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엄마에게 이직했다고 말을 못해서 위장출근을 했다. (웃음) 지금은 모텔이다. 아침에 딸이 가는 걸 배웅하고 나왔다. 딸은 밤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잠을 잤다. 어제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카페에 가자는 게 아닌가. '엄마랑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카페 가고 싶었어.' 스벅에서 케이크를 야무지게 한입 먹는 딸을 보고 있자니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앙큼상큼하게 생긴 내 딸. 눈이 정말 크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어쩜 이렇게 이쁜지. 딸과의 카페 데이트는 대성공이었다. 딸은 내가 시킨 케이크와 핫초코를 맛있게 먹었다. 사진도 찍었다. 요조숙녀처럼 더 큰 내 딸이 난 너무 이쁘다. 사랑스러운 딸, 한 달 뒤에 봐.
최미야는 최미야 거. 내 인생의 영역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것. 모든 게 내 선택. 그걸 증명하려고 이러고 살고 있다. 엄마가 집에 와서 이것저것 사왔는데 난 그것조차 불쾌했다. 내 살림에 손대는게 너무 싫었다. 조금만 침해를 받아도 난 발작한다. 자식 걱정하는 건 이해되지만 선을 넘는 집착은 정말 숨막힌다. 가끔 엄마는 내 삶을 통제하려는 것 같다. 그 감각이 너무 싫어서 못 견디게 숨막힐 때가 많다. 이젠 엄마 손을 떠나서 나 홀로 독립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내 인생에 손을 뻗치려는 느낌을 받을 때면 그냥 세상에서 엄마가 사라졌으면 하고 빌 때가 있다. 막상 사라지면 누구보다도 슬퍼할 거면서. 가라앉혀야지. 자식인 내가 이해해야지. 내 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너무 슬플 테니까. 이해해야지, 내가.
위장출근이라니, 너무 이상하다. 모텔방은 진즉에 벗어났는데, 또다시 모텔에 와서 글을 쓰고 있다. (웃음) 그래도 동네 허름한 모텔이라 싸다. 온 김에 욕조에 물을 받아서 반신욕도 하고 샤워도 하고 씻었다. 엄마에게는 새 직장이 많이 안정된 뒤에야 말할 것이다. 그래도 출근 날을 받아놓고 이렇게 돌아다니니 여유롭지, 환승이직에 실패해서 비리비리하게 백수로 있었다면 정말 암울했을 하루였다. 일하는 척하느라 엄마에게 '응, 지금 치료실이라 카톡 못해'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중에 알게 되시면 큰 배신감을 느끼시겠지만, 뭐, 이직하는데 이 나이에 일일히 보고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불안할 건 전혀 없다. 그냥 한 달에 한 번, 딸 만날 때만 엄마 얼굴을 보는 게 좀 괴롭긴 하지만 그래도 견뎌야지 뭐 어쩌겠어. 혼자 있는 모텔방이 이제 익숙하다. 집 나와서 그 어둡고 좁은 모텔방에 있었던 것도 떠오르고, 그때는 그랬었지, 하면서 회상하게 되는 것도 조금 웃기고. 겨우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많은 게 변했다. 올해는 정말 판타스틱하군.
모텔비로 55000원을 지불하고 점심까지 제대로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삼각김밥을 먹었더니 속이 좀 허하다. 저녁은 제대로 챙겨 먹어야겠다. 이번 면접교섭 때도 돈을 많이 썼다. 다이소에 가고 빵집에 가고 밥을 사먹고 키즈카페에 갔더니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내가 필히 돈을 벌어야 할 이유다. 앞으로 딸이 더 커가면서 돈을 더 쓰게 될 텐데 나는 그때를 대비해서 더 많은 돈을 저축해 놔야 할 것이다. 앞서 썼던 글처럼 이제 길은 잘 골라잡았으니 쭉 가면 될 일이고. 내일은 도서관에 들러 통장사본과 등본을 출력하고 간호조무사 자격증 복사도 해야 한다. 아침부터 서둘러야겠다. 몇 번째 새로 시작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암튼 또 시작한다. 굳히기 모드로 들어갈 때면 많은 체력이 필요할 테니 그때를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 체력의 준비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많이 한다는데, 나도 운동이나 하나 해볼까 생각도 한다. 산책만으로는 무리인 것 같다.
서글픈 위장출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직을 앞두고 있고, 전직장에서 일했던 월급은 다음 달 7일에 입금 예정이다. 만근수당을 제외하고 들어온다는데 과연 얼마나 들어올지. 기대는 안 한다. 그저 월세나 낼 수 있을 정도였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 모텔방에 있으니 시간 잘 간다. 아침 8시 48분에 들어왔는데 벌써 2시가 훌쩍 넘었다. 갑자기 독립 결심하던 날 편의점에서 돈이 없어서 혼자 컵라면을 먹던 게 생각난다. 그땐 정말 암울했었다. 나 어떡하지. 이런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울하고 힘들었지. 하지만 내 손으로 바꿨다. 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만나는 사람, 사는 곳, 하는 일을 싹 다 바꿔 버렸다. 후회없다. 정말. Pale Blue Dot. 창백한 푸른 점 속에서 살아가는 나. 우주에서 보면 먼지 한 톨조차 안 되는 나. 일희일비하는 나.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는 나. 신기하다. 이런 내가. 내 존재가. 인간으로 살면서, 나이를 이만큼 먹었으면서도 새삼 놀라운 것들이 새로 생긴다는 게.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돈이 없어서, 몸이 아파서, 직장이 불안정해서, 아이가 아파서, 결혼생활이 원만치 않아서, 등등, 불행한 이유는 정말 많다. 톨스토이도 그랬다. 안나 까레니나 첫 문장에서 '행복한 부부는 다 같은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부부들은 각자 다른 이유들로 불행하다'라고. 불행의 얼굴은 정말 다양하다. 그렇지만 불행 속에서도 재밌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또 다른 행복의 면모라고도 생각하는 편이다. 일상속에서 작은 행복과 재미를 발견하는 것조차 나는 능력이라고 본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들여다볼 것. 마음 정돈을 잘할 것. 항상 그렇게 살다 보면 힘든 하루하루도 버틸 만한 게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또 시작이다.
곧 버티기, 굳히기 단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새로 또 다시.
다시 만난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