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마음정돈
내 주변은 좀 지저분한 편입니다.
모든 것을 정해진 자리에 넣는 정리정돈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MBTI로 나타내자면 S와 P의 성향이 많이 포함되어서 J로서의 역할이 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일을 할 때는 나름 정리하고 절차대로 진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꼼꼼하고, 실수를 잘 방지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도 주변과 같이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소설에서 나온 마음이 소란스럽다는 표현과 번잡스럽다는 표현이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기도 하고,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지도 혼란스러울 때,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보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저녁,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의 산소포화도가 계속 낮아져서 응급실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는 전화를 받고 난 이후 이 마음의 번잡 스러고, 소란스러운 느낌이 한층 더 강해졌습니다.
현재의 아버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 나와 함께하는 다른 가족들에게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 회사의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 책을 읽고 싶기도 하고, 그냥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저 멀리 여행이나 떠나고 싶다는 희망....등등이 여러 갈래로 번져나갑니다. 내 삶이 그렇게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음에 대한 불만, 금전적으로 안정적이 못한 재정 상태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듭니다.
짧게 매드클라운의 '죽지마'라는 읊조림과 같은 노래의 가사에 너무 감명을 받아서 전체 가사를 찾아보기도 하도, 글도 써 보았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이렇게 내 마음을 살펴보다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광부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주변의 돌들이 소란스럽다." 그렇게 라퓨타의 비행석에 의해서 주변의 돌들이 소란스러워지듯이 아버지의 산소포화도 소식에 내 마음도 소란스러워졌던 것인가?라는 원인과 결과를 만들고서야 다시 복잡한 마음을 정돈합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또 다른 감정은 나는 스스로를 정말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모르는 부분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진화심리학자는 무의식을 생물의 진화과정에 우리의 DNA와 사회학습을 통한 밈으로 연결되는 인간으로서의 성질로 설명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글을 쓰다 보면 어딘가로 글이 스스로 흘러갑니다. 다른 사례들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다른 책의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서 글을 쓰면서 다양한 내 마음에 주의집중이 되지 않던 곳들을 더듬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읽었듯이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비 맞은 강아지처럼 기다리던 소외받았던 감정이 내가 돌아보고 더듬어 살핌으로써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글쓰기는 나에게 나를 다독여주고 쓰다듬어주는 역할이 있습니다.
언젠가 물리학 관련 에너지불변의 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대한 책을 읽다가 글쓰기는 어떻게 이 법칙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나의 생각을 글로 쓰면, 나의 생각이 글에 담겨서 내 생각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왜 내 생각은 더 명료해지고, 나의 생각의 일부분은 글로 재창조가 되는 것인지?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용된 재료가 있었어야 할 것인데 이것은 어떻게 질량보존과 엔터로피 증가로 설명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도 물리학의 법칙들을 위배하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작가님의 프로필에 'right to write'라는 것이 쓰여있었는데, 다행히 글 쓰는 권리를 누릴 수 있음에 행운이라 생각하고, 그래도 내 글을 읽어주고 'like'를 눌러주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