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카, 풍경과 눈빛

본문

by 시를아는아이

1

처음으로 마주친 사진 속 로르카의 눈빛은 내게 특이하게도 군대 시절 만난 어떤 친구의 눈빛을 떠올리게 했다. 살아가면서 실제든 이미지로든 아름다운 여성이나 남성을 몇 명은 알게 된다.

군대 동기였던 그 친구는 키가 작은 편이지만 얼굴이 갸름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이었고, 특히 눈빛의 강렬한 광채가 다른 불리한 특징들, 예를 들어 약간 큰 입이나 볼의 제법 큰 점과 같은 것들을 가리고 오히려 매력적인 얼굴로 만들었다.

사진이라는 것이 빛의 지극히 짧은 한 순간을 포착한 것에 지나지 않고, 한 사람의 실존적 삶이나 심지어 정신적・육체적 건강 상태로부터도 영향을 받는 만큼 단 하나의 사진으로 한 시인의 전체적인 면모를 살피는 일은 약간은 무모하다.

하지만 로르카의 경우 처음 만난 시집에 실린 사진 속 눈빛은 강렬하면서도 신비로웠고 또한 시의 매력과 끝없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스페인부터는 아프리카.”(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말이 있듯이 남부 유럽에 위치한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독특한 매력을 띤다. 특히 로르카가 태어나고 작품의 모태가 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그라나다)는 오랫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무어인이나 집시, 유대인 등의 피가 섞인 땅이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느낀 로르카의 깊은 눈빛은 그라나다의 지역적・역사적 뿌리에서 피어난 빛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2

작별


내가 죽으면

발코니를 열어놔 둬.


사내아이가 오렌지를 먹고 있군.

(발코니에서 나는 그를 볼 수 있으니)


농부가 밀을 거두고 있군.

(발코니에서 나는 그를 들을 수 있으니)


내가 죽으면

발코니를 열어놔 둬!

▪정현종 옮김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어쩐지 묘한 기시감(데자뷔)이 들었다. 처음 보는 시이기는 한데 어디에선가 비슷한 말이랄까 표현을 본 듯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확인해 보니 바로 이 구절이었다.


“오랑 사람들은, 임종 때 마지막 시선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대지에 던지며. ‘창문을 닫아요, 너무 아름다우니.’라고 외쳤다는 저 플로베르의 친구를 닮은 것 같아 보인다. 오랑 사람들은 창문을 닫았고 그 속에 갇혔으며, 풍경을 내쫓아버렸다.”

―알베르 카뮈(김화영 옮김), 《결혼․여름》


가끔 기억이란 이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믿을 게 못 된다. 시에서는 밖을 볼 수 있도록 발코니를 열어 두라고 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를 소재로 한 카뮈의 에세이에서는 차라리 창문을 닫아 달라고 했다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나의 데자뷔는 어떤 점에서 옳다. 두 작품은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하게 반대되는 행동을 보여 주지만, 똑같이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알고 말할 수 있는 단순한 진실은 그것뿐이다. 이 세계는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죽는다.

그래서 이 시는 어쩌면 불교 고승들의 열반송 같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열반송이 생사를 초월한 해탈의 경지를 노래한다면 반대로 이 시는 삶과 세계에 대한 지독한 미련과 다하지 않는 열정을 노래한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막상 그리운 것은 부나 명예와 같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오렌지를 먹고 농부가 밀을 거두는 평범한 일상이다. 내가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 무심한 세계가 곧 우리가 평화롭게 눈을 감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세 강의 발라드

―살바도르 킨테로에게


오렌지와 올리브 숲 사이로 흐르는

과달키비르강.

눈에서 흘러내려 밀한테 가는

그라나다의 두 강.


아, 사랑

가고 돌아오지 않는!


심홍색 수염을 갖고 있는

과달키비르강.

그라나다의 두 강,

하나는 피, 또 하나는 눈물의.


아, 사랑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돛단배들을 위해

세비야는 뱃길을 가지고 있다;

그라나다의 강에는

노를 젓는 한숨뿐.


아, 사랑

가고 돌아오지 않는!


과달키비르강, 높은 탑

그리고 오렌지 숲에 부는 바람.

다우로와 헤닐, 호수로부터 솟는

죽은 작은 탑들.


아, 사랑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누군가는 말하겠지 강은

외침으로 가득 찬 도깨비불을 나른다고!


아, 사랑

가고 돌아오지 않는!


오렌지꽃을 날라라, 올리브를 날라라,

안달루시아여, 너의 바다로.


