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ㅡ 노을
해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을이 지는 풍경을 좋아해요.
노을이 질 무렵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저녁해가 드리우기 시작하면 오늘 노을의 색을 짐작할 수 있어요.
요즘처럼 하늘이 청명한 때면 해가질 때쯤을 기다리고 있다가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합니다.
해 지는 풍경은 누구나 좋아하는 건 줄 알았어요.
어느 날 친구랑 서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날이었어요. 창밖으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마침 버스 안에서 보게 된 저는 그 풍경이 너무 황홀해 휴대폰을 켜고 연신 사진을 찍어댔지요. 노을만 보면 수선을 떠는 저와 달리 친구는 덤덤했어요. 너무 이쁘지 않냐는 제 물음에 친구는 그저 ‘지는 해를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얘기했어요. 그때, 처음 들었어요. 해가 지는 풍경이 누구에게는 그저 ‘지는 해’ 일 수도 있겠구나. 온 대지를 축복하며 내리쬐는 것 같던 저녁 해의 기운이 갑자기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어요. 주황빛, 분홍빛, 보랏빛으로 물드는지는 해를 마주하며 저는 불꽃놀이 때 보다 더 흥분하다 이내 차분한 마음이 되어 ‘지는 해’를 바라봤어요.
오늘은 마침 지는 해가 아주 장관인 날이었어요.
지는 해를 보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오래 걸었어요.
이어폰을 챙겨 음악을 들으며 천변을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해요. 오늘은 쓰레기봉투를 챙겨 나오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그만 이어폰을 챙겨 나오지 못했습니다. 순간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쓰레기봉투를 챙겨 나오지 않았으면 그 또한 낭패였던 지라 쓰레기봉투는 잊지 않고 들고 나온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어폰으로 귀를 닫고 걸을 때와 달리 들리는 것들이 많았어요. 물론 중간중간 배달 오토바이의 굉음에 깜짝깜짝 놀라긴 했지만 천변을 따라 늘어선 나뭇잎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멀리서 다다다다 뛰어오는 아이의 발소리와 강아지의 목줄이 울리는 소리도 댕그랑댕그랑 들렸어요. 천변의 깊은 웅덩이 쪽에는 새들이 모여들어 한참 부산스러웠는데 각각 다른 종류의 새들이 다른 목소리로 지저귀는 게 신기해서 한참 듣고 있었어요.
어릴 때 습관처럼 동요 ‘노을’을 몇 번이나 불렀어요.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어렸을 때도 이 노래를 부르며 노을을 보곤 했어요. 나이는 어렸지만 해질 무렵이면 이상하게 기분이 말랑말랑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어떤 기분인지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골목마다 밥 냄새가 솔솔 풍기고, 누추한 변두리 골목에 분홍색 노을이 드리울 때면 툇마루에 앉아 한참 동안 마당에 가득한 저녁 공기를 마셨어요. 분홍 노을이 보라색으로, 남보라색으로, 그리고 까만 밤하늘로 변할 때까지 한참씩 하늘을 보곤 했어요. 이맘때쯤 마당엔 라일락 향이 가득했어요. 보라색 꽃이 피는 라일락 나무였어요. 그 아래서 아름다운 계절이 가는 것을 그때 조금 더 봐 두고 기록해둘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천변의 이름 모를 꽃들이 하나하나 예쁘지 않은 것들이 없어요. 마음을 붙잡지 않는 꽃이 없어서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하늘 색깔이 변하는 순간순간이 아쉬워서 오래오래 봅니다. 오늘 같은 바람과 공기는 어떻게든 담아두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 최대한 많이 많이 느껴보려 해요.
걷고 또 걷고, 보고 또 봐도 모자라기만 한 5월이에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왜 이리 짧게만 스쳐 지나는 건지. 오늘도 아쉽기만 한 하루가 가고 있어요.
당신도, 이 계절을 느끼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