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공동체가 되는 순간
지난 7주는 내 삶에 있어서 꽤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으로 자찬한다.
Tango라는 춤을 경험한 지 어제로 7주가 되었다. 그동안 빼먹었던 연습시간과 목요일 초급 밀롱가 등이 아쉬워지는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7주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말했을 때,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때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은 오래 계속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토요일 안단테라고 하는 밀롱가에서 우리 기수가 주도하는 초급파티가 열렸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홍보를 통해서 모으고, 무대를 꾸미고, 케이터링 음식을 차리고, 티켓팅을 진행하는 대규모 행사이다. 돈을 받는 행사이기 때문에 잘 준비하지 않으면 꽤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왠지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살짝 묻어가기를 원했는데, 다양한 팀을 나눠서 각 팀장을 만들고, 그 팀에 속할 구성원이 배분되는 대규모 행사준비 형식을 그대로 갖춰나가서 좀 당황스러웠다. 이게 행사를 예산도 정해지지 않고, 무엇을 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몇 주내에 진행할 수 있을 것인지 안될 것 같다는 의심부터 들었다.
나는 묻혀간다는 생각에 마지막 뒷정리 조에 살짝 이름을 올리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확보하려고 했다. 팀편성이 끝나고, 처음 시작은 포스터의 제작이었던 것 같다. 서로의 경력도 과거도 알지 못하는 60여 명의 사람 중에는 홍보를 하는 업을 가진 사람도 있고, 디자인의 업을 가진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드레스 코드를 화이트 & 블루로 선정하고 난 이후, 파스텔톤의 멋진 포스터가 제작되었다. 포스터를 종이로 인쇄해서 여러 밀롱가에 붙이기도 하고, 릴스를 제작해서 챌린지를 통해서 멋진 영상들을 올리기도 하고, 수요일 연습시간에 가벼운 포트럭을 진행하기도 하면서 점차점차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일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안나 까레리나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 있지만,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불행에 관련되는 요소가 없어져야만 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행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각자의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지만 성공적인 행사가 이루어진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과 조용히 그늘에서 자기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사람들이 잘 만나야지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날 수업이 끝나고, 뒤풀이를 한다는 공지가 있어서 예전처럼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데, "이제 이렇게 만날 날도 얼마 없는데, 자주 봐야죠."라는 반장인 단테님이 하는 말에 굉장히 여운이 남았다. 뒤풀이 장소를 갔는데, 참석하신 분들은 얼마 없었지만, 행사에 대한 부담감과 일정으로 지친듯한 느낌의 리더그룹에게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또 한 편의 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걸 느꼈다. 뒤풀이 때 가벼운 얘기들과 춤에 대한 생각들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얘기하다 내일을 기약하면서 예전보다 빨리 뒤풀이를 마무리했다.
초급파티의 입장시작은 7시 40분. 나는 언제쯤 가야 하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눈치를 살피면서 보고 있는데, 5~6시쯤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음날 2~3시부터 단톡방의 카톡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대를 꾸미는 데 필요한 테이블과 케이터링에 필요한 집기와 음식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동기 중의 누군가는 저녁에 있는 행사를 위해서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Tango를 연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왜 저렇게들 열심히 하는지 그 원동력이 궁금했다. 왜 Tango 추는 사람들 중에는 저렇게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걸까? 물론 내가 만나본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7주내에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정말 닮고 싶은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착하니 내가 맡은 티켓팅 팀에서는 어떤 일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나의 역할은 사람들이 입장할 때, 신발주머니를 나눠주는 것이었는데, 신발장이 충분히 비치되어 있어서 신발주머니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조금 더 있다 시간에 맞춰서 왔던 게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케이터링을 맡고 있는 분이 나에게 손을 씻고 와달라고 요청을 했다. 다시 내가 맡게 된 일은 허브입을 떼는 역할이었다. 나뭇가지처럼 생긴 허브에서 한 잎씩 떼어내는 것인데, 음료에 넣으려고 하는 것인가 싶어서 앉아서 하고 있는데, 몇몇 분이 와서 뭐 하는지 묻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신다. 처음에는 조심조심 까만 것은 가리고, 구멍 난 것도 가리고 하다가 다른 분 한 분이 와서 합류하고 난 이후는 속도가 중요시되고 웬만한 건 빨리 따서 넣는 것으로 바뀌었다. 둘이서 하고 있는데, 또 다른 한 분이 합류하고 추가로 또 한분이 합류해서 4명이 결국 모든 허브입을 다 떼어냈다. 허브의 이름도 모르고 작업을 하는데, 바질이라는 분도 있고, 바질이 아니라 민트라고 하신 분도 있었다. 애플민트와 일반민트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히또'라는 단어도 나오고, 몰디브 한잔 하는 것도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나물 다듬는 것처럼 남자 셋과 여자 한명이 허브를 떼고 있는 모습은 포함된 나도 좀 재미있는 것 같았다.
