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하루.

by 최미야

9시 넘어서까지 자고 일어났다. 이렇게 많이 잔 건 오랜만이다.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은 취득한 다음 해부터 보수교육 8시간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고 해서 지금 결제하고 듣는 중이다. 과를 선택할 수 있어서 <정신간호>와 <수면장애>를 선택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에 가입하고 자격증 등록을 하는데, 자격번호를 넣으니 검색이 되는 게 뭔가 내가 진짜 라이센스를 땄구나 싶었다. 지금 근무하는 직장도 검색해서 넣어야 했는데, 다행히 검색이 되었다. (웃음) 전라도 광주 여행이나 갈까 생각했는데, 다녀오면 너무 피곤할 것 같고 돈을 많이 쓸 것 같아서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는 고모랑 친구와 약속이 있다. 수목금을 집에서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뭘 할지는 안 정했다. 그냥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사실 내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고 싶었던 건 롤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친구 따님이 정신과를 다니는데 우울증으로 약물을 처방받고 있다.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는데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다니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하고 꿈꾸었던 것 같다. 언제 실현하나 했는데 어느새 나도 그렇게 되었다. 그 언니는 오프라인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많이 안정돼 보였다. 부러웠다. 그 언니도 언니지만 친구의 추천이 없었다면 난 시작할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늦게 간호조무사 도전을 하다가 중도 포기했다. 많이 안타까웠다. 이번에 취업하고 나서 그 친구에게 '간호조무사를 추천해 줘서 고맙다' 하고 커피 쿠폰을 보내 주었다. 그 친구의 사정이 좋지 못해 자주는 연락 못하지만 그래도 보답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고맙다, 친구야. 너 덕분에, 라이센스 땄어. 잘해 볼게.


어제 지출 수입 결산을 내보았다. 한 달에 다 쓰고 딱 100만 원이 남는다. 한 달에 100만 원을 저축하면 1년에 1200만 원을 모을 수 있다. 근속한다면 꽤 큰 돈을 모을 수도 있었다. 딸이 대학 갈 때 얼마라도 해주려면, 아니, 당장 중딩, 고딩이 되어서 학원에라도 가야 하면 돈을 보태줄 수 있도록 나는 꼭, 반드시, 돈을 모아야만 한다. 양육비도 전남편에게 주고 있지만 그리 큰 돈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게 나를 배려해 준 전남편에게 감사하다) 진짜 당장의 목표는 근속하는 거다. 그건 단기적인 뭔가가 아니라서 단숨에 뭔가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꾸준히 다니고, 버티는 것. 존버. 그것만이 답이다. 간호조무사 1년 과정도 버텼는데, 뭘, 할 수 있다. 진짜 해야만 한다. 도망칠 곳이 없다, 이제는.


오늘 올해 3월에 간호조무사 시험을 친 사람들의 합불합 발표가 나는 날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글을 올리며 공감을 받았다. 나는 솔직히 간호조무사 1년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무급노동이라는 실습도 잘 견뎠다. 이론 공부는 쉬웠다. 편집자와 간호조무사의 직종간의 갭이 참 크다. 편집자는 사무실에 앉아서 글만 만지는 사람이고, 간호조무사는 현장에서 환자들을 대면하고 원장님 어시스트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둘 다 매력적인 직종이다. 난 지금은 편집자를 완전히 포기했지만 부업으로 언제든 할 생각이 있다. 당장은 새 직장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 한 달에 30만 원이라도 부업할 게 있으면 좋겠다. 돈은 많이 벌면 벌수록 좋으니까... 지금의 나로서는.


아는 친구는 쓰리잡을 뛰고 있다고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쓰리잡을 뛰면서 미용수업까지 듣는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생각했는데 난 뭐든지 목표가 있고 그걸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목표가 없이 그냥 일만 다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항상 뭔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해 보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난 다음 스텝이 없으면 좀 심심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지금의 내 다음 스텝은 직장에 적응하는 것인데, 또 무슨 목표가 생길지는 모르겠다. 분명 나는 또다른 목표를 생각해 내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안다. 폐관수련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시작인 건지도 모르겠다. 내 목표는 10년 근속. 52살 때까지 같은 회사에서 다니는 것. 누군가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고작 6개월 만에 네 번 이직한 내가, 10년 근속? 코웃음을 칠 일이다. 하지만 목표가 그거다. 그렇게 정했으므로 난 할 것이다.


어쨌든 여유로운 나날들이다. 출근 시작하면 또 달라지겠지만 난 열심히 적응하리라. 나 자신에게 무섭게 집중해 보는 거다. 어차피 파리 목숨,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삶을 즐기면서 살아야지. 글을 쓰고 나서는 김영민의 <가벼운 고백>을 좀 더 읽고, 담배를 피우고,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볼까 생각한다. 한의원에 다닐 때는 1분 1초가 급했다.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12시간. 말이 12시간이지 정말 힘들었다. 워라벨은 없었다. 지금 다니게 될 곳은 4.5일로 토요일 하루 출근을 하지만 주중에 하루 쉰다. 왠지 직원들 중에서 흡연자는 없을 것 같아 점심 흡연은 기대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디냐. 직장이 있다는 게 어디냐.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이 간절한 마음 잊지 말고 출근하길.


딸이 갖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뭐냐고 물어봤더니 지갑이란다. 고르고 고르더니 고작 6400원짜리 흰색 지갑을 픽했다. 나는 당연히 사줬다. 어제 배송이 집으로 왔다던데 영상 통화로 얼마나 자랑을 하는지 머쓱해질 정도였다. 지금이야 6400원짜리 지갑으로 만족하는 딸이지만 앞으로 돈이 더 들어갈 건 당연한 일이고, 나는 그에 발맞춰 열심히 노동해야 할 것이다. (고작 6400원짜리 지갑에 그렇게 행복해하는 딸이 귀여웠다) 난 지금 아직 씻지도 않았다. 물론 집에서 비비적대는 날은 아예 안 씻는다. 이따가 내키면 샤워를 하고 동네 마실이라도 가볼 생각이다. 식자재마트 전단지가 왔던데 딸기가 한 팩에 만 원이란다. 생생하고 빨갛고 시원한 딸기가 먹고 싶어졌다. 소소하게 먹고 싶은 것도 사고,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있는 운신의 자유에 감사하다. 감사할 것 천지다.


꼭 하루하루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태어난 이상 삶의 의미를 찾아야겠다.

하루하루가 그 과정이고 매분매초가 지난한 그 길이다.

일희일비하지만 언제나 낙관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

그게 바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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