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고
자기계발, 경제학, 과학 관련 사실에 중심을 둔 현실적인 책들을 주로 읽다 보면 소설, 예술 등의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기준을 가지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서 뭔가 모호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소설이나 예술에 대한 토론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되면 길을 잃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서 단토라는 철학자이면서 미술평론가의 책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책을 읽게 하는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술 관련 책들에서 처음 마주치는 어려움은 장르를 나누는 여러 가지 주의와 시대에 따른 분류와 어려운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의 연결 등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이 책은 예술을 역사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다 보니 추가적인 용어의 어려움도 더해집니다. 네러티브(이야기의 구조, 서사구조), 테제(논증을 위해 제시하는 명제), 아방가르드(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 등의 단어들은 들어보기는 했지만, 이 문장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명확하지 않아서 찾아보게 됩니다.
이 책이 내 머릿속에 저장된 방식으로 짧게 정리한다면, 아서 단토는 예술의 역사를 통해서 4가지 단계로 구분한다고 이해합니다. 미술사의 시작을 1400년 르네상스 시기로 보고, 그 이전의 예술품(시각예술품, 회화)은 역사 전단계로 분류합니다. 이후 바자리의 미술의 진보라는 내러티브 속에서 1400년에서 약 600년 간의 미술사를 현실의 사실을 재현하는 진보 발전의 2단계로 보고, 이후 그린버그가 칸트적인 철학적 시각에서 모더니즘이라는 내러티브로 이어지는 역사를 모네에서 시작해서 앤디워홀의 브릴로 상자로 대변되는 팝업작품의 탄생되기 전까지를 3번째 단계로 나눕니다. 이후 예술을 내러티브의 범위 내에서 구분하는 방식으로는 예술을 정의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단토는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로 제시하고, 이후의 예술에 대해서는 예술사적인 시각적 재현이라는 내러티브가 아닌, 의미의 해석이라는 철학적인 인식론으로 분류하게 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기존의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대대적인 전환을 '예술의 종말'이라는 작극적인 용어로 설명합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켰을 것이라 생각하고, 종말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예술에 대한 설명을 꽤 긴 문장으로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단토는 왜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를 제안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좋은 사례는 단토가 뒤상의 <샘> ,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라는 작품들을 접하고 느꼈던 충격과 인식론의 변화가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가 나오게 된 배경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똑같은 브릴로 상자가 상품을 담는 포장이 되기도 하고,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내러티브로 설명할 수 있는 예술의 역사가 종말을 맞이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스케치에 따르자면, 모방의 시대가 있고, 이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뒤따르며, 그다음에는 어떠한 것도 허용되는 우리의 탈역사적 시대가 뒤따른다고 하는 미술사의 거대서사 ~~~ 전통적인 모방은 시대에서 미술비평은 시각적 진실에 기초해 있었다. ~~~ 배타적인 구별에 입각해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관념을 제시하였다. (P112)
바자리 이후의 미술사를 자기 검토의 역사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고 모더니즘은 자신의 철학적 본질을 발견함으로써만 확보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회화 및 각각의 예술을 굳건히 세우고자 하는 노력과 동일시할 수 있게 된 것은 당연히 그린버그 덕분이다. ~~~ 그린버그는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나 라인하르트에 못지않게 선언문의 시대에 속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정의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 모더니즘의 추동력을 특징짓고 있다는 것이다. (P146)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뽑고 싶은 문장이 없었던 장이 없었습니다. 매번 이 문장은 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할 경우에 초보자가 자신의 취향을 재현미술을 갖고서 발전시키는 것이 추상미술을 갖고 발전시키는 것보다 더 힘들다. 추상미술은 미술 일반을 볼 줄 아는 법을 배우는 놀라운 방법이다. 형편없는 것으로부터 훌륭한 몬드리안이나 훌륭한 폴록을 식별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옛 대가들을 훨씬 더 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P189)
위의 문장은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보라서 인상 깊었습니다. 예술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는 방법으로 추상미술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위의 문장은 뭔가 위대한 작품들의 공통적인 시각적인 자극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됩니다.
러스킨은 베로네제의 위대한 그림을 경험함으로써 비전의 변화를 겪었으며, 삶의 철학을 획득했다. (P325)
미술을 일상생활의 비참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자 동시에 그것을 구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P326)
예술경험은 예측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음의 어떤 선행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동일한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때에는 심지어 동일한 사람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 우리 자신 속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보는 데 이것들이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P327)
흔히, 삶이 예술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우리가 인식론적인 큰 깨달음과 전환을 얻는 것은 다양한 부분을 통해서입니다. 어떤 경우는 책의 한 문장에서, 어떤 경우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에서, 어떤 때는 자연의 광대한 한 장면에서, 일출에서, 밤하늘의 별에서도 우리는 비전의 변화와 삶의 철학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시각적 예술작품의 감상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이고, 어렵게 느껴지던 예술작품을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한 발자국 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