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힘들겠다.

-아버지가 던진 무심한 한마디-

by 무우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책임져야 할 일은 많아지고, 준비는 덜 되어 있는 것 같고, 갈 길은 멀기만 합니다. 아버지가 혼자서 걷지 못할 정도가 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니, 결국 요양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혼자서 아버지를 어떻게든 같이 살겠다는 것도 정신이 또렷하고,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당뇨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을 가진 환자를 비슷한 나이의 노인분이 돌본다는 것은 새로운 환자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에 싸우고 다투다가 결국 요양원으로 보내서 위탁해서 돌보고 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면회를 하고, 가급적 모시고 나와서 맛있는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산책을 하는 것이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면서 마음의 위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더 이상은 요양원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고집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아버지와 크게 다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어머니는 집으로 데려가자고 하고, 집에 데려간다고 해도 돌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황에서 요양원은 가지 않겠다고 공공장소에서 버티면서 추운 겨울 감기가 걸릴 것 같은 날씨에 주변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겠다고 휠체어를 끌고 갈 때, 자기의 잘못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자기 몸하나 건사를 못한 사람이 또 요양원의 생활도 버티지를 못하고 도망 나와서 어디로 갈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가겠다고 떼를 쓰는 것이 3살 먹은 아이같이도 보이고, 이렇게까지 상황이 안 좋아진 것에 화가 나기도 해서, 지옥에 있는 듯이 온몸이 불타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렇게까지 들어가기 싫어하는 요양원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마음 아파하는 어머니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요양원에서 식사나 제대로 하면서 병원이나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득해서 겨우 일을 무마시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몸이 조금 나아지면 소리치며 화를 내고, 망상은 점점 커지고, 면회를 갈 때마다 체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입니다. 그렇게 체력이 약해진 것을 보면, 데리고 나와서 집에서 돌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어머니와의 언쟁이 시작되곤 합니다. 한 번씩 방문을 할 때마다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이라도 먹이고, 산책이라도 시키려고 요양원과 계속 협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시고 나와서 음식을 많이 먹이고 들여보내면 한 주간은 잘 살고 있겠지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지난주에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기침과 가래가 좀 있으신데, 병원을 한번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예약을 하고, 일정을 조정해서 가야 하는데, 우선은 지금 당장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약을 먹이고 살펴보자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주 토요일에 다시 병원을 가봤으면 한다는 요청전화가 왔습니다. 위급하지 않으면 지금 가기는 어렵다는 말로 다시 병원 가는 일정을 늦췄는데, 8월 26일 화요일에 아무래도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요양원에서 모시고 가겠다고 하고, X-Ray와 CT를 찍어도 되는지 물어왔습니다. 찍어도 좋다고 확인을 하고, 결과는 확인하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2일 뒤의 목요일 10시에는 검사 결과를 들어야 하는데, 결과는 가족이 와서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요양원의 요청이 있었고, 나도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오전에 가서 결과를 듣겠다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1시간 20분 정도의 운전으로 병원에 가야 했고, 결과를 듣고 난 이후는 의정부로 출장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원래 예약시간에서 10분 정도가 늦었습니다. 가서 도착을 알리니 좀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 의사 선생님을 뵐 수가 있었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역시 의심하던 데로 폐렴입니다. 배에 물도 1/3 정도 차 있습니다. 입원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입원을 해야 하면, 병원에서 돌봐줘야 할 요양사를 구해야 하고, 그전까지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환자옆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며칠 휴가를 내는 것을 생각해 봤지만, 몇 가지 일정은 연기나 미참석이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당장, 오늘 오후의 약속부터가 문제가 됩니다.


갑작스러운 입원상황에서 바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어서 가족들과 상의를 좀 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나와서 어머니와 여동생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를 않습니다. 수원까지 와서 간병을 하느니 집 근처의 신길로 모시고 가야 할까? 동수원병원에서 간병인을 구해야 할까? 가족들에게 의견을 확인하기 전에 혼자 결정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우물쭈물하는데, 간호사님이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묻고 신길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니, 영상물을 카피받아야 한다며 사인을 하라고 합니다. 일단, 결정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간병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원분들에게 전화문의를 했습니다.


