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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Nov 05. 2020

식탁일기-노트북 연대기 1.

새 노트북을 샀다. 

2020년의 트렌드에 걸맞게 얼씨 골드빛이 영롱하다.

한글 최신 버전과 윈도우 10이 내장된, 터치 하나면 인터넷의 바다로 그야말로 풍덩 빠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스피드와 총 천연 광을 그대로 살려내는 번쩍거리는 모니터. 한 손으로 거뜬히 들고도 남는 950그람의 중량, 슬림하고 유연한 직선과 곡선의 디자인. 처음 보는 황홀한 자태에 우와~를 연발했다. 어쩌다 덜컥 사긴 했지만, 전원 버튼을 누르고 모니터에 화면이 들어오자 이 좋은 걸 안 샀으면 어쩔 뻔했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안 샀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긴 했겠지만 백만 원으로 이 정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암, 이건 합리적인 소비였어. 그럼 그렇고 말고.     


20 만원 주고 산 초 저렴 가성비 끝판왕 노트북으로 6년을 버텼다. 직업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가끔 아이들 수업할 때 보여줄 문서나 동영상 자료를 찾는 용도였다. 웬만한 일도 스마트폰으로 다 해결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굳이 노트북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가격이 언빌리버블 하게 저렴한 노트북은 그래도 제 몫에 충실했다. 한글 문서와 인터넷 서핑, 동영상 재생이라는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쓸수록 느려 터지고, 용량도 적어서 사용할 때마다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프로그램 하나만 깔아도 저절로 멈추거나 용량이 다 차서 기존 프로그램을 지우고 새 프로그램을 까는 수고를 반복하기도 했지만. 가끔 회사에 노트북을 두고 온 남편은 집에서 20만 원짜리 가성비 노트북을 쓸 때마다, ‘아 좀 하나 사라고! 내가 하나 사와?’를 반복했다.’, ‘참을성도 없는 인간 그걸 못 참냐!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왜 새 거를 사!’라고 응수했지만 그냥 내 처지에 이 정도면 됐지 싶었다. 사실 그땐 아무것도 쓰지 않는 시절이기도 했고, 신문기사나 보자고 비싼 노트북을 사는 건 주제에 걸맞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슬프게도 스스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아 쉽게 만족한다. 주제 파악을 하는 사람은 불편함을 잘 참게 된다.      


처음으로 노트북을 산 날을 기억한다. 

때는 1999년 가을.  대학 4학년인 나는 지난 여름부터 방송사에서 취재 작가로 일을 하게 됐다. 계약서도 없는 시절이었고, 자체 면접과 실기시험 비슷한 것을 보고, 전화 한 통을 받고 채용됐다. 채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나 싶긴 하지만 여하튼 다음날부터 나는 여의도에 있는 보랏빛 건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이었다. 요즘엔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는 게 희귀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엔 대학 4학년이면 취업을 나가는 일이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IMF의 여파로 나는 좀 조바심이 났다. 뭐가 됐든 어찌 됐든 취직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백수 타이틀을 달고 싶지는 않았다. 신중하게 직업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게 당연하다는 아름답고, 동화 같은 생각에 젖어 글을 쓰고 싶지만 혼자 글만 쓰는 일은 어쩐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적당히 쓰고 세상에 이름을 알릴 일로는 이게 제격이다 싶었다. 어린 나이였고 일단 그러면 먹고사는 문제는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는 일은 피디나 메인 작가가 하기에 격이 떨어지는 허드레 일이었다. 허드레 일이긴 했지만 아직 학생티도 벗지 않았지만 뭐라도 실수 하나 했다간 소송이 일상인 시사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을 법정에 세우는 장본인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도 했다. 긴장을 풀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음지에 숨어 찾을 수 없는 범죄자를 찾아내야 했고, 장기 밀매 현장을 잡고, 사이비 종교 교회에 순진한 얼굴로 잠입해야 했다. 사건 사고 현장에 우리 팀이 우위에 서게 판을 짜 놔야 했다, 어디 사는 이러이러한 김 아무개 씨가 필요하면 전국의 김 아무개 씨에게 전화를 해, 혹시 그분이세요 하고 밑도 끝도 없이 물어보는 일은 그 중 귀여운 일이었다. 신문기사에 한 줄로 쓰여있는 사건을 몇 분짜리 방송 분량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삽질을 하고, 어디까지 가야 하고, 무슨 얘기까지 들어야 할지 한계는 없었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하는 것이 일이었고, 그것이 취재 작가 능력을 최대치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엔 가능했다가 오후에 취소하는 수많은 인터뷰이들과 남들 퇴근하는 시간까지 밀당을 하다가 밤이 되면 손바닥만 한 편집실로 기어 들어가 낮에 취재해온 테이프들을 켜고, 그대로 받아 적는 일을 했다.