이후 완성하고 난 이후, 오이도 가져다주고, 달걀도 까는 일에 조금의 역할을 했다는 데 대해서 약간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7시경부터 공연하시는 분들이 리허설을 하고, 음악도 틀어놓고, 사회 연습을 하는 반장님과 스잔님도 있다. 나는 본연의 업무를 위해서 티켓 하는 곳에 와서 대기하다가 어떤 사람들이 그냥 들어가는 것을 막는 안내 역할만을 했던 것 같다. 7시 20분 경이되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40분이 되자 신발장 앞은 인파로 혼란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괜히 맡은 바 역할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안내를 했다가 이상한 눈빛을 받기도 했고, 약간 뭔가 나도 이 큰 행사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예전에 얼굴을 알고, 나와 춤을 한번 춰주셨던 클레오 님께서 신청을 해주셨는데, 엄청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춤추는 것도 부담스럽고, 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사를 했는데, 또 다른 수업시간에 뵈었던 다른 선배님이 춤을 신청해서 두 분 사이에서 좀 애매한 순간이 있기도 했다. 두 분과 춤을 추면서 조금씩 올라오던 춤에 대한 자신감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파트너를 신경 쓰면 음악이 안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려면 앞뒤옆의 사람들과 부딪친다. 죄송한 마음만 계속 들고, 구석으로 숨게 된다. 춤이 잘 보이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또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지 춤을 신청해 주시는 선배님들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얼굴은 빨갛게 되면서 춤을 추고 들어오면서 조금만 더 잘 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사람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200명을 훨씬 넘어서 입장했다고 했고, 음식에 대한 칭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0시가 되어서 반장님이 걱정하던 사회시간이 되었다. 여기서는 내가 맡은 정확한 역할이 있었기에 중앙의 관객석으로 가서 사회자 소개를 할 때, 큰 소리로 '잘한다. 멋있다.', '단테, 단테, 스잔, 스잔!!"과 함께 박수를 쳤다. 나중에 반장님이 내가 지른 소리를 들었다고 얘기해 줘서 같이 웃었다. 베스트드레스상과 카베왕의 시상이 끝나고, 금반/토반 쌉님들에 대한 감사표시 이후 많이 회자되는 "후원금은 게시판을 참조해 주십시요."라는 멘트와 함께 무사히 걱정하던 사회는 역대 최고의 사회였다는 후평과 함께 끝이 났다.
이후로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아서 춤을 추고 있었고, 파티는 조금씩 마무리되어 갔다. 개인의 일정 상 먼저 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남아 있는 음식들과 함께 뒤풀이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시쯤 댄스 플로어는 비었고, 안쪽 한편에 길게 늘여진 테이블에 남아있던 음식들을 가져다 놓으면서 오늘의 행사 마무리를 위한 자축행사를 남겨두고 있었다.
다행히 잘 끝났다는 안도와 함께 한 줄로 앉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두 줄로 앉아 있는데, 뒷 줄에서 오늘 느꼈던 뭔가 간질간질하면서도 아쉬운 감정들을 살펴보면서 앉아 있었다. 처음에 춤을 췄다가 느꼈던 좌절감에 다른 사람들에게 춤을 신청하려는 적극성을 잃어버려서 동기들에게도 신청을 못해서 못 췄던 것도 아쉬웠고, 시간이 벌써 지나서 다음 주면 수업의 마지막이라는 것도 미묘한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였던 것 같다. 조명이 꺼지고, 화려하던 플로어는 어렴풋한 저녁녘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뒤편에 앉아있는 우리가 신경이 쓰였던지 선배 중의 하니라고 하는 분이 술잔을 들고 짠을 하러 뒷줄을 찾았다. 음료수만 마시고 있던 나와 알레그로님이 음료를 채우고 빈 잔으로 짠을 했다. 이후 하니님의 땅고 여정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세상 시크할 것 같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얘기를 할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선배들과 친해져야 한다면서 나를 이끌어서 선배님들 앉아계신 테이블에 데려다 놓으셨고, 그 테이블에서 웃는 자전거(=웃자)라는 분의 얘기를 들었는데, "땅고는 한 발짝 한 발짝 쌓아가는 것", "쉽게 얻어지지도 않지만, 그렇게 얻는다면 그만큼의 소중함도 없지 않겠느냐는 말", "안될 때도 땅고 문화 언저리에서 맴돌았던 것 같다"는 말이 너무 진솔하고 좋게 들렸다.
