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에 일어나서 블랙커피 한잔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9시에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다시 만들고, 등본과 간호조무사 자격증 사본, 통장사본을 떼었다. 거의 6년 만에 오는 도서관인데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고요하고 조용하고 아늑한 그 분위기. 책을 좀 둘러보다가 나왔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남짓한 거리. 가까웠다. 어제는 지인을 만나고 오는 길에 출근 바지 하나를 샀다. 검은색이면 된다 해서 아무거나 골랐는데 잘 맞고 예뻤다. 첫 출근이니까 메모장을 하나 사야겠는데, 이따가 다이소에 가야겠다. 난 이제껏 회사에서 선임을 달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신입. 직급이 올라간 역사가 없다. 신입은 메모해야 한다. 무조건. 그래도 출근 준비를 다 해놓고 쉬니 마음이 편하다. 어제는 한 것도 없이 피곤해서 9시가 되자마자 골아떨어졌다. 2주 동안 서서 일한 게 이제야 여파가 오는지 발목이 아팠다. 지금은 몸이 아프면 끝장난다. 건강관리 잘해야지. 절대로 잘해야지.
방금 잠봉뵈르와 뜨거운 블랙커피를 주문했다. 브런치로 먹을 예정이다. 엄마와 싸운 게 아직도 맘에 걸린다. 위장출근 때문에 싸웠는데 엄마는 또 아프다. 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일이 안정되고 말씀드리는 게 지금 상황상 베스트라서. 엄마, 그냥 좀 넘어가주면 안 되는 거였어?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엄마는 그렇지가 않다. 항상 내 걱정을 하고, 내가 혹여나 잘못될까 봐 염려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면 새 직장에서 잘 정착해서 다니는 수밖에 없다. 어제는 좀 우울했다. 딸과 전화를 하는데, 전화 통화 가능한 시간을 훌쩍 넘어서 계속 끊겼다. 결국 우리는 카톡으로 소통했다.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을 철저히 제한해 놓은 전남편이 살짝 미워졌다. 그러나 딸은 미성년자이고,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므로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니 또 기분이 나아졌다. 전남편은 참 딸을 잘 키운다. 엄마가 그 집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고기며 과일이며 생선이며 다 있었다고 했다. 참 꼼꼼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 그 남자가 바로 내 전남편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왜 사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론 내 생명력을 믿지만, 세상에 대한 믿음을 알지만, 가끔씩 그런 회의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잠들긴 했는데 또 뉴스에서 누가 급사했다, 죽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숙연해진다. 생이란 거 진짜 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건데,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될 일이라는 걸.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 오래 해봤자 도움 될 거 없다는 거 알고 있다. 인생에 출사표를 내던진 이상 나가야 한다. 지체하고 말고 그럴 시간이 없다. 가야 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지리멸렬한 일상이 존재할 것이다. 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출퇴근을 반복하고, 쉬는 날에는 그저 쉬고, 글도 쓰고, 먹기도 하고, 또 딸을 만나겠지. 40대가 뭐 그리 판타스틱할 거라고. 기대하는 게 바보같다. 그냥 가는 거다. 그냥...
아이러니한 나. 최근에 연락이 닿았던 사람과 또 연락이 끊겼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늘 불안정했고, 항상 전화를 하면 내가 마치 감정쓰레기통이라도 된듯 자기 감정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난 지쳤다. 뭔가 이득이 있어서 사람들과 관계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악영향은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도 그저 안부 묻고 지낼 수 있는 관계만으로도 만족하는데, 내 삶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관계는 정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난 그 사람이 너무 싫다. 자기 삶에 대한 불평 불만은 매번 늘어놓으면서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게 너무 답답하다. 난 그 자리에 고여서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들이 제일 싫다. 다시는 연락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드디어 연락이 끊어져서 행복하다 진짜)
아까 도서관에 갔을 때 회원정보를 수정하는데 배우자 번호를 묻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혼했어요, 하고 대답했다. 전화번호도 바뀌어서 추가 수정을 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다시 돌아오긴 했는데 다른 모습으로 컴백한 느낌. 이름도 바뀌었다. 나는 원래 최미야로 태어났는데 중간에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최미야로 돌아왔다. 그새 이름도 전화번호도 주소도 신분도 바뀌어있었다. 사실 신난다. 엄마집에 살 때는 언제나 독립하나, 언제 엄마아빠 떠나서 시작해보나, 바닷가의 어느 마을로 도망치고 싶다, 이런 생각에 찌들어 살았는데, 막상 혼자 살고 보니 모든 게 일상이라 희한하다. 내가 혼자 있다는 게 아직도 안 믿긴다. 신나고 들뜨고 그런데 사람들을 막 만나고 다니긴 싫다. 힘들고 지친다. 그냥 집에서 혼자 글쓰고 커피 마시는 게 더 좋다.
글을 쓰고 정신과에 상담을 가봐야겠다.
내 자신을 체크해야 한다.
잠봉뵈르와 커피를 먹고 나선다.
출근 준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