아, 사랑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정현종 옮김


이 시는 시인 자신의 뿌리인 그라나다를 비롯한 안달루시아에 바치는 영원한 헌사(tribute) 같다. 하기야 시인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의 작품이란 궁극적으로 자신을 있게 한 땅과 사람에 대한 일종의 헌사인지도 모른다.

오렌지와 올리브 그리고 과달키비르강 속에 시인의 그라나다와 세비야, 안달루시아가 요약된다. 하지만 그것은 고향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소재일 뿐 아니라 피와 눈물, 한숨 등 고통과 한을 품은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 강의 발라드>는 안달루시아의 노래이자 곧 시인을 비롯한 그곳 사람들의 노래이다.

로르카를 읽을 무렵 우연찮게 <그라나다>(아구스틴 라라, 1932)라는 노래도 자주 들었던 듯하다. 스페인 출신 호세 카레라스 등 그 노래를 부른 유명한 성악가가 많이 있지만, 내 기억 속에 늘 최고의 <그라나다>는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여성 가수의 노래다. 서정적이면서도 정열적인 그 가수의 노래는 자연스럽게 안달루시아와 로르카를 떠올리게 했다.

▴그라나다

익나시오 산체스 메이하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1. 받힘과 죽음

오후 다섯시.

정확히 오후 다섯시였다.

한 소년이 하얀 시트를 가져왔다.

오후 다섯시에.

석회 바구니가 준비되었다.

오후 다섯시에.

나머지는 죽음, 죽음뿐이었다.

오후 다섯시.


바람은 면화(綿花)를 앗아갔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산화물은 수정과 니켈을 소산시켰다.

오후 다섯시에.

비둘기와 표범이 싸운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황폐한 뿔과 싸운 넓적다리

오후 다섯시에.

저음의 현(絃)이 울렸다.

오후 다섯시에.

비소(砒素)의 종(鐘)과 연기

오후 다섯시에.

모퉁이마다 침묵의 무리들

오후 다섯시에.

고체 무수탄산(無水炭酸)의 땀이 나고 있었을 때

오후 다섯시.

투우장이 옥소(沃素)로 뒤덮여 있었을 때

오후 다섯시.

죽음이 상처에 알을 낳았다.

오후 다섯시에.

오후 다섯시.

정확히 오후 다섯시 정각에.


바퀴 위의 관이 그의 침상이다.

오후 다섯시.

딱딱이와 플루트 소리가 그의 귀에 울린다.

오후 다섯시에.

바야흐로 투우는 그의 이마를 관통하여 울부짖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방은 고통으로 찬란했다.

오후 다섯시에.

멀리서 이제 괴저(壞疽)가 오고 있다.

오후 다섯시에.

초록 샅에 백합의 돌출

오후 다섯시에.

상처는 태양처럼 불타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군중들은 창문을 부수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오후 다섯시.

아, 그 운명의 오후 다섯시!

모든 시계가 오후 다섯시였다!

오후의 그늘이 진 다섯시였다!


2. 뿌려진 피

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


달더러 떠오르라고 해 다오.

나는 모래 위에 뿌려진 익나시오의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


달이 훤히 열렸구나.

고요한 구름의 말(馬).

그리고 울타리에 버드나무 늘어선

꿈꾸는 회색 투우장.


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


내 기억이 불붙게 하라!

자스민에 경고하리.

그다지도 정치(精緻)하게 희다니!


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


고대 세계의 암소가

모래 위에 흘린

피에 젖은 코를

그 슬픈 혀로 핥고,

그리고 기산도 산(産) 투우들은,

얼마쯤은 죽고 얼마쯤은 돌이 되어,

땅을 밟는 데 물린

이백 년으로 울부짖었다.

아냐. 나는 그걸 보고 싶지 않아!

나는 그걸 보지 않겠어!


그의 죽음을 온통 어깨에 지고

익나시오는 관중석 층층을 오른다.

그는 새벽을 찾았으나

새벽은 인제 없었다.

그는 제 자신이 있는 프로필을 찾았으나

그 꿈은 그를 당황하게 했다.

그는 제 아름다운 몸을 찾았으나

자기의 흘러나온 피를 만났을 뿐이다.

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

나는, 시시각각 힘없어지며

솟아오르는 그걸. 보고 싶지 않다:

관람석의 층층을 비추고,

목마른 관중의

코르덴과 가죽 위에 뿌려지는

그 분출을 듣고 싶지 않다.

누가 나더러 가까이 오라고 소리치는가!

나한테 그걸 보라고 하지 마라!


