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12월은 보통 한해의 마무리를 하고, 한해동안의 성과를 평가하여 잘 한 사람에게는 상을 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내부평가를 시행한다.
올해는 우리 회사 실적도 나쁘지 않았고, 지난해와 같은 평가를 받더라도 <이정도>의 금액은 받겠지? 내가 남들보다 일을 안한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해도 될 일을 시키는 데도 묵묵히 받아들여서 야근으로 몸을 혹사시키기도 했고, 바로 위 상사와의 관계도 좋으니까 무난히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겠지?
성과급을 받으면 일단 이자가 올라가니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를 낮추고, 한해동안 꼭 사고 싶었던 물건 한개만 나한테 선물을 해야겠다. 언제 성과급이 나올지 기대된다. 연말전까지는 회계폐쇄를 해야 하니까, 28일까지는 성과급이 지급될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회사의 업무상황은 나빠지고, 밑에서는 후배들이 승진하려고 치고 올라면서 고장난 차가 도로를 막고 있는 듯 쳐다보고, 위에서는 실적 때문에 쪼고, 내인생이 샌드위치 속 햄이 된 느낌이다. 회사 생활은 점점 팍팍해지고, 물리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엔트로피(=무질서도)가 계속 증가하는 느낌이다.
드디어, 오늘 성과급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후 정도면 입금이 될 것이다. 언제나 돈이 들어오기 전은 설렌다. 얼마가 들어올까? 작년보다 100정도 더 들어올까? 200정도 더 들어오면 최선인데 어떻게 될까? 괜히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휴대폰에 입금문자가 왔다.
"오.......얼마지? 어? 이게 금액이 왜이래?"
작년보다 100만원은 많아야할 나의 성과급이 오히려 100만원이 적다. 이거 금액이 잘못된 것이겠지?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성과급에 오류가 있는 것 아닌지 물어본다.
"성과급은 제대로 지급되었습니다. 금액이 적으시면 성과를 잘 못받으셨나보네요." 라는 담당자의 냉담한 대답이다.
얼굴이 화끈한다. 나보다도 훨씬 어린 후배가 성과급은 내가 일한 것에 대한 평가고, 오류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듯 차갑게 대답하니 회사에서의 나의 위치가 이렇게 견고하지 않았구나라는 자각과 함께 서글픈 마음이 든다.
나이는 50을 넘었고, 회사에서 크게 인정을 받는 상황은 아닌 것 같고, 돈을 많이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기분나쁘다고 회사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내 인생이 초라하다. 이것이 성과급이 예상만큼 들어오지 않을 때 느끼게 되는 직장인의 비애인가? 지금까지는 내 성과급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그다지 낮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왜 올해는 이렇게 평가를 못받게 된 걸까? 내 위의 상사는 나한테 사이좋은 척만 하고 실제 평가는 개판이었던 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평가를 잘 받았는지, 나처럼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기분이 나쁘다. 더 기분이 나쁜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회사에 한 방 먹이고 싶은데, 누구에게 한 방 먹여야 할까? 내가 이 회사를 떼려치우고 나가서, 회사의 사람들이 골탕을 먹는 꼴을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우리 회사가 크게 타격 입을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
만약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나는 뭘로 지금 버는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까? 내 능력은 뭐지? 내 강점은 뭐지? 회사가 나한테 좋은 평가를 해줘야 하는 이유는 뭐지? 내 맘 속의 질문이 늘어날수록 나 스스로가 작아진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내 울분을 터뜨릴 수 있을 만한 역량도 쌓지를 못한 회사의 부속품의 역할밖에는 못하는 사람이구나!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바닥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성과급을 받고 난 후 1주일간 난 사람들을 보면서 웃을 수 없었다. 왠지, 이 회사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조직에서 버림받은 건가? 난 이 조직에서 내침을 당한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든 비루하게 버텨야 할까? 온갖, 안 좋은 생각들만 머릿 속에 떠오른다.
그동안 하루하루 내 역량을 키우지도 못하면서 살아온 것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고작 나의 성과평가 한번에 내 인생의 전체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나는 무능력한 50대였다. 회사가 나를 보듬어 안고, 언제까지고 나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고 머리를 텅 비운 상태로 위기감 없이 살아온 나날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뀌고 싶다. 회사를 벗어나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한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지금부터 시작해도 될까? 바꾸기 위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음편 : 알에서 깨어나는 새는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