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아닌 섬
한때 내가 관광 통역 가이드를 하기 위해 학원까지 다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순진함에 문득 가슴이 아려온다.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저 자신은 눈치 못 채는 진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 내와 제일 안 맞는 직업이 바로 가이드였다는 거다.
길치에다가 정해진 궤도 밖으로 그러니까 단 한 번도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보지 못한 한심한 젊은이가 바로 나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영어에 대한 열정이나 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는 정도랄까.
무엇보다 웃픈 건 내가 가이드 일에 대해 무척 진지했다는 거다. ‘민간 외교관’이라는 듣기 좋은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 아무래도 ‘가이드의 꿈’은 1997년 외환위기 없이 설명이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청춘은 외부의 충격이나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현재 청춘들의 ‘공시 열풍’을 보면 오래전 나의 청춘과 겹친다.
맞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내 청춘에 불어닥친 위기에 반응했던 거다. 내가 가진 것(#영어)으로 나름대로 길(#가이드)을 찾음으로써, 세상에도 도움(#외화 획득)이 되는 일을 꿈꾸었던 거다.
그래서 서투르고 안타깝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나의 1998년 무렵 나의 ‘가이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