뿔이 가까이 오는 걸 보았을 때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러나 무서운 어머니들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목장을 가로질러,

헤아릴 수 없는 목소리들이 솟아올랐다.

하늘의 투우들한테 소리치며,

창백한 안개의 목동들한테 소리치며.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왕자가

세비야에는 없었다.

그의 칼과 같은 칼도

그렇게 참된 가슴도 없었다.

사자 떼와 같은 게

그의 놀라운 힘이었고,

확고한 절도는

대리석 토르소 같았다.

안달루시아 산(産) 로마인의 풍모가

머리에 번쩍였고

그 미소는 기지와 총명의

감송향(甘松香)이었다.

투우장에서는 위대한 투우사!

산속에서는 훌륭한 농부!

곡식단을 다룰 때는 얼마나 순한가!

박차를 가할 때의 그 단호함!

이슬을 대할 때의 그 부드러움!

축제에서의 그 눈부심!

최후의 어둠의 작살을

들 때의 그 무시무시함!

허나 이제 그는 끝없이 잠들었다.

이제 이끼와 풀은

확실한 손가락으로

그의 두개골의 꽃을 피운다.

그리고 그의 피는 노래하며 솟아난다:

늪이나 초원과 더불어,

얼어 붙은 뿔 위로 미끄러지면,

안개 속에 혼 없이 망설이며,

길고 어둡고 슬픈 혀처럼

천의 발굽에 채여 넘어지면서.

고통의 물웅덩이를 만든다.

반짝이는 과달키비르강 가까이.

오, 스페인의 흰 벽이여!

오, 슬픔의 검은 투우여!

오, 익나시오의 굳은 피여!

오, 그의 혈관의 나이팅게일이여!

아냐. 나는 그걸 보지 않겠어!

어떤 성배(聖杯)도 그걸 담을 수 없고,

어떤 제비도 그걸 마실 수 없으며,

어떤 반짝이는 서리도 그걸 식힐 수 없고,

어떤 노래, 어떤 흰 백합의 홍수도,

어떤 유리도 그걸 은색으로 가릴 수 없다.

아냐.

나는 그걸 보지 않겠어!


3. 눕혀진 몸

돌은 꿈이 슬픔에 잠긴 이마-

굽어 흐르는 물도 얼어붙은 사이프러스도 없이.

돌은 시간을 떠메는 어깨-

눈물과 리본과 행성들로 이루어진 나무들과 함께.


나는 잿빛 소나기가 그 여리고 수수께끼 같은 팔을

쳐들고 파도를 향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피에 젖지도 않고도 그 사지를 풀어지게 하는

누워 있는 돌에 붙잡히는 걸 피하기 위해.


왜냐하면 돌은 씨앗과 구름을 모으고,

장난치는 해골과 반영(反影)의 늑대들을 모으니:

허나 소리도 수정도 불도 낳지 않고,

오직 벽 없는 투우장들과 더 많은 투우장들을 낳을 뿐.


이제, 집안 좋은 익나시오는 돌 위에 누워 있다.

모든 게 끝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의

얼굴을 눈여겨 본다:

죽음이 그를 창백한 유황으로 덮었고

검은 미노타우르를 그 위에 놓았다.


모든 게 끝났다. 비가 그의 입으로 들어간다.

공기는, 마치 미친 듯이, 그의 꺼진 가슴을 떠나고,

그리고 사랑은, 눈(雪)의 눈물에 흠뻑 젖어,

가축떼의 산정(山頂)에서 몸을 녹인다.


무슨 말을 그들은 하고 있는가? 악취 나는 침묵이 깔린다.

우리는 사라져가는 한 눕혀진 몸과 함께 여기 있고,

나이팅게일이 깃들였던 한 순수한 모습과 함께 있으며

그리고 그게 깊이 모를 구멍들로 채워졌음을 우리는 본다.

누가 수의를 주름잡는가? 그가 말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아무도 여기서 노래하지 않고, 아무도 모퉁이에서 울지 않으며,

아무도 박차를 가하지 않고, 뱀을 놀라게 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한 번 쉴 틈도 없었던 이 몸을 보는 둥근 눈들을 지금은 원할 뿐이다.


여기서 나는 단단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봤으면 좋겠다.

말들을 길들이고 강들을 지배하는 그런 사람들을;

태양과 부싯돌로 가득 찬 입으로

노래하는 잘 울리는 해골의 사람들을.


여기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봤으면 좋겠다. 돌 앞에서.

망가진 고삐를 맨 이 육체 앞에서.

