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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Oct 25. 2020

식탁 일기 - 혼자 하는 수상 소감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 작가의 말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한 해가 끝날 때, 연말 시상식의 수상 소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의 말을 쓰거나, 수상소감을 할 기회가 없었다. 앞날을 점쳐봐도 내 책에 작가의 말을 쓰거나, 수상 소감을 말하기도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의 작가의 말을 빼놓지 않고 읽고, 매년 연말 시상식의 수상 소감을 졸린 눈을 비벼가며 듣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무언가 한 고비를 넘고 있는 사람들의 지난날을 함께 돌이켜 보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저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저 별들도 사실 과거에는 반짝여 본 적이 없다고, 이렇게 반짝일지 상상도 못 했다고 얘기할 때, 그리고 먼지투성이인 자신의 반짝임을 발견해 준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할 때면 나는 어쩐지 반짝이는 별들의 과거를 생각하며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지금도 반짝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측은한 마음도 함께 들어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 미용실 김 언니, 사랑하는 팬 여러분을 호명할 때 혼자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주책맞게 눈앞이 아른거리며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언제일지 모를 나의 수상소감 장면을 공상해 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공상의 세계에선 상을 받지 않아도 수상 소감을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으니까.


 하늘에 계신 아빠 늘 나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 가족들을 먼저 말할 것인가 아님 가족보다 고마운 지인들을 먼저 말해야 하나, 지인들을 가나다 순으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고마운 순서대로 말해야 하나 누구 하나 빼놓으면 안 되는데.... 혼자만의 고민을 하면서 지나온 한 해에 고마운 이들을 떠올려본다. 과연 올해의 수상 소감 인사말의 크라이맥스에는 누구의 이름을 올려야 할 것인가?


 지난한 한 해였다. 외출도 여행도, 맛집도 없이 밥벌이 전선 이상무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해야 할 날들. 모두 함께 Delete 키를 누르고 싶은 2020년.

