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로 선택한 노트북은 2년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가성비 노트북이어서 투박하고 예쁘지 않았지만 2년 만에 망가지길 원하진 않았었는데.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나는 드디어 대본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아직도 죽어라 테이프 속 내용을 받아 적긴 하지만 대본도 쓰는 작가였다. 지금은 사라진 S사의 오묘한 블루와 퍼플의 색감 노트북이었다. 이제 채 월 200만 원 전후의 원고료를 받는 내겐 좀 과한 노트북이었다. 한 달 고료의 전부와 맞바꿀 만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대본도 쓰는 작가니까 유니크한 컬러에 가볍고 뽀대 나는 그 노트북이 갖고 싶었다. 아무래도 정가로 사기엔 돈이 모자랐으므로 당시 남자 친구는 중고 장터를 뒤져 내게 딱 맞는 노트북을 찾아 줬다. 포장만 벗긴 새 노트북에 선명한 S사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고. 중고 판매자는 하드디스크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잔뜩 담아 주었다.
블루와 퍼플빛이 오묘한 그 노트북으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썼다.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오던 강원도 오지의 마을, 철마다 돌고도는 계절 먹거리 수확 현장, 애견 뽐내기 대회와 동물원 온갖 동물들의 생일잔치, 공사장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선족의 빈소, 아르바이트하다가 전신 화상을 당한 중학생,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와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서. 세상의 사연들이 가득한 노트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생방송을 했다. 하루를 쉬고 6일을 생방송처럼 살았지만 세상을 날 것으로 만나고 재구성하는 일은 짜릿했다. 세상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한 달 월급에 버금가는 노트북을 샀지만 그 노트북으로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었으니 그거면 되었다 싶었다.
이상하게 노트북들이 2년만 되면 맥을 못췄다. 싼 것도 비싼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는 시간 빼고 늘 켜 있기 때문인 건가, 전자제품을 관리하는 방법도 모르는 그저 사고 쓰는 사람인 나를 거쳐간 노트북들은 2년쯤 되면 발열과 소음이 점점 심해지면서 꼭 중요한 순간에 멈춰버리곤 했다. 그 후로 두세 번 노트북을 더 샀다. 이제 노트북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연장이어서 첫 노트북을 살 때의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임신을 하고, 의사의 절대 안정 조치에 바로 사무실 노트북과 살림들을 그대로 들고 집으로 왔다. 취재 자료와 출연진들의 연락처, 구성안과 대본, 잡다한 필기구와 노트북은 신혼집의 쓰지 않는 방에서 굴러다녔다. 일은 하지 않았지만 아침이면 노트북을 켜서 뉴스를 보고 메신저로 친구들을 만났다. 임신과 출산, 아이는 태어나서 걷기 시작했고, 돌이 지나곤 책상 위에 노트북을 혼자 만질 수도 있게도 됐다.
어느 날, 조용하던 딸애가 뭘 하나 봤더니 오 마이 갓, 노트북 키보드를 하나하나 곶감 빼먹듯이 알알이 빼고 있었다. 딜리트 버튼 하나, 커다란 엔터 하나, 인서트 하나, 숫자 하나. 골고루. 버튼이 빠져 속이 훤히 보이는 노트북을 들고, 가까스로 자판을 치며 가끔 아르바이트하러 회사에 나가곤 했다. 조금은 창피했지만 언제까지 일을 할지 알 수도 없는데, 멀쩡히 잘 켜지는 노트북을 살 수는 없었다. 일단 버텨보자.
돌쟁이 딸에게 제발 엄마 노트북에 키보드 버튼 좀 빼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헛수고였다. 노트북은 점점 골격을 드러냈고, 다행히 노트북으로 뭔가를 써야 하는 일과는 멀어져 갔다. 그렇다고 노트북이 아예 없이도 살 수 없으니 고르고 골라 20만 원짜리 노트북을 찾아냈다. 이건,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거네! 세상 정말 좋아졌구나 노트북이 20만 원이라니!
20만 원짜리 노트북이 5년을 넘게 버티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조금 이상하다 싶어서 AS센터에 갔더니 5만 원에 노트북을 새것처럼 만들어줬다. 일할 때만큼 하루 종일 쓰지 않으니 수명이 길어진 건지, 점점 변해가는 초고속 시대에 어울리는 노트북은 아니었지만 망가지지도 않은 것을 버릴 수는 없기에. 근면, 성실, 절약의 유년 시절을 보낸 내게 멀쩡한 것을 버리는 일은 범죄와도 같았다.
