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멋졌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8월,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의 일이다.
베트남을 걸쳐 미국을 걸쳐 서울로 돌아온,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눈뜨고 보니 졸업과 동시에 바로 귀국, 건강검진, 그리고 입사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 내린 지 딱 일주일 만에,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의 상징인 새로운 핸드폰을 들고서 전 계열사가 다 모이는 3주 합숙 연수에 입장했다.
같은 계열사 동기들은 이미 거의 두 달 전에 연수를 마치고 사내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
안 그래도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무인도같이 느껴지던 ‘합숙’이란 단어 아래 쭈뼛쭈뼛 어색하게 서울생활을 시작했더란다.
대강당에 지정된 자리에 앉아 인사를 하고,
배치된 우리 팀방으로 올라가 처음 보는 20명들과 함께 3주의 단합을 앞두고 인사를 하니
그렇게 합숙의 첫 장은 시작이 되었다.
한국에 산 적이 거의 없어 언어에 서투를 수 있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또 나이가 조금 더 어려 철이 없는 점에 양해를 구하고,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던 소개도 지나고 나니 괜히 한결 친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정말 하루가 갈수록 점점 더 편해졌다.
3주란 시간 동안 쉼 없이, 또 홀로 됨 없이
공동체 생활을 성실하게 해내며 정말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갔다.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한 건, 소그룹이면 모를까 단체생활은 어렵고 불편하던 내가
우리 총 21명의 소중한 팀을 만나 매일 설레고, 감사했던 기억이다.
와, 한국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밖에 없나 보다, 싶을 정도로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는데 한 명 한 명 너무 소중하고 귀했다.
누구 하나 튀기보다는 다 같이 두루뭉술 잘 어울리며,
또 그럼과 동시에 각자의 장점과 특징들이 잘 살아나 즐거움이 배가 되던,
개인이 가져오는 에너지와 또 팀이 되어 만들어내던 시너지는 정말이지
내 인생에 두 번은 만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멋진 팀이었다.
그렇게 3주란 시간도 끝이 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흩어지고 나뉘어서 서로 다른 계열사, 혹은 같은 계열사더라도 다른 부서, 다른 팀에 배치되고 나니
어느 순간 우리의 끈끈했던 3주간의 시간은 마치 정말 한여름 밤의 꿈처럼 흩어져 버렸더란다.
하나 확실한 건, 나는 그 후로도 계속 그 팀과 그 사람들이 자주 생각나곤 했다.
합숙을 시작으로 그의 연장선이자 본문이던 직장생활이었지만,
그곳을 떠나 직장에 정착하고 난 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또 그런 조합을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회사를 떠났고, 또 새로운 길에 올라섰다.
시간은 바쁘게 흘렀고, 또 빠르게 지나갔다.
무언갈 크게 이루지도 못했는데, 눈 뜨고 보니 나이만 한 살 더 먹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는데,
나를 문프로라 부르며 매일 빵빵 웃음으로 채워주던 팀의 맏오빠가 5월의 신랑이 된다는 거 아니겠나.
고로 오랜만에 우리는 그를 축하해주러 서초사옥, 멋있고 또 멀던, 멀고 또 멋지던 그곳에 모이게 되었다.
자주 오지 않는 역에 내려 그 건물을 바라보며 몇 분 기다리니 같이 만나서 가기로 한 동기가 도착했다.
우리는 그동안 잘 지냈냐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지 못한 채 얼른 식장으로 향했고,
주례와 축가,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과 물론 오늘의 주인공인 오빠와 그 옆에 신부를 보며
팀의 1호를 유부남녀의 세계로 보내는 마음이 괜스레 왜 내가 다 뿌듯하던지.
