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 사전
●고래 사냥: 내가 처음 만난 청춘과 낭만.
지리산에 처음 가 본 것은 진주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 2학년 봄 소풍 때였다.
4월 말 무렵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타고 산청 지리산 대원사 계곡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 시간 남짓 목적지로 가는 동안 살짝 지루한 틈을 타 이른바 조금 ‘노는’ 친구들이 모여 앉은 버스 뒷자리에서 누군가 <고래 사냥>을 나즉이 읊조리듯이 부르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던 그 하동 진교라는 곳에서 온 친구였다.
당시 우리 나이와 맞지 않은, 자유롭고 낭만적인 우수가 깃든 20대 청춘들의 노래였지만, 그 친구는 마치 자기 노래인 것처럼 흐느적흐느적 멋들어지게 끝까지 다 불렀다.
‘앵콜, 앵콜!’ 열띤 반응이 버스 뒷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뒷자리에 같이 앉은 친구들의 자연스럽고 열광적인 반응으로 보아 그 친구가 그 노래를 한두 번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단지 장기 자랑을 하듯이 친구들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었던 것이 아니라, 그날의 조금은 들뜬 분위기와 친구들의 해방감 등을 모두 목소리에 담아서 능수능란하게 밀었다 당겼다 하듯이 자신만의 노래를 했던 듯하다. 그것은 아마 오래전부터, 주로 교실 뒷자리에 앉은 패거리와 친하면서도 앞자리의 ‘선생님바라기들’(?)에게도 결코 무시당하지 않으며 다져 온 어떤 은밀한 권력의 냄새까지 났다.
하지만 그의 권력은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와 그럴듯한 쇼맨십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카리스마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사실 그 친구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웬일인지 1학년 초부터 학교 수업을 시들하게 여기며 뒷자리에 앉아 낮잠과 잡담, 담배 그리고 시시껄렁한 질문으로 보내며 담임선생님의 애를 태웠었다. 학년 주임으로 날카로운 눈매에 상당히 권위적이었던 담임선생님도 이 친구에게만은 ‘채찍’만을 들 수 없어 어색한 ‘당근’을 함께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가끔 진주 중앙시장에서, 재수로 입학한 한 살 위 친구들과 이미 대학생이라도 된 듯이 함께 막걸리까지 한 잔씩 하며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그의 인생이 어떻게 풀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청소년 시절의 방황과 무절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가혹한 우리 사회에서 그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 나갔을까?
배우 박중훈의 눈빛처럼, 초롱초롱 빛나면서도 장난기와 반항기가 가득했던 그 눈빛이 그의 고향 하동 ‘진교’(辰橋. 별 다리. 은하수라는 뜻)라는 예쁜 이름과 함께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내가 눈길조차 주지 못할 만큼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던 삶의 심연을 그가 통과해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불길한 예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그날 지리산 소풍 가는 길에 그가 부른 노래 <고래 사냥>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