이러다 큰 일 나겠지 싶어 노트북 쇼핑에 나선 건 올 2월이었다. 꺼졌다 켜졌다 멈추길 반복하는 노트북을 살살 달래 가며 쓰는 것은 이 집안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코로나로 학원을 못 가니, 인강으로 학원을 대체하는 딸이 노트북을 켜다가 시간을 다 보내기 일수였다. 뚝뚝 끊기는 동영상을 기다리다 허송세월을 보내는 걸 보는 것도 참기가 어려워 서 이 시간이면 수학 문제 하나는 더 풀겠다 싶은 마음에 겸사겸사 노트북을 사기로 했다. 국산 외산, 초고가, 초저가, 가성비, 뽀대, 에이에스 유무 등등 등등 이러저러한 옵션을 검색하기에 몇 날 며칠, 노트북을 산다고 유튜브로 노트북 스펙 검색 까지 하면서 고르고 골랐으나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예전에는 남자 친구들이 해주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남자 친구는 없고, 남편은 그냥 젤 비싼 거 사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무엇을 기대하랴. 고르고 골라 남편의 지인까지 나서서 구매한 노트북이 배송된 날, 속보가 떴다.
전국 초중고생 온라인 개학. 딸에겐 인강들을 때만 빌려 주려고 했던 거였는데. 나의 새 노트북은 포장을 풀자마자 그대로 딸애 책상 위에 자리 잡았다. EBS와 온라인 학습터를 등록하고, 학원 앱을 깔고 딸애의 스티커를 붙였다. 엄마의 글쓰기는 다시 20만 원짜리 노트북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글 써서 10원도 못 버는 마당에. “너 내가 이거 진짜 엄마니까 너 쓰라고 하는 거다. 13살이 백만 원도 넘는 노트북이 가당키냐 하냐!”, 생색 내기에는 딱 좋았다.
다행인지 당장 꺼질 거 같은 노트북은 그 후로도 10개월을 무탈하게 견디고 있었다. 전원 버튼 켜고 하 세월, 한글 파일을 외부 하드에 저장하고, 인터넷 접속하고 한 숨 몇 번 쉬면 쓸 수는 있었으니. 노트북이 없어서 글을 못 쓰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볍고 휴대하기 좋고, 뽀대도 나는 노트북이 있으면 글도 잘 써지지 않을까? 하지만 글로 십원도 못 버는 여자에게 노트북 타령이 어울리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주제 파악을 잘해서 문제였다. B네 회사의 창립기념일 축제 시작과 함께 노트북들이 빛의 속도로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어쩌면 이번에도 사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에라 모르겠다. 내가 이 나이에 이것도 못 사냐! 는 황당한 결론으로 작고 예쁜 노트북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물건은 이런 것이구나.
최근 내가 언제 이렇게 설레 봤던가.
새 집에 이사 오며, 새 가구에, 새 전자제품으로 설레긴 했으나 이제 그 약발도 다 떨어졌다. 오래된 인연들,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새 물건을 사는 설렘은 실로 오래간만이다. 아니 아니 맨날 사는 계란, 식빵, 두부 이런 거 말고, 온전히 ‘내 것’ 아무도 손 못 대는 나만의 것을 산 지가 얼마나 오래간만인가. 이젠 티셔츠 한 장을 사도 사는 족족 딸에게 빼앗겨 버리는 마당에 새 노트북의 등장은 나의 마음을 적잖이 설레게 했다.
아니 얼마나 설렜으면 지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서 식탁 위에 앉아서 지난 노트북을 추억하는, 노트북에 의한, 노트북에 대한, 노트북을 위한 글을 쓰냔 말이다.
누구에겐 그깟 노트북 일 수도 있으나 큰 맘 먹고 장만한 나만의 노트북으로 오늘 아침 무려 나는 노트북 얘기를 A4 4페이지나 쓸 수 있었다. 그것도 바탕체 10으로!
현금영수증 발급하며 몇 번씩 다운되는 사이트를 참지 않아도 되고, 노트북에 카톡 프로그램을 깔 수도 있으며,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두렵지 않다. 왜냐면 내 노트북은 가벼우니까.
돌이켜보니 나의 노트북은 늘 가성비 제로였다. 한 달 월급보다 큰 노트북을 사야 할 수 있는 일이라니. 한 달에 오천 원짜리 웹진용 글을 쓰면서 백만 원짜리 노트북은 몇 년을 써야 손해 보지 않는 장사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문득 가성비에 이어 가심비라는 말도 있다는 게 생각났다. 그럼 이번 소비는 가심비 100% 구나. 아주 오래간만에 내 것을 샀다. 잠깐 쓰다 버리고, 입고 마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오래오래 사유할 도구가 될 것이다. 20년 전에 벽돌 같은 노트북을 들고 다다다다다 세상의 모든 얘기를 집어삼키던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 이제 느릿느릿 할 말을 고르는 중년의 내가 쓸 이야기를 불러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