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일절. 대한독립만세. 그와 동시에 나도 '그'에게서 해방된 날. 어떤 일을 계기로 나는 이제 드디어 '그'에게서 해방되었다. 너무 웃기고 어이없게 정이 떨어져버려서 허무하지만 그래도 해방은 해방이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구구절절 그에 대한 마음을 읊는 글을 이제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쓸 가치가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오늘 깨달았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내 새로운 마음을 담을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 준비는 되었다. 새로운 집과, 새로운 직장, 새로운 사람들. 시작하기 딱 좋다. 난 준비가 되었다. 마음이 편안하다. 정말. 다행이야. 더 늦지 않게 해방되어서.
어제는 하루종일 감기 때문에 골골댔다. 편의점에서 산 판피린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일어나서 밥 먹고 약 먹고 잠을 자고의 연속이었다. 글 쓸 여력도 없었다. 내게는 참 의미 있는 2월의 마지막 날에 나는 감기 때매 헤롱거렸다. 오늘은 7시 반에 일어났는데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다. 점심으로 크루아상샌드위치를 먹었다. 신선한 오렌지주스도 한잔 마셨다. 원룸이라 담배는 실내에서 못 피우기 때문에, 아니, 월세라서 피울 수도 없지만 아무튼 그게 좀 답답하다. (글 쓸 때 입에 담배를 물고 있으면 왠지 더 잘 써지는 그런 느낌적 느낌)
Emancipation. 해방. 가슴 한구석이 후련하다. 뭔가 하나 뚝 잘려나간 느낌인데, 오랫동안 박혀 있던 말뚝이 퍽 하고 뽑힌 느낌이기도 하다. 딸은 지금 전 시가에 있어서 전화를 못한다. 그게 좀 답답한데,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나랑 통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차마 전 시가 식구들이 있는데 딸에게 전화하지는 못하겠다. 생각해보면 지난 5년은 감금의 역사였다. 스스로를 여러가지 굴레에 가둬두었었다. 난 할 수 없을 거야, 난 안 될 거야,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은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라고는 했지만 난 새장에 갇힌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였다. 정말 그랬다. 이젠 훨훨 날아갈 차례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숲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리. 나는 모든 것의 노래가 되리. 아름답게 지저귈 수 있기를.
집에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썰렁한데 이상하게, 묘하게 지금 상태가 맘에 든다. 미니멀리즘의 끝판왕 진짜. 이불 하나, 짐 하나, 쓰레기통 하나 있는 이 생활이 정말 기묘하게도 좋다. 다음 주 화요일이 첫출근이니 정말 이제 휴일은 이틀도 안 남았다. 어제 도서관을 못 가서 오늘 가보려고 검색해봤더니 삼일절이라고 쉰단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삼일절인데. 민족 대해방의 날이니만큼 쉬어줘야지. 아, 그리고 나를 골치 아프게 했던 인연이 하나 끊어졌다. 몇 번 손절하려고 망설였는데 다행히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 지인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쓰기도 싫다. 너무 나를 감정적으로 귀찮게 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예민하고 까다롭고 노답 인생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 이제 1도 없다.
당근 모임은 너무 술자리 위주에다가 놀자판이라 다 탈퇴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친구를 당장 사귀는 것은 힘들겠다 싶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는 인연들에 대해서 잘 받아들이고 생각해 봐야겠다. 술 마시는 모임은 정말 싫다. 마치 술에 의해 허락된 모든 무례함과 치기와 어설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라 난 술자리는 정말 싫어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맨정신으로 못할 말을 취기에 말하는 인간은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라.
사람들은 참 다면적이다. 추한 면도 있고 놀라울 정도로 다정한 면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정말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똑똑하기도 하다. 메타인지가 잘되어서 역지사지로 남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재밌다. 다면적이라 재밌다. 저 사람이?! 하고 놀라는 부분도 있기에 사람은 참 무궁무진한 존재인 것 같다. 항상 탐구하고 싶은 것, 사람. 그리고 세상. 세상은 놀라우리만치 복잡하고 때로는 단순하다. 혹독한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따스한 곳이 세상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나 역시 복잡다단하고 기묘한 존재가 되는 수밖에 없다. 좀 더 강해지길 기원한다.
오늘은 몸이 좀 나아졌으니 기운차게 시작해볼까. 남은 이틀의 연휴 어떻게 보낼까. 신난다. 해방도 되었고 나는 마음이 날아갈 것 같이 편안해졌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간호화도 준비해 두었고, 등본과 통장사본도 준비해 두었고, 출근날 입을 옷도 준비해 두었다. 일을 시작하면 정말 힘들겠지만 각오하고 있다. 다행히 나는 환자들을 대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 그들과 스몰토크하는 것도 좋고, 상태를 물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처치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편집자일 때는 내가 간호조무사를 한다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내게 간호조무사를 추천해 준 친구에게 선물을 하나 보냈다. 친구야, 덕분에 취직했다. 고맙다.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날이다. 많은 것에서 해방된 날이다. 삼일절. 오늘을 잊지 않겠다. 오늘의 이 한결 가벼운 마음을 잊지 않겠다. 해묵은 감정일랑 이제 훌훌 벗어버리고 날아오르자. 강변 근처에 개나리꽃이 벌써 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은 언제나 좋다. 얼른 덥고 땀나는 여름이 오길 기다린다. 초여름 신록을 어루만지면서 산책하고 싶다. 레드벨벳의 가사처럼 새로운 계절이 불어오고 있다. 마음이 붕 뜬다. 놀랍게도 혼자 사는데 그렇게 외롭지 않다. 이 생활이 오래되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해방의 기운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다.
해방이오!
해방이오!
나를 속박하던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오!
난 자유의 몸,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몸.
우울한 블루스는 그만, 이젠 록큰롤을 틀어제끼자.
다시, 해방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