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 VS 결정된 뇌회로(운명?)
오늘의 발제자는 타이티님입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이 책의 사례 중의 하나인 '쥐의 단맛과 전기자극을 학습시킴으로써 단맛에 대한 거부감이 학습된 후 2세대까지 이어지는 실험'을 저한테 설명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정말 좋은 책인 것 같아서 독서모임에서 얘기해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이번 모임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토론과는 달리 발제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제안해 주셨고, 뭔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혼란한 심리상태에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책에 대한 인상은 최신의 과학정보가 담긴 정보전달적인 사례연구들이 상식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자유의지와 결정론에서 결정론에 70~80%의 가중치를 주는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흔쾌히 동의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과 마시멜로 실험에 대한 최신 업데이트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살아보면서 자유의지로만 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느끼는 씁쓸함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시멜로 실험처럼 믿고 육아를 했지만, 실험의 오류에 대해서 들으면서 과학이란 것은 가설이고, 언제든지 다른 실험에 의해서 반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맹신은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의견도 좋았습니다. DNA 영향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 단맛을 싫어하는 식욕을 가지신 분은 이 책에서 왜 내가 다른지에 대한 해답을 얻어서 기쁜 듯이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경험에 따르면 아는 것이 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하신 분도 있으셨습니다. 병에 굴복하거나 의욕이 꺾이는 것과 같은 것은 몰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부가 설명이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중요하고, 미래는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자유의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듯해서 불편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본성이 없다 VS 종의 전체적 특성만 있다>라는 문구에 대한 재미있는 상호정보교환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라고 할 때,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인간만의 특성이 있다기보다는 인간도 역시 생물 전체의 본성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며 설명하신 분과 '인간의 본성'을 철학적 관점으로 보고, 종의 전체적 특성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나눠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지점에 대한 밀도 있는 책 읽기에 감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편, 운명과 자유의지라는 측면에서 운명론으로 치우치는 듯한 내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몇몇 운명을 의지력으로 이겨낸 성공사례들(데프 레퍼드의 외팔이 드러머 등)을 들려주시면서 바꿀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정보의 불편함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다 보니, 문득 너무 과하게 의지만능주의로 흐를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들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뭔가 의지로 이겨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못 이겨 낼 경우 (ex> 술 못 마시는, 공부 잘 못하는 ....) 모든 원인을 의지부족으로 몰아갈 경우, 우리가 원하는 원활한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범위에 대한 개인적 역량에 대한 이해가 뒤따라야 하고, 그로 인해 상대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의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과거 조상의 누군가의 경험과 현재의 경험이 의지에 대한 믿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이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은 이 책이 주장하는 부분과 연결되기도 해서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성장과 성숙에 대한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각자가 새로운 경험, 새로운 만남을 공통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독서모임이라서인지 모두가 모임에서 만나는 새로운 주제의 책, 얘기를 나누는 것, 다른 경험을 한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잘하는 것을 찾으라는 명제에 대해서 운명의 과학에서 쓰인 것처럼 잘하는 것에 대한 유전적인 각인이 있는 것인지, 다른 어떤 방식을 통해서 개발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였는데, 반대의견이 없는 모두가 공감하는 일부 유전적 요인과 일부 성격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이견 또는 반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유전적인 병이 있는지 검사를 받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모른 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딜레마가 서문에 나와 있습니다. 저자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 질문을 다르게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병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시키고 싶은 생각에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못 고치는 병이라는 판정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플 때 못 고치는 병이라는 판정을 받지 않기 위해서 병원을 안 가고 살아가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그 병에 대한 대응을 내가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는 것이고 나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의 잘못을 그 병에 책임을 두는 비겁한 회피를 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통찰을 위한 되돌아봄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의지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진 병이 어느 순간에 고칠 수 있는 병으로 바뀔 수도 있고, 개선될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을 나무의 성장에 빗대어서 말하는 문장 중에서 <나무의 씨앗은 무작위로 뿌려지고, 닿은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주변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생존에 최선을 다해서 성장한다>는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느 절벽의 바위사이에 자리 잡은 나무 한그루는 뭔지 모를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그 생존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틔워주었기에.....우리가 삶에서 찬란하게 빛날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될 것 같은 일들을 해낼 때인 것 같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던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자신과 상대편을 이해하려는 의지 자체가 더 커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해하려는 의지는 서로의 관계를 좀 더 원활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얘기들을 나눴고, 다 받아 적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적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나의 생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이 책의 다른 부분들을 다시 들춰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