(연수 중 담력 훈련을 받으러 S1 캠프로 가는 길 동안 가장 어색한 둘을 짝꿍으로 배치하기로 하고선
그 첫 번째 타자로 팀의 맏오빠였던 오빠와 막내였던 내가 당첨돼 나란히 버스를 타고 갈 때만 해도
두 달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씁쓸해하던 오빠의 모습이 선한데,
저기 앞에 멋진 모습으로 아름다운 신부와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부녀회장 본능 납셔서 내가 뭉클하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회사는 잘 다니고요?”
식이 진행되는 동안 박수를 치며, 예쁘다 감탄을 하며
아까 바쁘게 오느라 같이 온 동기와 미처 나누지 못한 인사를 나눌 때면.
“음… 곧 변화가 있을 예정이야.”
“에, 정말요? 진짜?”
박수를 치다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 지금 나이순으로 나가고 있어, 알아? 내가 3번.”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1호, 나보다 한 살 위인 언니가 2호, 그리고 두 살 위인 오늘의 주인공이 3호.
그 날은 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어 식이 끝나고 먼저 왔던 동기들과 만나 밥을 먹고 헤어지면서
나중에 퇴사하고 정리되면 봅시다 정도로 마무리했지만
그동안의 소식과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참 궁금했다.
그리고 정말 나이 깡패란 말이 맞는 것인지, 그로부터 한 한 달 반쯤 후 3호로 그 동기가 회사를 나오면서
우리는 나이 순서대로 1, 2, 3 사이좋게 별 3개 떠 있던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다. 지금쯤이면 눈치를 챘겠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3호로 퇴장한 동기이다.
지난주쯤 이제 정리되었으니 만나자는 반가운 연락에,
그것도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광화문으로 장소를 잡고는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퇴사란 세계는 사실은 외롭고 걱정 근심 많은 땅이라 반갑기도 하고,
또 퇴사란 세계는 그만큼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가 다양한 곳이기에,
그동안 많이 고민하다 결심을 했을 동기의 마음이 더욱 궁금했다.
수요일. 1시. 광화문역.
연수 때도 그랬듯이 우리 팀의 미모를 담당하던 동기는 한결 편안해진,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갑게 인사한다.
나보다 길눈이 밝은 동기를 따라 우리는 그녀가 찾아놓은 맛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이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대화 내용은 첫째, 일과 둘째, 사람으로 흘러가듯이
우리는 수란의 노른자 터트리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대범하게 그 첫 번째 주제를 건드린다.
“어떻게 된 거예요?”
회사를 떠난 사람이라면, 회사에 다니며 겪었을 고민은 비슷하다.
개인의 차이가 있고, 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공통의 언어인듯하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해주는 게 두 가지가 있다면,
첫째는 하고 싶은 일을 좇아 큰 그림을 안고 떠난 것과,
둘째는 이제 겨우 한 달 되었는데 쉬지 않고 그 내에서 살아갈 수 있는 틀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한 달을 어떻게 지냈는지 들어보니
일단 먹고 살 수단이 필요하니 발로 뛰어 과외를 구하고, 또 마침 집에 방 한 칸이 비어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Airbnb에 가입하고, 또 단순히 시작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조사를 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거기다 아버지의 캠핑장 사업을 도와 마케팅을 하고, 또 관심 분야의 강의도 듣고, 수업도 가고, 운동도 하고 - 정말 멋진 동기가 따로 없다.
이 언니, 정말 대단하다.
“거기선 3년 후, 5년 후, 10년 후가 없었어.
3년 후는 내 옆, 5년 후는 내 앞, 10년 후는 저 반대편을 보면 답이 나오는데
그 삶을 보니 그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인지 모르겠더라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입사해
고속도로를 달리지 않고 잠시 갓길에 세우거나 출구로 나가는 이유야 많겠지만,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일 마음으로 끄덕였던 대목인 거 같다.
