 되길 바라. 엄마 마음에도 많은 사랑을 담아, 하루하루 살아가도록 노력할게.


사랑해.

비록 낡고 좁은 원룸이지만 널 초대할게.

사랑해, 내 딸. 사랑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빛나는 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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