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만 할까요?
지금까지는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면 써보는 브런치였는데, 꾸준히 글쓰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쓸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한 단어, 한 장면을 기억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써왔던 글들이 어느새 꽤 쌓였고, 그 글들이 좀 더 정제되고 읽을 만한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내 글을 읽고 소통하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글을 쓸까를 생각하다 보니, 근래에 읽었던 브런치의 작사님 소개글에 있던 '나를 위해 씁니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구독자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읽는 사람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라는 선택을 한 순간에 전혀 다른 관점의 글쓰기 목표를 발견하고 방향이 흔들리게 됩니다. 글은 간소하게 축약하자면 두 사람의 대화일 것 같습니다. 쓴 사람과 읽는 사람, 때로는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같을 때도 있지만, 쓰고 읽는 사람이 다를 때도 있을 것입니다.
쓴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히는 글도 있을 것이고, 쓴 사람의 의도를 찾기 위해서 읽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혼자서 쓰는 글쓰기에 독자를 상정하게 되니 너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결국, 나는 잘 읽히는 내용의 글이 아니라 나의 글을 좀 더 잘 읽히게 써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브런치의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다시 떠올려보니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내 맘 속에는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를 내 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써야 할 내용을 바꾸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이라는 책의 내용으로 생각이 흐릅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라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무엇을 만들라는 말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만든 것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조언이 떠오릅니다. 나는 글을 쓰고 발행하기 전에 읽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 글에는 독자가 둘이 있습니다. '화자로서의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한 독자로서의 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내 쓰인 글들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의 내가 쓰던 글에 굉장히 자주 쓰는 말은 '~인 것 같습니다.'라는 책임을 지지 않고 확신하지 않으려는 추측의 언어를 많이 썼다는 것을 쓰면서 느끼게 됩니다. 나의 옛글들을 읽으며 지금과 그때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또 다른 나의 글쓰기의 효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습니다.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선명해지는 경험은 가끔 찾아오지만 귀한 경험입니다. 오늘의 글쓰기는 쓰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찾지 못했을 깨달음을 전해줬다는 것만으로 좋은 시도였다고 자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