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추천자, 발제자, 진행자 : 푸름
토론도서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참석자 : 르네, 이윤경, 진수향, 푸름, 단, 박선희, 지누, moooony 8명
오래전에 읽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읽었던 책이라서 다시 읽을 때, 처음에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동안의 독서를 통해서 쌓게 된 배경지식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큰 성과였다고 생각됩니다.
이 모임 이후에도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의 정의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어떤 것인가? 내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가?
토론은 발제자인 푸름님의 배경설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푸름님은 한동안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통해서 '바름=기준'이라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 그리스 서적의 윤리학과 철학을 읽음으로써 '올바른 길'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왔습니다.
이 책을 선정하게 된 것은 윤리학과 철학자의 내용을 다루고, 정치철학의 가치판단의 기준을 찾아보면서 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공리주의+자유+공동선을 통해서 이어지는 철학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주셔서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에 대한 총평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듣고 이해를 높였고, 장기적인 관점, 도덕적인 사회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씀이 좋았습니다. 또한, 정치학 관련한 책들을 시리즈로 읽으면서 사례연구와 분석의 본질적인 질문이 빠진 아쉬움을 채워주는 계속적인 생각거리를 던저주는 주제가 좋았고, 자유론, 윤리학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는 평도 기억에 남습니다. 센델 교수를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정의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평도 기억에 남습니다. '시민의 교양'(채사장)이라는 책과의 비교를 말씀해 주셔서 다른 읽을거리를 찾게 된 것도 좋았습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많은 저자와 책들이 다른 독서로 이끈다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너무 다양한 사례가 나오고, 그에 대해 의견들을 나누다 보니, 다 적기에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질문과 의문에 대하여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스스로의 생각을 명료화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과연 사람들은 공정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편화된 정의는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이 아니라 나에게 유리한 규칙이 공평하게 느껴집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내 떡을 보는 시각위치의 차이 때문이듯이, 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나의 시각과 제3자의 시각에서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데로 살게 되면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공동체를 통해서 얻는 이익이 개인 각자가 살아가는 것보다는 커지기 때문에 마을이 생기고,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정치가 생겨났다는 것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공동체 조직 속에서 이익과 손해가 공존할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개인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보편적 정의'라는 용어에 가장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공동체로 넓혀서 공동체 전체의 행복의 양을 극대화하는 것이 공리주의이며, 공리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인 개인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의 "타인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라고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저런 말이 가슴에 울림을 줍니다. 나도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나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후는 내가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만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내가 받기를 원하는 데로, 남에게 베풀어라." 같은 성경의 황금률이나,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개인과 나의 관계에서는 기본이 되는 금언입니다.
하지만, 자유라는 관점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타인의 자유와 나의 자유는 서로 붙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타인과 같이 살아가는 한, 나는 이익과 해를 타인과 서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떤 원칙으로 일의 진행 방향을 결정할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서, 독서 토론을 통해서 계속 물어보게 됩니다.
여기서 나오는 많은 딜레마의 사례들에 대해서 답하다 보면, 나의 기준이 상황에 따라, 사건에 따라 자유에서, 아리스토렐레스의 목적론, 칸트의 정언명령과 같은 나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정한 규칙, 사회관습과 도덕에 영향을 받은 생각들에 의해서 판단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관점에서의 나라는 존재 정의는 나라는 존재를 어디까지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흔들림을 만들어냅니다. 나의 가족, 내가 속한 조직 또는 나의 민족까지의 서사를 생각해서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고, 질리게 합니다. 독일민족이 2차 세계 대전의 잘못에 대해서 민족적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을 때는 동성애가 개인의 권리이고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요즘 동성애와 관련한 정치적 행사들이 과격하게 진행될 때, 원래의 익숙한 관습과 습성에 너무 반하는 표현들을 만날 때 표정관리가 어렵고, 인정하지 않으면 경직된 사람으로 비치게 되는 것 같아서 역차별받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는 사례가 기억에 남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익숙했던 관습과 상식이 변해갈 때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는 것이 맞을지를 생각해 보면, 정의와 공정도 또한 시점과 관점에 따라 변할 수 있겠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내가 세운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와 어울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투자를 제안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스스로 가진 정의의 기준에 대해서 공유와 토론을 통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에 대해서, 나에게 손해가 되는 공동체의 규칙에 대해서 얼마나 토론을 통해서 협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라는 주제를 통해서 그토록 오랜 시간 하버드에서 강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주제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의 정의와 타인의 정의에 대한 이해와 공유는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시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과 내가 내리는 결정은 나의 어떤 기준과 정의론으로 이루어지는가? 나의 삶과 생각은 나의 기준에 맞춰서 진해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를 알게 되는 것이 내 독서의 기본이었다면 이번 책을 통해서는 나의 정의의 기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명확한 기준은 아직도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나만의 기준이 어떻다는 것은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푸름님의 그리스 철학읽기의 목적과 연결되는 부분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