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보지 못한 날

백일장 당선작

by 문작

사회초년생 시절, 나는 지역의 ‘인물’을 찾아 방송하는 일을 했다. 방송의 주인공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거나 남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들이어야 했다. 주인공을 섭외하기 위해 지역 신문과 잡지, 인터넷 기사 등을 샅샅이 보았고 대형 매장에 걸린 ‘친절 사원’ 안내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국 소식지에서 ‘칭찬 주인공’으로 선정된 인물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지리산 일대를 돌며 마을 사람들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집배원이었다. 평평한 길도 하루 종일 걷기 힘든데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편지를 배달한다니 얼마나 고될까 싶어 이분이야말로 방송의 주인공으로 딱 맞겠다 싶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우체국에 전화를 걸어 방송작가라고 소개하고 꼭 이 분과 통화하고 싶다고 전했다. 주인공 섭외가 쉽지 않던 터라, 오매불망 그분의 전화를 기다리며 퇴근도 미뤄두고 있었다.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드디어 전화벨이 울렸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방송에 나갈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예상했던 답변이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그대로 전화를 끊을 순 없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말솜씨로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그분은 가족과 상의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했지만, 왠지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음 날, 예상대로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나는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안을 짰다. 구성안은 방송의 흐름을 정리한 대본으로 촬영 전 카메라 감독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료였다. 내 구성안에는 인적이 드문 마을 어르신들에게 아들과도 다름없는 주인공의 모습과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지리산의 가을 풍경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단순히 편지만 건네는 집배원이 아니라 따스한 정을 나누는, 마치 지리산처럼 넉넉하고 푸근한 사람임을 전하려는 의도였다. 현장에서 구성안대로 촬영이 진행된다면 방송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았다.


드디어 촬영 당일. 지리산 초입에서 만난 주인공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고, 마을 어르신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그분을 가족처럼 여기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짐작했던 상황대로 촬영이 이어지자 우쭐해졌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는 그분의 제안에 흔쾌히 따라나선 것은. 평소라면 출연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서둘러 복귀했을 텐데 그날은 나름의 ‘밥값’을 했다는 자부심에 그분의 집까지 따라가 저녁을 거하게 먹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프로듀서의 한 마디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지리산 집배원을 촬영했다면서 왜 그분의 신발을 찍은 장면은 하나도 없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지리산 집배원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산을 타는 건 아니고, 오토바이에 편지를 싣고 다녔지만, 거친 산길과 드문드문 자리한 집을 찾아다니려면 등산화가 필수였다. 그런데 나는 그분의 신발을 보면서도 ‘찍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만난 주인공들에게서 익숙해진 장면만 상상했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자만한 탓이었다.


그날 이후,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일이 술술 풀린다 싶을 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이번에도 ‘신발’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고 나면 하나둘씩 내가 놓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울 방학 때도 그랬다. 독서토론 교사로 일하다 보니 방학은 더 바빠지는데 둘째는 그런 나를 도와주는 든든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임에도 집안일을 척척 해내고 볶음밥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며 엄마도 식사 거르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어른스럽다’ ‘대단하다’ ‘고맙다’는 말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늦게 퇴근해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었냐고 물었다.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먹었어. 이제 혼자 먹는 밥은 지겨워.”


둘째는 아직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그때 20년 가까이 된 집배원의 신발이 다시 떠올랐다. 마치 호루라기를 불 듯 그분의 신발은 익숙해진 일상과 내 곁에 있는 이들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그럼 나는 남편의 얼굴이 평소보다 어둡진 않은지, 아이들의 하루는 어땠는지 학생들의 눈빛은 어떠한지 되짚어본다. 여전히 뒤늦게 ‘신발’을 떠올릴 때가 많지만, 다행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신발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심사평 : <신발을 보지 못한 날>은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모두에게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겉치레가 아닌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읽는 자와 함께 나누는 자를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머물게 하며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무척 행복하고 다정한 일이다.


이 글은 제16회 2충1효 백일장 대회 일반부 장원 수상작이다. 학생 때도 참가해 본 적 거의 없는 백일장 대회에 '신발'이라는 주제에 꽂혀40대가 되어 글을 낼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도 예상 못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된 터라 접수 마감일에 급하게 원고지에 써 내려가서 퇴고도 거의 못한 부족한 글이다. 때문에 주변에서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다고 할 때도 웃어넘겼는데 심사평을 계속 보다 보니 용기가 생겼다.


우리들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대개는 가슴속에서 꿈틀대다 사라지거나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쓴 이 소소한 이야기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 덕분에 축하도 많이 받았고 내 일상도 다채로워졌다. 이런 나의 경험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조약돌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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