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고민
격리되어 있는 채로, 방문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삼시세끼 주는 밥만 먹고 있는지 나흘 째.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면 할 만하다 생각하기도 했고,
삼시세끼 챙기기에 신물이 난 지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시간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1. 누구나 걸릴 수 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이렇게 덜컥 확진이 되는 걸 보니, 지난 2년간 전염되지 않았던 게 더 신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내가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고 이겨내고 있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가 없어지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 말라는 거 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만 해도 걸린다니! 정말 집에서 꼼짝 말고만 있어야 이 전염병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인지, 그럼 그게 가능하긴 한 것인지? 그렇다면 이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선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2. 생각보다 괜찮았다.
2차 백신까지 완료해서 상태가 나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2차 백신까지 접종했는데 돌파 감염된 운 나쁜 케이스인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19는 상상하던 것만큼 공포스러운 병은 아니었다.
목이 칼칼한 것을 시작으로 하루 반 정도 고열이 있었고, 콧물과 두통. 몸이 불편하고 아픈 것은 이삼일 정도였고, 해열제와 감기약으로 해결되는 수준이었다.
몇 년 전 독감으로 온몸이 부서질듯한 근육통과 코가 헐 정도의 콧물, 고열로 일주일 내내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가벼운 감기 몸살 수준이었다.
3. 예언이 이루어졌다.
지지난주쯤, 나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어디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일주일만 들어가고 싶다! 고 절규했다. 엄마이자 딸, 아내이자 선생님이라는 네 가지 영역을 혼자 다 처리하는데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왜 결혼한 40대 여자 주변엔 여기저기 해결해야 할 일만 산재해있는 것인지. 온 집안 식구들의 뒤치다꺼리와 굶어 죽지 않고, 병 걸리지 않을 정도의 청결을 유지하는 살림을 가까스로 유지하면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살기 위해 얼마나 동동 거리며 1분 1초를 아껴가며 살아야 하는지. 정말 잡다하고 자잘하지만 안 할 수도 없고 내 손을 거쳐야 만 만하는 일들에 토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종의 암시이자 예언이었던 것일까? 기적처럼 진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일주일 동안 있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간의 피로를 좀 내려놓으라는 그분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모든 훼방을 극복하고 온전히 홀로 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전염병에 걸리는 것 밖에 없는 것인지 씁쓸하기도 하고.
4. 이게 최선인가?
2년간의 팬데믹 상황은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고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전염병 한가운데와 보니 여기저기 이해 안 가는 것들이 많다.
인력 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행정시스템의 답답함이야 그렇다고 쳐도 코로나19라는 알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너무 많은 희생을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5.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돌고 돌아 같은 자리다.
나에게 코로나는 증상은 대단치 않았으나 그 이름만으로 치러내고 수습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이상한 병이었다.
제일 좋은 것은 요리조리 잘 피해 안 만나면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고, 앞으로 또 이런 일을 겪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답은 없고, 나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 앞으로 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집에서 소독액을 뿌리며 전전긍긍하다 일생을 마감하게 될까 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