 지난 2월 어색하게 글쓰기 친구들 만나고 뭔가를 쓰고, 읽고, 합평하고, 울고 웃다 보니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글쓰기의 아쉬움과 소망으로 함께 쓴 글들을 모아 다음 달부터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준비한지는 약 3개월. 11월 2일을 시작으로 딩동, 하고 우리의 글을 구독자에게 메일로 보내기로 약속을 하고, 지난 금요일 구독자 모집이 시작됐다. 누가 과연 이 글을 살 것인가? 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을 하며 고마운 구독자님들에게 드릴 사은품 10개를 구입하면서 우린 말했다. ‘설마, 이거 우리가 다 갖게 되는 것 아닐까?’,‘에라 모르겠다. 아무도 안사면 사은품은 우리가 나눠 갖자!’는 농담을 하며 시작한 메일링 서비스는 첫날 뜨거운 반응과 함께 이미 사은품 숫자의 열 배가 넘는 구독 신청서가 도착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뗄까 말까 한 시작이지만 나의 글쓰기 역사에선 일대의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4  겨울, 교토의 좁디좁은 호텔 침대 위에서 캔맥주와 과자 봉지를 사이에 두고 BY,  내가 앉아 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대학 동창끼리 처음 가는 해외여행에 흥분한 우리는 하루에 2만보를 넘게 걷고, 삼시 세끼와 간식에 반주까지 빠짐없이 챙기고도 시간이 모자라 밤을 새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다. 잡다한 이야기 속에는 온갖 책과 작가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어떤 작가와 어떤 작가를 칭송하고 욕하고 가까스로 합의를 보는가 싶더니 각자의 견해 차이에 어이없어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너는 왜 안 쓰냐는 B의 질문에, 내가 왜 쓰냐고 물었고, 골치 아프게 글 쓰는 사람 따위는 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세상에 재미있는 읽을 게 이렇게 많은데 즐겁게 읽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굳이 나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했다. B가 너가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아쉽다고 취한 목소리로 말했을 때, 나는 아쉽다고 말해주는 B의 얘기에 살짝 설렜으나 그런 마음은 애써 감추고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쓰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밤 나는 눈을 감고, 약간 취한 상태로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내가 Y와 카페에 앉아 있을 때, 테이블 위의 책을 보다 Y가 말했다. 너도 쓸 수 있지 않냐? 하지만 나는 안 쓰는 걸. 그러니까 너는 왜 안 쓰냐고 물었을 때야 정말, 뭐라도 써도 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B, Y의 응원. 꼬박꼬박 읽어주는 J를 생각하며 그렇다면 써보자고 생각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자 하는 글쓰기는 질리기 십상이었다. 나의 팬들은 오직 대학 친구 세 명 밖에 없었고, 누구도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글쓰기는 부담 없었으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글을 쓰는 일은 외로웠다. 누군가 읽고 ‘좋아요’를 백개쯤 누르고, 브런치 메인에 걸려 일일 통계 1만 개를 찍어 출간제의라도 들어왔으면 덜 외로웠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몇 안 되는 독자들은 다 나처럼 소극적인 건가.’라고 생각해도, 한 없이 초라한 조회수를 보면 나의 글은 아무래도 여기저기 읽히는 글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돈 받고 쓰는 글은 아니니 나 좋자고 기분 내킬 때 일기나 쓰는 거로 치면 속 편한 일이었다. 새로운 ‘돌파구’라는 게 있을까 싶었고, 설령 있다고 해도 나에게 열릴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Y가 글방 모임에 등록했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흠~ 하고 뜸을 들였다. 모든 게 너무 안락한 생활이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써도,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히 욕심부리면 되는 일이었다. 글이야 안 써도 그만인데.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무엇보다 귀찮은 일이지 않는가. Y 깜짝 놀라며, ‘아니 그 글방 모임은 바로 너를 위해 있는 거야!’라고 말했을 때야, 나는 심장이 뛰며 글방 모임이 벌써 마감됐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달 나기 시작했다. Y의 응원 덕이었을까, 가까스로 열 명 정원에 들어 교육비를 계좌 이체하면서도 설레는 마음보다 귀찮은 마음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다고 내가 무슨 갑자기 유명 작가라도 되겠냐고. 최대한 귀찮지 않고, 덜 상처 받는 게 이 글방 모임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모임이 시작되고 서도 나는 연신 심드렁한 채를 유지하고 싶었다. 나는 심드렁한 채 있다가 심드렁하게 빠져나가면 손해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경험 삼아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수강료야 뭐 취미 생활한 셈 치면 되는 일이고, 내 글이 거지 같아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어차피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인데 조금만 뻔뻔하면 될 일이니까.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다. 별다른 기대도 없이. 글쓰기가 한 회, 두 회 깊어질수록 철벽을 치고 앉아 적당히 쓰고 오면 될 거라 생각했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은 이렇게 뜨거운 건가? 나는 세상 어디서도 하지 못한 말을 여기서 할 수 있었다. 나 잘 쓰고 싶어. 나도 팔리는 글을 쓰고 싶어. 찌질하게 쓰기 싫어. 계속 쓰고 싶어. 주눅 들지 않고 감춰둔 욕망을 말하는 건 이렇게 속 시원한 일이었던가. 욕망을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글 따위가 뭐가 대수라고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욕망이 여기서는 부동산 뉴스보다 뜨거운 욕망으로 둔갑하곤 했다. 그따위 글 때문에 의기소침하고, 울화가 치밀고, 짜증이 나고, 잠깐 마음이 놓인다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여기서는 이해받을 수 있었다. 나의 숨겨진 욕망을. 내가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이거 밖에 못 써서 그게 들킬까 봐 그렇게 못 쓰고 있었다고. 여기서는 말할 수 있었다. ‘글쓰기’라는 이름의 욕망의 전차를 하나씩 꽁꽁 숨겨둔 우리는 그제야 서로의 욕망에 불을 지피며 어디로든 가보자고 했다.

열 가지의 색깔로 서로를 북돋을 수 있었다. 그저 글쓰기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늘 혼자 돌아서 나오는 서로를 잡아끌어 줄 수 있었다. 잘못된 욕망이어도 괜찮아, 여기서는. 그렇게 같이 쓸 수 있었다.


 한 해의 끝자락으로 접어 들어가는 10월의 어느 날.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수상 소감을 쓴다. 올해도 역시, 출간을 하거나, 무슨 백일장이나 글쓰기 대회에서 뭐라도 수상 하지 못했다. 여봐라 하고 우쭐하며 보여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2020년의 글쓰기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글 쓰는 삶에 작년보다 몇 발은 다가갔을 스스로에게 ‘포기하지 않은 상’을 준다. 보이지 않는 별을 보며, 나름의 속도로 걸어간 나에게 용기와 응원도 보낸다. 너무 빨리 가다 지치지 않았으며, 너무 늦게 가다 갈 곳을 잃지도 않았다. 또 하나, 수상 소감의 하이라이트!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고마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지난 2월 게으름을 딛고 글방에 등록한 과거의 나와, 그저 다른 곳만 보고 있는 나의 시선을 돌려 ‘쓰기’를 바라보게 해 준 B, Y, J. 그리고 첫 만남이래 지금까지 한결 같이 뜨겁게 서로를 응원해주는 글쓰기 쓰보의 멤버들, 잘 쓰고 싶다는 욕망 앞에 민낯으로 설 수 있게 해 준 나의 은인들에게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사랑과 감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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