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미궁
잠깐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려보자.
뭐라고? 내가 확진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12월 30일 목요일 오후 3시.
한창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중에 이상하게 몸이 떨려왔다. 환기 중이던 창을 닫아도 계속 닭살이 돋길래 공부방에 있는 체온계로 체온을 재봤다. 36.9도.
비접촉식 체온계라 보통 35~36도 정도 나오는데 체온이 높았다. 30분만 있으면 수업이 끝나니 수업 끝나고 접촉식 체온계로 다시 재봐겠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마쳤다.
혹시나 싶어 비접촉식 체온계로 다시 재보니, 이번엔 38,4도. 뭐지?
양쪽 귀를 다시 차례대로 재보니 37.9, 38,4도, 2년간의 전염병 시대를 거치며 처음 보는 숫자다. 어쩌지? 십 분만 있으면 다음 수업인데, 그대로 해야 할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검사를 받고 안심하는 게 나을지 고민하다, 아이들에게 급박하게 연락을 돌렸다.
“얘들아 선생님 열이 나서, 일단 PCR 검사를 받고 올게, 미안하지만 오늘은 쉬자.”
선별 진료소는 다섯 시 마감이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집 근처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빨라야 내일 오전이라 그때까지 불안해하지 말고 약국 근처에서 진단키트라도 사서 해보라는 말에,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내일 오전이면 결과 나오잖아. 하고 응수했는데... 진단키트에 두 줄, 양성이라니, 완벽히 예측을 빗겨나갔다.
동선을 정리해보자.
20일 이후 외부 외출이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외부 공간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외부인과 식사는커녕 차 한 잔 마시지 않았다.
동선이라곤 26일 일요일,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다가 정말 너무너무 너무 답답해서 아파트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한 시간 정도 하고 온 것이 전부. 그마저도 사람은 서너 명뿐이었고, 그 추운 날에도 헬스장의 환기창은 다 열려 있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코로나 이후 1년 6개월 만에 예약해둔 미용실에 다녀왔으며 집에서 원래 일정대로 월화수 아이들과 수업을 했다. 심지어 이번주는 컨디션도 매우 괜찮아서, 그동안 미뤄덨던 홈트를 하루도 안 빼먹고 실행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래, 진단키트가 오류일 수도 있어. 내일 오전에 음성이라는 메시지가 올 거야.
심지어 어젯밤에는 딸과함께 연예 대상을 보며 화이트 와인에 각종 과자, 치즈, 과일이 너무 맛있다며 세 번씩이나 리필해서 먹지 않았던가. 코로나19의 이상 증상은 후각과 미각 상실 이랬는데, 이렇게 입맛이 좋을 수가 없었고, 이렇게 컨디션이 좋았는데 그냥 잠깐 몸살이 난 거겠지. 오늘 아침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찬물로 감겨 줘서, 너무 춥긴 했다고. 암시를 걸며, 주문을 외우며 검색창에 진단키트 오류를 검색한다. 오류.. 진단키트.. 음성.. 양성.. 하지만 음성인 경우 양성일 수는 있지만, 양성은 무조건 100% 양성으로 봐야 한다는 댓글들을 보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속되는 발열과 함께 점점 뇌수가 엉키는 기분이 되었다.
38,5도.
약을 먹자, 타이레놀을 먹고, 증상 발현일을 추측해본다.
월요일 아침에 목이 칼칼했다. 마침 일어나 보니 난방 온도가 너무 낮게 설정돼있었고, 어젯밤에 춥게 잤구나 싶어 생강편을 꺼내 먹었다. 딸 등교 전에 생강편 한 봉을 알콩달콩 나눠 먹고, 칼칼한 목이 금방 좋아져서, 역시 생강이 최고야! 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열도 나고, 코도 막히고, 그냥 자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감기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재앙을 가져다준 코로나19라 나는 잘 수가 없다. 만약의 상황 전염병 확진 후, 대응 상황을 시물레이션을 한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나는 맘 편히 아플 수도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딸 학교에 전화한다.
지난 일주일간 수업했던 아이들에게 연락한다.
딸 학원에 전화한다.
격리 시설에 갈지, 집에서 자가격리를 할지 정한다.
남편과 딸이 양성일 경우, 남편과 딸이 음성일 경우 각각의 대처 방법을 구상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수업한 학생 중에서 줄줄이 확진자가 나올 경우, 집단감염의 주범이 되고, 남편과 나, 딸까지 모두 확진되는 것.. 아 이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다음 최악의 시나리오는 수업한 학생들은 다행히 모두 음성, 하지만 나와 남편은 양성, 딸이 음성이 나올 경우, 백신 맞지 않은 딸을 보호하고,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나와 남편이 시설에 들어가면 딸 혼자 집에서 열흘간 격리해야 한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마침 남편은 오늘 점심에 나와 사이좋게 김밥을 나눠 먹었으며, 어젯밤 안주 리필을 하며 옆에서 나란히 나와 같이 잔 사람은 딸 아니던가.
가족들이 모두 양성이 아니라면, 오 신이시여, 정말 이것은 기적입니다!
잠이 오질 않는다.
열이 나고 코가 막히고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다.
인터넷에 있는 온갖 코로나 확진기를 다 읽어 본다.
나처럼 억울한 사람도 많았으며, 억울하다 못해 황당한 사람도 있었으며, 위급하고 다급한 경우, 기저질환, 중증, 온 가족 확진으로 생사를 넘나들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껏 코로나19는 남의 나라 얘긴 줄 알았는데, 지난 2년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전염병으로 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구나 하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났다.
부모가 확진을 받고, 어린 자녀만 집을 지키기도 하고, 부모 확진과 격리가 풀리자 곧바로 아이가 확진 판정을 받아 꼼짝없이 한 달여를 갇혀 지내기도 한다. 돌쟁이 아이와 둘이 독방에 격리되기도 하고, 중증 환자들은 확진 판정을 받는 순간 큰 병원을 갈 수가 없어 애태우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뉴스에서야 많이 들은 얘기였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담은 후기들을 읽어보니, 이렇게나 지옥이었구나, 그리고 이제 내 차례구나, 올 게 왔구나, 우리 가족의 코로나19는 어떤 스토리가 될것인지 예측하지 못할 불안과 걱정으로 하루를 꼬박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