마리오 쌉은 항상 내가 걱정이신 것 같다. 춤 못 추는 걸 지켜보다가 다른 선배들과 연결시켜 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뒤풀이에서도 다른 선배님과 연결을 시켜주신다. 좀 덜 걱정할 수 있는 자립한 제자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데, 짧은 시간 안에는 힘들지 않을까 안타깝다. 이본느 쌉도 볼 때마다 잡아주시려고 애쓰는 게 느껴져서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와는 별개로 쌉이라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 가지게 되는 배우는 사람들에 대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배려와 걱정을 순간순간 4분의 쌉들에게서 느낀다. 좋은 분들 만나서 난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댄(=아름다운 댄서)라는 분과 춤을 추게 되었다. 마리오쌉이 말했던 에너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는 춤이었다. 내가 배운 것을 받아주고 난 이후 시연해서 보여주는 박자를 잘게 자르는 것, 음악을 느끼는 리딩을 한다는 느낌을 몸으로서 보여주는 데, 이래서 잘 추는 사람들과의 한 딴따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각인하게 되었다. 너~~~무 멋졌다.
뒤풀이에서도 음악이 틀어지고, 몇몇 분이 나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을 보는 것도 너무 멋져 보여서 무대 옆의 소파에서 보고 있는데, 마리오 쌉님이 와서 뭐 하고 있냐면서 나와 춤을 춰보자고 하신다. 넓은 무대에 사람들은 없고, 음악은 흐르고 부딪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배운 것을 몇 가지 해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오쵸 꼬르따도"를 안 한다는 얘기와 함께 "오쵸 꼬르따도"의 강습이 시작되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동기 분도 한 분 참여해서 같이 "오쵸 꼬르따도"를 해보는데, 나의 것과 우리 동기의 "오쵸 꼬르따도"가 뭔가 미묘하게 달랐던 것 같다. 그러더니, 테이블에 있던 다른 남자 선배를 불러와서 "오쵸 꼬르따도" 비교가 이루어졌다. 두 분의 의견이 나뉘자, 다른 여자 선배님을 불러와서 시연을 하게 되고, 심각한 오쵸 꼬르따도의 작동원리, 여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줘야 하는지, 여자의 크루사다가 잘 이루어지게 리더 하려면 어느 쪽이 맞다는 등등의 설전이 벌어졌다. "'오쵸 꼬르따도'가 이렇게까지 토론할 거리이죠?"라면서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다들 얼마나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지, 거기에 또 다른 이본느 쌉님은 '오쵸 꼬르따도'의 리더에 대한 다른 생각을 제시해 주셨다.
땅고의 걸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땅고 얘기를 하면 하루 종일이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과 뒤풀이를 마무리하면서 참 같은 시간대에 이렇게나 다른 곳에 집중하는 집단이 있었다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그 속에 포함되어 가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다.
뒤풀이 쓰레기까지 정리를 하고, 나와서 첫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차를 마시자, 해장을 하자 하면서 20~30분을 보낸 것은 아마도 오늘의 행사가 마무리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일 것이다.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나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 행사는 기억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을 남기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다시 편집이 되는 것 같다.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내 머리의 해석으로 재구성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뭔가 글이 쓰인다면 그 글이 기억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이번 130기의 초급파티는 한 모임이 어떻게 결집하는지에 대한 성공적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정 부분의 헌신하는 리더그룹과 그 리더그룹에 지지를 보내는 팔로우그룹들의 발걸음이 땅고 같은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느끼는 땅고의 문화, 땅고의 철학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가 더 나은 방향으로 걷게 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