10분만 기다려 달라는 얘기와 함께 그쪽에서 간병인을 섭외해 보겠다고 하고, 간병인이 구해질 경우 신길로 모시는 것보다는 요양원 가까이에서 치료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으로 기울어서 어떻게 간병인을 구해야 할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의 요양원장이 1명 섭외가 되었다면서 추천을 해주고, 그 소식을 듣고 입원절차를 바로 진행했습니다. 다시 피를 뽑고, 심전도 검사를 하고, X레이를 찍고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2인실, 3인실, 4인실, 6인실. 4인실이나 6인실을 요청했는데, 6인실에 자리가 있어서 금방 배정이 되었습니다.


잘하면 오전에 입원시키고 출장을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서 휴가를 하루종일로 연장을 하고, 그냥 아버지 입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병원의 요청에 따른 검사를 하고, 병실로 갔는데, 침대가 가운데 있는 좁은 곳이어서 올리기도 힘들고, 옆에서 앉아있기고 힘들 정도로 공간이 좁습니다.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간호사와 의사가 와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사인을 하라고 합니다. 급여와 비급여가 나눠져 있고, 비급여 항목은 뭐든지 하기 전에 보호자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여기 사인하라면 거기 사인하고, 저기 사인하라고 하면 지시하는 데로 사인을 했습니다.


대략적으로 침대에 눕히고, 링거를 꼽고, 항생제를 맞추고, 알부민 수치를 높인다고 다른 약을 주렁주렁 거는 것을 보면서 나와서 간병인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화를 했습니다. 첫 번째 간병인사무소에서는 환자가 걸을 수 있느냐?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느냐? 모든 질문에 답이 부정적일 때 하루 일당이 134000원이라고 들었습니다. 10일이면 130만 원이 없어집니다. 현금으로 줘야 하고. 내가 상담을 하는 것을 들은 옆의 다른 간병인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해줄지 물어봅니다. 그쪽은 124000원이라고 만원이 싸다고 하니, 그 얘기를 듣고, 만원이라도 싼 쪽으로 갈아타게 됩니다. 긴박한 상황이 다하고 난 이후에는 결국 금전적인 부담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공동간병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걸 신청하기 위해서 1층으로 내려가서 물어보다 보니, 현재 공동간병실에 자리가 하나 남았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여기는 여러 명을 한 명이 케어하면서 하루에 70000원으로 절반가격으로 떨어집니다. 공동간병을 받기 위해서는 방을 옮겨야 했고, 다른 방으로 옮기기 위해서 다시 한번 힘을 쓰면서 휠체어에 올려서 방을 바꿉니다. 시트도 갈고, 이불도 가지고 가고, 물품도 다시 정리를 합니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다가 베지밀 한 박스를 아버지께 드렸더니 오랫동안 쪽쪽 빨고 있습니다. 간병인 관련해서 기존의 간병인을 취소하고, 추천해 준 사람이 자기가 추천한 사람이 오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일당이라도 챙겨줘야 한다는 듯이 얘기를 합니다. 사무실과 얘기 끝냈다고 하면서 아쉬워하면서 돌아갑니다. 그 이후 그 사람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휴게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간병인은 거의 조선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별도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병인의 처리가 끝나고, 공동간병실로 옮기기 위해서 이리 뛰고, 여기저기 전화하는 것을 아버지가 보셨는지, 갑자기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무심하게 툭 던지듯이 한마디를 합니다.


"니가 힘들겠다."


그 한마디를 듣는데, 정신도 없는 아버지가 너무 시의적절하게 내가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것 같은 순간에 정확한 말을 해서 한순간 크게 웃어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한마디에 꽤 위안을 받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에게 해주는 학습된 단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힘든 것에 대한 애처로움을 담은 말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은 내게 "고맙다."로 해석되어서 들려오면서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대체하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입원도 하고, 간병인과도 얘기를 하고 난 이후 베지밀 한 박스를 사서 간병인에게 들려주고, 아침 10시에 도착해서 오후 5시까지 정리했던 입원을 마치고, 주차를 등록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가면서,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진행되었던 과정을 설명하고, 다행히 잘 처리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긴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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