라떼는 말이야, 손으로 베껴 쓰던 시절이었다. 이제 막 노트북이라는 게 생겨서 몇몇 취재작가 중엔 노트북으로 받아 적는 친구들도 있었다. 취재 작가 중에서 연차가 있는 작가들이었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나는 당연히 노트북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검정 모나미 볼펜으로 인터뷰이들의 말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받아 적었다. 표준말이면 고마웠고, 사투리나 영어가 섞여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땐, 조그셔틀로 몇 번이고 돌려 답을 찾아 적었다. 한 번 듣고 모르겠다고 물음표 따위를 표시해놨다간 메인 작가 언니와 피디들이 나를 근성 없는 작가로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람 얼굴이 보이는 테이프들을 받아 적는 건 괜찮은 편에 속했다. 흔들리는 몰카로 알 수 없는 화면들이 펼쳐지고, 어디서 누가 말하는지도 추측할 수도 없는 장면이 펼쳐지면 매의 눈을 뜨고 화면을 째려봤다. 어디서 뭐가 걸려들지 알 수가 없으니 60분 분량 테이프에서 방송에 쓸 그림 하나라도 찾아내야 하는 게 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 테이프를 받아 적다가 손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이 되면 새벽 공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했다. 방송국에서 하루 종일 쐰 에어컨 바람은 한 여름에도 뼛속까지 떨리게 했다. 이러다간 삼복더위에 얼어 죽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기계실로 전화를 걸어 제발 에어컨을 좀 줄여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여기서 더 낮추면 몇 천만 원짜리 기계들이 고장이 난다는 얘기를 듣고, 여기선 그냥 무조건 버티는 게 살 길이 하는 것을 알았다. 언제까지 일을 할 수는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계약서 한 장 없지만, 나도 노트북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내가 먼저 고장이 나겠어. 월 80만 원을 받는데, 노트북은 월급의 두 배가 넘었지만.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몸이 망가지는 거 보단 낫겠지 싶었다. 이건 나에게 하는 투자라고.


당시의 남자 친구랑 전자상가로 노트북을 사러 갔다. 컴 알못인 나에게 공대생 남자 친구의 존재는 중요했다. 눈 뜨고 코베인다는 전자상가에서 코가 베이지 않게 남자 친구와 동행해 이러저러한 노트북을 보고, 예쁘고, 비싼 거, 좋은 것, 튼튼한 것, 싼 것 중에 가성비가 좋은 노트북을 선택했다. 지금은 사라진 회사의 제품이었고, 벽돌보다 무거웠지만 내게도 노트북이란 게 생겼다. 이제 손가락이 뒤틀릴 정도로 테이프를 맨손으로 받아 적지 않아도 되고, 급해 죽겠는데 한글 문서를 만들기 위해서 공용 PC에 자리가 언제 비는지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

 

첫 노트북은 24시간 켜져 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한 달에 한 번 방송이 끝나고 쉬는 2-3일을 제외하곤 밤새도록 켜진 채 오만가지 일을 했다. 기획안, 인터뷰 정리, 프리뷰, 구성안, 홍보 안 등등등 아직 대본 한 줄도 못 쓰는 작가였지만 노트북은 꼭 있어야 되는 거였다. 소리바다에서 음악을 다운로드해서 아무도 없는 새벽의 사무실에서 인터뷰 내용들을 정리하는 일은 분명 고됐지만 다른 어떤 일들보다 마음이 놓이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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