재밌는 건 1차 면접을 위해 PT를 준비할 때 미리 받은 질문 중 하나가
3년, 5년, 10년 후 당신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는데,
물론 그 당시에는 3년, 5년, 10년 후 회사 내에서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하긴 했다만
그 당시에도 솔직하게 그런 대답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제가 3년 전에는 버클리에 오게 될 줄 몰랐고,
5년 전에는 베트남으로 돌아가게 될 줄 몰랐고,
10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이 중에 그 어느 것도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제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뒤에 몇 마디 더 덧붙였지만, 그래도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오히려 지금의 나보다 현명했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의, 흐름의 순리에 자신을 맡길 줄 아는, 그런 나의 어리고, 철없고, 또 지혜로웠던 시절.
덮밥과 냉모밀을 먹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간다.
다 써 내려가고 마침표를 찍은 한 장이 되니, 그때 그랬었지 – 라며 웃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이 모든 시작의 처음이었던 연수 팀 동기이자 옆방 이웃이다 보니
같은 이야기에도 더 웃고, 맞장구치며, 또 하나의 흘러가는 시간의 기록으로 남긴다.
장소를 옮긴다. 언니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고로 우리는 그 근처에 뭐가 있나, 광화문만의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는 카페를 찾다
거기서 멀지 않은 전통 찻집을 찾아 들어간다.
블루베리 차를 한 잔씩 시키고 주인아주머니가 주신 다과를 먹으며
두 번째 주제인 이야기보따리를 푸니 어느새 우리의 깊이는 한층 더 깊어져 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이야기도 하나둘 꺼낸다.
나보다 훨씬 지혜롭고 현명한 언니 앞에 지나간 사랑의 흔적을 비춰보려 들춰낸다.
“그렇죠, 마음이. 그냥, 괜찮다가도, 아니다가도, 괜찮다가도, 아니다가도…”
지나간 사랑에 있어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건 아픔을 공감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비슷한 이별의 상처가 있는 친구들은
그 공감의 깊이가 훨씬 더 친밀하기에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위로가 되고는 한다.
그래서 그녀 앞에 나의 이야기를 주섬주섬하니
그녀에게도 나와 비슷한, 매우 흡사한 지나간 인연이 있기에 자신의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야기를 듣자니 그 모든 지나간 날들의 그녀의 모습이 내 모습과 겹쳐져서
들으며 위로가 되고, 찡하고, 위로가 되고, 찡하고, 또 그렇다.
“결국은 헤어지고 나서 한 2년은 그 후로도 그랬던 거 같아. 마음이 남아 있는 채로.”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리 길어 보이지 않아도 사실 하루하루가 굉장히 긴 2년이란 시간.
흘러가는 시간과 달리 마음은 그대로인 채 정말 시간만 흘러갔기에 그게 참 괴롭고는 했는데,
원래 깊은 상처일수록 자연치유되는 과정은 길기에 2년이란 말에 위로가 된다.
질질 끄는 것만 같던 이 흉터도 서서히 얕아지다 결국은
‘예전에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넘어져서 다쳤어’ 정도의 기억으로 자리 잡지 않겠냔 기대와.
“근데 언니, 그래도 그렇게 간 사람인데, 그렇게 냉정하고, 그렇게 갑자기 떠난 사람인데,
내가 먼저 자리 잡았으면 좋았으련만…
내가 먼저 좋은 사람 만나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았으련만…”
끝까지 상처가 되었던 거 같다.
홍진경의 도베르만 홍을 뛰어넘는 도베르만 문이던 내가,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라는 한 줄로 잡아보지도 못한 채 그저 알겠다 고개를 끄덕였을 때는,
그래도 그 사람이 먼저 누군가를 만나 더는 내가 알아보지 못하겠는 얼굴로 웃고 있는 모습까진
미처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아니야, 그건 안 중요해. 누가 먼저 만나냐 보다, 제대로 만나는 게 훨씬 중요하지.
나도 그 사람 후로 지금의 사람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길었지만, 그저 그냥 누구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어.
그리고 그러길 참 잘했다 생각해.”
