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야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식탁에서 먹은 크루아상 가루를 행주로 닦고, 진한 커피 자국이 묻은 머그컵을 싱크대 개수대에 넣고, 창문을 활짝 연다. 시베리아에서 온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와 깜짝 놀란다. 거실과 안방, 작은방들을 분주하게 오가며 작은 창들을 열고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 겉옷 하나를 더 껴입는다. 분주하게 이 방 저 방 청소기를 끌고 종종 거리다, 문득 식탁 의자에 가지런히 올려둔 딸애의 양말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먼저 나온다. 민트색 바탕에 웰시코기가 그려진 양말은 딸애의 것이다. 분명 어제 신고 있던 양말이 분명한데, 가지런히 식탁 의자에 벗어둔 것을 보아하니 어제 저녁 먹으면서 벗어뒀구나 생각하며 딸애 양말을 들어 세탁실에 가져다 둔다.
세탁물은 그때그때 세탁실로! 요 녀석 아직도 칠칠치가 못하네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제 저녁 식탁 위에 앉아서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던 딸애의 모습이 떠 올라 나는 또 빙긋 웃는다. 엄마를 닮아 매운 음식은 잘 못 먹으면서도 떡볶이는 좋아해서 컵에 물을 잔뜩 따라놓고 혓바닥을 헥헥 거리며 먹는 딸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콩알만 하던게...’ 혼잣말을 하고 딸애 방문을 살짝 연다.
긴 머리카락들을 방바닥에 우수수 떨어뜨려 놓고 나갔지만 책상 위만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어제의 할 일과 오늘의 할 일을 빼곡히 적어 놓은 체크 리스트를 보고 ‘나보다 낫네’하는 생각도 한다.
이제 옷도 같이 입고, 신발도 같이 신는 딸애를 보며 매일매일 새록새록 신통한 기분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하루는 내 옷을 입고 걸어가는 딸애를 보고 남편이 “여보!”하고 부르고, “아니 너 왜? 엄만 줄 알았잖아?” 하고 당황한 적도 있고, 치킨 한 마리면 충분했던 세 식구의 배달 메뉴도 딸애가 작정하고 먹기 시작하면 “두 마리에 떡볶이 하나 추가 했어야지!”하고 아쉬워 한지도 오래됐다. 예전처럼 간장 맛, 매운맛으로 반찬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고, 혼자 씻고, 학교도 혼자 가고, 엄마가 바쁜 날엔 혼자 상을 차려 밥을 먹을 수도 있게 됐다. 딸애가 컸다. 나보다 더 크려고 한다.
아이를 업고 다닐 때는 그저 딸이 빨리 크기만을 바랐다. ‘어서 커서 네 세계로 가렴! 제발 좀 네 친구들과 놀렴! 엄마는 찾지 말렴! 엄마는 엄마 친구들과 놀 테니!’ 주문을 외우며 ‘너만 크면 난 자유야!’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버겁던 하루하루가 지나 어떻게 14년이 흘렀는지 생각하면 아득한 기분이 됐다. 옛 사진첩 속에서 딸애는 지금의 3분의 1이 될락 말락 한 키로 내 치맛자락을 꼭 잡고 서서, 애착 인형을 들고 여기저기 출몰했다. 졸리면 소위 말하는 진상 아이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는데, 그래서인지 졸리고 떼 부릴 때 사진이 특히 많다. 그 귀여운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헐크로 변해서 아빠를 때리고 엄마를 때리고 발로 차는 문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때는 엄마 아빠라는 사람도 충격에 휩싸여 하나밖에 없는 딸이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건 아닌지, 오은영 박사님처럼 손과 발을 꼭 잡고 훈육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관련 육아 서적을 탐독하며 아이의 폭력 성향은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를 반복해 읽기도 했다. 딸애가 쓴 ‘엄마 때려서 미안해요’라는 편지는 지금도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남편과 내가 딸애를 놀릴 때마다 출연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이는 잠을 잘 자지도, 밥을 잘 먹지도, 고분고분하지도, 늘 애교 있고 활발하지도 않았다.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날은 친구보다 편안한 상대이기도 했다가 어떨 날은 원수보다 더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좋았다 나빴다가 수시로 반복되는 딸애의 감정 기복을 당해낼 수가 없어 “됐다 됐어 내가 이 집구석을 나가는 게 낫지!” 소리친 건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러던 딸애가 변했다. 딸애가 사람다워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하루에 몇 번을 ‘못 살겠다’고 하던 말이 하루 건너 한 번, 이틀 건너 한 번, 사나흘 건너 한 번이 되고, 이제는 가끔 서로 기싸움하는 게 이벤트일 정도로 있을까 말까 한 일이 됐으니 그 또한 신기한 일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싶어 곰곰 생각해봐도 결정적 변화의 사건은 없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 엄마의 흰머리 칼이 늘고, 피부가 탄력을 잃은 만큼 아이와의 시간이 쌓였다고나 할까. 48센티에 3.3kg 태어난 딸애의 몸무게가 열 배나 넘게 늘어난 그 시간만큼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나 할까.
시간이 삶의 빛깔을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내는지 실감한다. 나의 과거를 추억할 때 느끼는 아련함과는 달리 지금 딸애가 살고 있는 시간은 무지개 빛을 만들며 점점 센 파동을 그리며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듯하다. 조그만 손, 조그만 발로 집 안을 쥐락펴락 했던 에너지는 이제 밖을 향해 제법 그럴듯한 빛을 비출 것이다. 콩만 하던 네가 이제 ‘사람 구실’을 할 때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끼며 엄마의 키를 훌쩍 넘으려는 딸애의 뒷모습을 본다. 옹골찬 뼈 마디, 탄탄한 근육, 까만 머리칼을 보며 딸애의 하루를 옛날만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꼭 딸애 옆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보호자의 시간은 끝났다. 엄마 눈엔 그저 신던 양말을 여기저기 올려두는 어린애 같은 딸애지만 신던 양말을 세탁실에 가져다 둬야 한다는 것은 이미 딸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이미 나보다 딸애가 더 잘 아는 것들이 많아졌으니까.
중학교 배정통지서를 한 손에 들고 들어오는 딸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아마 딸애는 이제 서서히 엄마의 치마폭을 떠나는 연습을 하리라. 그것은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일 수도, 어쩜 맞고 싶지 않은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처음 딸을 만난 14년 전 그때처럼 애면글면 딸애만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제 한 발짝 떨어져 너의 삶을 보아도 된다는 것. 우리가 함께 꽉꽉 눌러쓴 14년의 시간을 하나씩 꺼내어 너의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총총히 비추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