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놓친 영화 혹은 지나간 삶

by 시를아는아이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나 <닥터 지바고>(1965),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처럼 사막이나 평원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저 시원한 ‘눈맛’이다. 그런데 이 고전 영화들은 그 독특하고 아름다운 배경 못지않게 주제 음악도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 중의 하나가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앤서니 밍겔라/1996)가 아닐까 싶다.

뛰어난 원작 소설을 효과적으로 영상으로 옮긴 이 작품의 긴 줄거리를 여기서 다시 소개하지는 않겠다. 다만 최근에(2020. 12. 26.) EBS에서 다시 방송된 이 영화를 보면서,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사막 풍광과 함께 노래 한 곡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 영화에는 Cheek to Cheek이라는 올드 팝송(스윙 재즈)이 연결 고리처럼 등장한다. 원래 이 노래는 <탑 햇(Top Hat)/1935>이라는 영화에서 프레드 아스테어가 상대역인 진저 로저스와 춤을 추며 부르는 달콤한 노래이다.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피츠제럴드가 같이 부른 버전(1956)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내용의 이 노래가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는, 남편(콜린 퍼스)이 차 안에서 자신의 아내(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다른 남자(랠프 파인즈)를 만나고 나오는 것을 몰래 목격하는 장면에서 흐른다….

어쩌면 이런 디테일한 장치가 있어서 어떤 영화는 비로소,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