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의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세상이 사라지고 기억만이 남습니다

by 무우니

2026년 2월 10일 4시 46분 내가 가진 여러 개의 세상 중에 하나의 세상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날따라 늦게 잠들어서 깨어나지 않을 시간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손목에 차고 있던 밴드의 진동에 어설픈 잠에서 깨어나서 바라본 휴대폰에 이 시간에 오면 안 되는 곳의 전화번호가 찍혀있어서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던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넘쳐나고,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못 마시면서 술자리는 찾아가면서 밤새 따라다니고,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사랑받는 재치 있지만, 뒷 마무리를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금전적으로는 밝지 못해서 돈이 들어가면 언제 썼는지 모른 채 항상 지갑은 비어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전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서 더욱 다른 일로 인정받기를 원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어처구니없을 일을 가져와서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더욱 많은 화를 냈습니다.


몇 년 전에 도저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행동을 하면서 가족들과 다투고 혼자 집을 나가고 난 이후,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온몸이 붓고, 혼자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원망스럽다가도 불쌍하고 집에 데려와서는 도저히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다행히 아는 분이 하는 요양원을 찾을 수 있어서 모실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혼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셨었는지, 요양원에서의 몇 주는 안심하고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2주에 한 번을 찾아뵈었는데, 조금 힘이 나고 난 이후는 혼자서 걸을 수 있다고 집으로 가고 싶다고 화를 내고 떼를 썼습니다. 도저히 집으로 데려올 수 없다는 나와 하루라도 데려와서 재우고 싶다는 어머니와도 많이 싸웠습니다. 그때 며칠만이라도 집으로 데려왔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간혹 모시고 나와서 산책을 하고, 병원을 데려가고,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다시 요양원을 들어갈 때는 안 들어가려고 할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3년 여가 흘렀습니다. 점점 기력이 쇠약해지고, 더 이상 나오겠다는 희망을 품지는 않게 되고, 점점 몸이 기울어지고, 다리와 몸은 앙상해져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전화가 와서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연락을 받기도 하고, 옆에서 온전한 간호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아쉬워서 한숨이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필의 '바운스'를 틀어주면 듣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들은 조그마한 위안을 주기도 했습니다.


2026년 2월 7일 며칠 전에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기온 변화로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요양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가족들이 면회를 갔습니다. 의식이 있었고, 내가 사간 빵을 드릴 때마다 입을 벌리고 받아 드셨고, 여동생이 주는 물을 잘 마셨습니다. 어머니와 막내와의 시간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쇠약해진 몸으로 두 손을 들어서 인사를 했고, 그 사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추위만 지나고 나면 몇 달은 또 이렇게 지나가겠구나 다음 병원 가는 날자가 4월인데, 그때는 영양제를 맞춰드려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면회를 하고 난 이후 3일 만에 온 새벽의 전화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새벽에 차가 없는 고속도로를 달려서 요양원에 도착하고, 올라가니 가쁜 숨을 쉬시다가 눈을 마주칩니다. 이후 숨이 서서히 잦아듭니다. 아버지 아버지.... 불러도 서서히 반응이 없어집니다. 손과 가슴의 따뜻함이 남아있었는데, 손가락에 청색증이 나타났다는 말과 함께 가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숨을 쉬던 아버지의 생기가 사라지는 순간은 충격적인 기억으로 가슴에 얹히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셨다는 것의 확인과 함께, 요양원의 사무실에서 시체검안을 위해서 전화를 하고, 모셔야 할 장례식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를 해야 합니다. 감정보다는 다음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가 머릿속에 남습니다. 며칠 전에 서로 얘기를 나눈 데로 장례를 위한 절차를 따라가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합니다. 다행히, 매제와 연결된 상조회와 연결되고, 장례식장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잡히고, 시체검안확인까지 물처럼 흘러갑니다. 일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의 빈 공간동안 요양원의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병원으로 옮겨줄 엠블런스가 오고, 아버지의 몸을 감싸고 엠블런스에 태워 보내고 난 뒤에 나는 내 차를 타고 병원을 향해 운전을 했습니다.


운전해서 가는 도중, 세상은 방금 전과 똑같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출근하느라 차가 막히고, 해는 뜨고 있었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하나의 세상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더라도 되돌이킬 수 없는 아버지와 나의 세상은 없어졌습니다. 차를 타고 오는 도중 내가 잘못했던 것만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안 싸웠으면? 집으로 모셨었으면?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아무 소용없는 가정을 하면서 내게 남아있는 후회를 곱씹었습니다.


장례의 절차는 수학공식처럼 한 줄 한 줄 순서대로 쓰였습니다. 제단을 채우고, 꽃을 장식하고, 부친상을 알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기다리면서 향을 태우고....


장례식장에서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내가 해야 할 일,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일보다는 당장 그 순간과 다음 순간에 해야 할 일만 있습니다. 처음 치르는 일이다 보니 미숙하고, 실수도 많습니다. 다행히 어머니, 여동생들과 매제가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둘째와 막내의 손님도 많고, 조화는 처음에는 안 들어오면 쓸쓸하겠다는 걱정을 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많은 조화로 아버지 가시는 길을 꽃길로 장식해 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이제 조화를 놓을 장소를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첫째 날에 많은 손님이 왔고, 누군가 결혼식장에 온 손님은 기억이 안 나는데,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은 모두 기억이 난다는 말을 했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을 소홀히 했는지 후회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입관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적으라는 말에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이뤄야 할 것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적었습니다. 입관하면서 일하시는 분에게 줘야 하는 수고비도 몰라서 챙겨주지 못했고, 나중에야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흐르지 않는 시간 같던 2일이 어느새 지나고, 아침 일찍 발인을 하고 수원의 연화장으로 가서 화장신청을 하고, 봉안장소를 배정받았습니다. 다행히 1~8단 중의 5단으로 제일 좋은 눈높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화장을 마무리하고 봉안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와서 장례를 마무리했습니다. 여의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족들과 집에 모여서 장례비를 마무리 정리하고 큰 무리 없이 잘 끝난 장례식에 대해서 얘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헤어졌습니다.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내게 그렇게나 가슴에 와닿았던 이유는 곧 나에게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게 만약 작가님의 통찰력과 관찰력과 필력이 있었다면 훨씬 더 섬세하게 내 세상이 무너진 얘기를 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난 이후, 마음이 쉽게 추슬러지지 않습니다. 몸도 아프고, 잠만 자고 싶습니다. 하루를 의식 없이 누워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만 많이 잤습니다. 다른 일을 할 의욕도 생기지 않고, 다행히 설명절로 한동안 회사에 나가야 할 일이 없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며, 그냥 내 몸이 원하는 데로 널브러져 있기로 했습니다.


박웅현 작가님의 글에서 라틴어 '까르페디엠'과 '메멘토 모리'라는 말의 대구를 읽으면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죽음과 둘이 아니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해석으로 기억됩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나도 언젠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먼 미래의 일이라고 애써 무시하고 묻어두고 있던 그 사실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다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일어나서 무너진 세상을 추억으로 삼아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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