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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Oct 23. 2020

독서 일기 -< 라이팅 클럽 >을 읽고

 여기 허름한 계동의 뒷골목 문간방에서 글짓기 교실을 하는 김 작가가 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엄마를 처음 만나 엄마인 듯 엄마 아닌 김 작가와 함께 사는 ‘내’가 있다. 오전엔 계동 아낙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고 오후엔 방과 후 아이들과 글방을 하는 김 작가는 진짜 작가도 아니면서 작가로 불리며 글방을 이어간다. 밥 하고 애 공부시키는 것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엄마 때문에 외로운 딸 나(영인)는 열일곱에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 시몬 베유의 <노동 일기> 같은 책들을 읽으며 그저 읽고 쓰며 청춘의 시기를 견디고 있다.


 누가 쓰라고 시킨 적도, 딱히 재능도 없는데, 돈도 되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이상한 모녀의 이야기. 하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이 책은 모든 쓰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기록이다. 그저 쓰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뜨거운 젊음의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외롭고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없어서 주인공들은 쓰고 또 쓴다. 김 작가의 계동 글방 아줌마들은 또 어떤가. 아무리 쥐어 짜내도 더 짜낼 수 없는 본인들의 얘기를 쓰고 또 쓰다 못해, 한식 레시피에, 근종 수술 병상일기 같은 것을 쥐어짜서 쓰는 그녀들을 보며 쓰기의 열망에 가득 찬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쥐어짜듯 쓴 그 글은 또 왜 맨날 쓰레기 같은 것인지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글을, 세상에 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이라 욕하며 문집을 집어던지는 영인은 쓰는 인간들의 심리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지 같은 걸 쓰고 견디는 모든 쓰는 인간들이여!


 하지만 글쓰기의 열망이란 왜 쓰레기 같은 글을 쓰면서도 사라지지가 않는 것인지 영인은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밥벌이를 하면서도, 남자랑 연애를 하면서도 글쓰기의 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다. 미친년처럼 들어앉아서 글만 쓰는 영인은 친구 N에게 “너도 한 번 써봐. 얼마나 깊어지는데.// 다른 사람이 된 느낌, 괜찮아. 이런 느낌.”이라고 하지만 영인 스스로도 자신을 “나는 미친 여자, 돈키호테”라고 말한다. 밑도 끝도 없는 열망에 사로잡힌 모든 글을 쓰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래서인가 평생을 글방의 안주인으로 살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는 김 작가의 완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요양병원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시작된다. ‘병원 침대 위 식판에 상체를 괴고 앉아 뭔가를 쓰는 김 작가. 순환의 시간. 뭔가를 쓰라고 자꾸만 부추기는 시간, 조울증의 시간,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반드시 찾아오고야 마는 지긋지긋한 떨림의 시간, 아무런 욕망도 갖지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침묵의 시간.... 그래도 뭔가를 쓸 때가 쓰지 않을 때 보다 나았다. ’는 고백처럼 언제가 글 쓰는 삶의 완성이 어디쯤일까에 대한 대답은 아마 이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뭔가를 쓸 때가 쓰지 않을 때 보다 나은 상태가 되는 때.


 올해 만난 글쓰기 친구들을 생각하며 라이팅 클럽을 읽었다. 열망은 있으나 끈기가 없는, 가끔은 끈기가 생기기는 하지만 재능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읽고 쓰는 거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우리들이 그나마 글쓰기의 연약한 끈을 잡고 한 해를 넘기고 있다.

“우리는 모두 게으르거나 쓸쓸하거나 나약하기도 하여서 뭔가를 혼자서는 시작하니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작을 서로에게 기댈 수는 있단 걸 알겠다.” 는 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나의 글쓰기 친구들과 소설 속 계동 글방, 뉴저지의 라이팅 클럽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답 없는 글을 쓰는 모두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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