그들에게서 나는 알고 싶다.

죽음에 묶인 이 역전의 용사가 빠져나갈 길을.


그들이 내게 보여 줬으면 좋겠다, 향기로운 안개와

깊은 기슭을 지니게 될 강과도 같은 슬픔을.

투우들이 두 배로 헐떡거리는 걸 듣지 못하고

스러진 익나시오의 몸을 그 스러진 자리에서 받아들이기를.


고통으로 꼼짝 않고 있는 투우인 듯한

초생달과 둥근 투우장에서 스러졌으며

물고기들의 노래도 없는 밤에

얼어붙은 연기 오르는 흰 덤불 속에서 스려졌느니.


나는 바라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덮어

그가 지탱하는 죽음에 그가 익숙해지게 하는 걸.

가라, 익나시오; 저 뜨거운 울무짖음을 느끼지 마라.

잠들라, 날아라, 쉬라: 바다조차도 죽는다!


4. 없는 영혼

투우는 너를 모른다, 무화과나무도,

집들도, 네 집에 있는 개미들도.

아이도 오후도 너를 모른다.

너는 영원히 죽었으므로.


돌의 후면도 너를 모르고,

부서진 너를 싼 검은 공단도 모른다.

네 말없는 기억도 너를 모른다.

너는 영원히 죽었으므로.


가을은 작고 하얀 달팽이와 함께 올 것이고,

과분(果粉) 뽀얀 포도와 군생하는 언덕들과 함께 오겠지만

아무도 네 눈을 들여다보지 않으리라.

너는 영원히 죽었으므로.


너는 영원히 죽었으므로,

지구의 모든 사자(死者)들처럼,


생명 없는 개들의 더미 속에

잊혀진 모든 사자들처럼.


아무도 너를 모른다. 아무도. 허나 나는 너를 노래한다.

후대를 위하여 나는 네 프로필과 품위를 노래한다.

네 지성과 뛰어난 성숙함에 대하여.

죽음에 대한 네 식욕과 그 입의 미각에 대하여.

네 한때의 뛰어난 명랑함과 슬픔에 대하여.


모험에 그다지도 참되고 그렇게 풍부했던 안달루시아 사람이

다시 태어나려면(태어나기나 할는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하리라.

나는 그의 높은 기품을 신음하는 말로 노래하고,

그리고 기억한다. 올리브 나무들 사이로 부는 슬픈 미풍을.

▪정현종 옮김


사람의 죽음을 소재로 이처럼 강렬하면서도 아름답게 노래한 시가 있었던가? 물론 죽음 자체는 강렬하지도 더구나 아름답지도 않은 자연적인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결코 이성적일 수도, 객관적일 수도 없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은 시인의 마음이라면!

시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익나시오 산체스 메이하스는 로르카가 사랑했던 투우사였다. 스페인의 독특한 문화의 하나인 투우는 고대로부터 전해내려 온 일종의 죽음의 제의(의식)이다. 물론 그 대상은 투우(황소)지만 때때로 인간의 희생을 가져오기도 한다. 스쳐가는 투우의 날카로운 뿔처럼 투우사에게 죽음은 아찔할 정도로 늘 가까이 있는 치명적인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투우사를 떠나보내는 로로카의 이 시도 투우의 의식처럼 슬픔 속에서도 절도와 기품을 지키고 있다.

스페인 출신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Talk to her)>(2002)에는 투우 중 사고로 코마(혼수 상태)에 빠진 연인 투우사(리이다)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여행지 기자(마르코)가 등장한다.

마르코는 노래를 듣다가, 춤을 보다가 문득 리디아를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수시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슬퍼하되 지나치지 않는 것’은 우리 전통 서정시의 미학에서 보면 마르코의 행동은 죽음(이별)을 받아들이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연 마르코가 로르카의 이 시를 처음 읽었다면, 똑같이 투우사 연인을 잃은 슬픔에 공감하며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아니면 절제된 슬픔이 담긴 후반부 구절들을 읽으며 바다에 이르러 서서히 잦아드는 샛강처럼 조금씩 조금씩 눈물을 거두었을까?

▴영화 〈그녀에게〉

3

젊은 시절부터 생긴 습관대로 새로 산 책에 표시했던 날짜에 따르면 로르카를 처음 만난 것은 필자의 나이 스물네 살 때다. 다시 꺼내 본 책 속 시인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하고 신비롭다. 물론 그 시절 친구의 눈빛도 물속의 은화처럼 함께 겹쳐 어른거린다. 아름다운 시와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향기롭게 빛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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