그러고 보니 인생의 많은 것들에 있어 답은 비슷한 거 같다, 속도보다는 방향.
길이나 미래나 일에 있어서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과 관계, 인연에서도 참 맞는 말인 거 같다.
사람을 많이 만나봐라, 다양하게 만나 보라는 조언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조언에 늘 뒤따라왔던 내 마음의 조용한 속삭임은
‘만남은 그렇다더라도, 그 뒤에 따라오는 내 이별은 너무 어렵고, 서툴고, 더딘걸요’ 이었듯,
그래서 마음에 더욱더 깊은 울림이 있다 - 속도보다는 방향.
많은 사람과 다양한 행복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한 사람과 한결같은 행복을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지금 오빠한테 많이 고맙거든,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게 더 느껴지고.
그때 그 친구랑 헤어지고 힘들었던 거, 아팠던 거, 그 마음들을 다 참고 천천히 비워냈기에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 또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게 된 거 같아.”
끄덕끄덕, 맞다.
사실 주변에 너무 많다. 재고, 따지고, 망설이다, 갈팡질팡 헤매는.
정말 좋은 사람을 두고도 너무 많은 마음의 장애물들을 본인이 설치하고선 놓치는 케이스를 많이 봤다.
가끔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정말 좋은 사람이기에,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더욱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괜히 샛길로 새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보고는 했다.
그래서 내 사람을 만났을 때 더욱더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 제대로 감사하고 싶다.
소중하게 품고, 아껴주고, 서로 맞춰가고 배워가며, 깎이고 단련되는 과정을 함께 견뎌내고 싶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위로 중 위로가 되는 건 그럴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든다.
보통 약속을 잡을 때 3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슬슬 대화가 주제 없이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그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무리는 광화문의 꽃인 교보문고에서 한다.
막상 서점에 친구와 함께 오기는 처음이라 나는 이것도 새로운 경험 한 장으로 추가된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즈음을 책을 둘러보고 읽다 따뜻했던 수요일을 마무리한다.
이곳에 담지 못한 그 외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회사, 관계, 또 신앙의 선배로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참 많이 배우며
가장 깊이 새긴 조언은 언니의 마지막 간증이 아니었다 싶다.
‘내가 선택해서, 내 생각과 의지대로 갔을지라도,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참 귀히 만나주시고 사용하셨다.’
빨리, 더 빨리, 자 이제 다음, 또 다음 – 만 외치던 내가
핸들에서 손을 떼고 모래만 휘날리는 광야에서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이 과정에 있어
은보다, 금보다 귀한 확신의 위로이다.
며칠 전 2016년 어노인팅 예배 캠프의 메시지 영상이 올라왔는데,
김재우 선교사님이 그런 말씀을 나누셨다.
“당신은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아름답게 써 내려간, 아직도 다 완성되지 않은,
아직 다듬고 계신, 아름다운 한 편의 시.
당신은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는요,
여러분이 살아온 그 모든 과정도 다 실수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경험한 그 모든 아픔도 다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름다운 시로 써 내려가기 위해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허용하신 아픔인 것이죠.”
오늘 그 메시지가 다시 한 번 마음에 울렸다.
며칠 전 밤, 그 말씀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듯,
오늘 또 소중한 지체를, 잊지 못할 소중한 동기를 통해 같은 마음을 전해주셨다.
그녀는 한 달 전 퇴사했다, #3으로.
입사는 시기 별로 기수별로 나뉘어 반년 차이도 나름의 차이라나 만,
같은 퇴사 아래 선배는 없다. 그저 퇴사 동기일 뿐.
그리웠던 동기, 반가운 동기.
입사 동기로 만났을 때도 참 따뜻했던 그녀는,
퇴사 동기가 되어서도 이 광야를 같이 걸어가는데 참 따뜻한 힘이 될 것 같다.
입사 동기를 퇴사 동기가 되어 다시 만나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4.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