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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May 27. 2022

chapter 2. 편지를 보내요

네 번째 편지 - 대치동

“ 엄마, 수업시간에 어떤 애가 책상 위에 실내화를 올려놓고 닦았어. 선생님이 수업 중인데.”    


순간 저는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어요.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이,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앞에 두고, 책상 위에 실내화를 올려두고 닦는 모습이 상상이 안됐기 때문이죠.

이제 중학교 2학년 정도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정도는 알 나이일 테고, 수업 시간에 굳이 설명하는 선생님을 앞에 두고 실내화를 닦아야 할 이유는 뭐가 있을까요?     


“ 애들이 수업 시간에 자꾸 화장실에 가고 보건실에 우르르 몰려 가고, 어떤 선생님 시간엔 너무 떠들어서 혼나다가 수업시간이 다 끝나.”    


올 것이 왔구나 싶었어요. 공부 좀 시키고 싶은 부모들은 절대 안 보낸다는 학군지를 훨씬 벗어난 신생 중학교에 아무 고민도 없이 딸을 보낸 제 탓일까요?


저는 또 도돌이표 같은 검색을 시작합니다. ‘학군지 이사, 학군, 중학교 이사, 중등 이사 등등등’.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검색해 볼 글도 없어요. 저는 어지간한 맘카페와 지역 카페, 공부 카페 등등에 올라온 ‘학군지 이사’와 관련된 글은 다 읽어 봤거든요. 아무리 검색하고 검색해봐도 제가 원하는 답은 열 건 중 한 건이 될까 말까 해요. ‘공부는 자기 하기 나름이에요’란 저의 소박한 바람과 달리 요즘 대한민국에서 학군지 이사는 ‘초등 고학년이 되기 전 늦기 전에, 갈 수 있음 한 시라도 빨리 가라’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영유’나 ‘학군지 이사’가 처음부터 제게 거북했던 것은 이글이글 불타는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그 이름 때문이었는지 몰라요. 서울 변두리, 으리으리한 고관대작 하나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고만고만하게 순응하며 사는 것밖에 배운 적 없는 제게 ‘영유’니 ‘학군’이니 하는 것은 너무 낯설기만 한 말이었으니까요. ‘영유’에 대한 고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학군’에 대한 고민도 저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였어요. 저 잘난 맛에 남들 하는 것 따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도 있고, 내로라하는 영어 유치원과 학군지 진입에 드는 경비도 부담스러웠어요. 어차피 ‘할 놈 할, 애바애(할 놈은 하고, 애마다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면서도 그럭저럭 만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도 아이가 크면서 계속 ‘학군’, ‘이사’를 검색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저는 혼자 독야청정 살기에도 내공이 부족한가 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계속 남들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어요. 대치동과 목동, 분당과 중계, 평촌의 아파트 매매와 전세를 검색하다 관두기가 몇 번째인지 몰라요.


지난주엔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대치동(조장훈)>과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공부중독(엄기호, 하지현)>을 읽었어요.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가장 확실한 영향을 끼치는 학벌은 한국 사회에서 희소한 문화 자본이고, 대치동은 그 학벌 전쟁의 최전선인 대치동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여건에서 이 전쟁을 치르기 위한 곳<대치동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치동으로 대표하는 학군지는 제게 막연한 두려움을 주는 단어였어요. 공부를 잘하면 좋은 것도 알겠지만 공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을 것도 알기 때문에 저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해서 이사 갈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죠.     


대치동에서 20년 넘게 논술 학원을 운영하던 작가의 눈을 통해 본 대치동을  꼼꼼히 읽어보니 아무래도 저는 대치동에서도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 것 같아요. 그것도 아님 딸이 대치동에 어울리면 어떨까 싶은데, 그 또한 자신이 없고요(나중에 딸이 자기는 대치동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쩌죠?)


가만 보면 저는 무엇이든 그렇게 맹목적으로 쫓아 달려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돈, 교육, 명예, 권력... 그 무엇도 갖고 싶어서 안달을 해본 적이 없는 천성을 가진 사람에게 공부 빼고 모든 것을 포기한(공부도 사실 알 수 없음) 대치동 이사가 가당키나 할까요? 어쩜 이건 자식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과 맞닿은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식 교육도 어쩌면 성격대로인지라 맹모처럼 단호한 결단력과 모성애는 제게는 없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맹모처럼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도 못하고, 자식을 대치동에 데리고 가서 최상위로 만들지도 못하겠죠.     


책 <공부 중독>에선 이미 아이들도 이제 더 이상 공부로만 성공할 수 있는 세대가 지났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이미 공부에 중독된 한국 사회에서 그 담론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차마 한 개인으로서는 이 구조에 저항할 수 없다구요. 약간의 저항이라도 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나는 마이너로 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아이들도 불안해한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공부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찾느라 이렇게 ‘학군’, ‘학군지 이사’를 검색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가 일수인가 봐요.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좋은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학군지 이사가 꼭 필요하다는 댓글을 보면서 학군지로 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우리 딸과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요. 우리는 누구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한 채 이렇게 변두리에 남아 있게 된 건가요.


자식에게 최적의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지만 부모가 모든 환경을 통제할 수는 없어요. 만수르 정도 된다면야 최고의 것만 골라 딸애 앞에 차려둘 수 있겠지만 이미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무균실 같은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될 선택에서 저는 ‘최고나 최상위’가 아닌 ‘적당’ 한 것들을 선택하게 되겠죠. 이것도 신념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딴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선택한 결과들이 실패의 기록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요.

학군지 이사 없이 성공한 사례가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의 ‘성공’의 결이 다를 것을 알고 있기에  <대치동>과 <공부중독> 책을 읽고,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네요.

어차피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 그저 각자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응원해주는 사람이 돼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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