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멋졌다
벌써 2년 전이다.
나는 집이 합정동이라 출퇴근을 합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하고는 했는데,
퇴근하는 길 우리 집 앞 출구에는 늘 빨간 조끼를 입으신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손에 항상 잡지 한 권을 들고선 아무런 표정 없이 (혹은 모두 다 상당히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밝게 말을 건네고는 하셨다.
나는 퇴근만 하면 자동으로 모든 기능이 다 꺼졌기 때문에 지하철역에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빠르고 간편하게 지나치고는 했는데, 물론 그분도 포함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그 잡지 로고를 띄고 있는 소개 글을 보게 되었는데,
읽어보니 그 잡지는 내가 추측했던 그저 그런 아무런 잡지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잡지였다.
빅이슈 (Big Issue) 라는 이름과 표지에 연예인 사진이 크게 실려 가십거리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빅이슈는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잡지였다.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설명을 빌려오자면,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잡지입니다.
사회구조로 인한 빈곤 문제를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해결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홈리스 (Homeless, 노숙인 등 주거 취약계층) 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자활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폴 매카트니, 베네딕트 컴버배치, 데이비드 베컴, 조앤 K. 롤링 등 유명인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지며 현재 10개국에서 14종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http://bigissue.kr/about/%ED%9A%8C%EC%82%AC%EC%86%8C%EA%B0%9C/)
홈리스 중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판매원 신청을 하는 분들에게
2,500원에 잡지를 구매하고 5,000원에 팔아 한 권당 반의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잡지.
그 후 6개월 이상 성실하게 판매하고 저축하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또 그 외에 빅이슈 판매에서 나아가 재취업은 물론 홈리스월드컵, 발레단, 봄날밴드 등
다양한 형태로 이분들의 자활을 돕는 단체였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이자 굉장히 좋은 의도라 생각되었기에
그때부터 횡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고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잡지를 샀다.
그렇게 합정역 7번 출구 아저씨와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아저씨는 정말 따뜻한 분이셨다.
7번 출구 쪽이 그늘이 전혀 없는지라, 여름에는 그 더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운데,
처음 시원한 음료 한 병을 갖다 드린 날 기다리라 하시더니 가방에서 챙겨 오신 빵을 전부 꺼내서 주셨다.
괜찮다고 사양해도 본인은 빵을 안 좋아하신다며 끝까지 손에 쥐여주셨다.
가진 것이 많다 해도 조금을 나누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은데,
고작 음료 한 병에 아마 그 날 끼니로 드시려고 챙겨 오신 빵을 전부 다 주시다니…
그 후로 우리는, 신간 나올 때마다 반갑게 인사드리고 음료 한 병을 드리면
아저씨는 그렇게 뭐라도 하나 꼭 손에 쥐여주고는 하셨다.
그러다 나는 겨울이 다가오기 전, 엄마에게 대신 아저씨에게서 잡지를 구매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미국에 잠시 좀 지내다 왔는데, 돌아와 보니 아저씨가 더는 안 계셨다.
하필 내가 서울을 떠나 있던 그 틈 사이에 아저씨는 합정역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셨더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내리쬐나 지붕 하나 없이 비가 쏟아지나
하루 종일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시며 큰소리로 씩씩하게 외치시던 모습에 나 또한 힘을 많이 얻었는데,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아저씨는 새로운 곳에 취직이 돼 합정역을 떠나셨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아저씨가 오셨다.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나는 그전에 다녀가셨던 아저씨 생각에 이분께 그때 그 마음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인사를 하고, 음료를 건네드리고, 잡지를 사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연스레 밀리고, 또 밀리다,
늘 마음만 굴뚝같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치이고 잊혀졌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닌데, 매번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도 막상 하려고 보면 무슨 이유가 생겼다.
아마 살아가며 많은 일이 그런 거 같다. 연락도, 독서도, 운동도, 효도도
다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결국은 못하고 놓치는 게 더 많은 거 같다.
아무튼, 모든 일의 시작은 7월에 다녀온 교도소 사역이었고, 거기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노숙자 사역을 하는 청년부 언니였고, 그래서 한 달 후쯤 아 이제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서 카톡방에서 연락처를 찾아 보낸 문자와 그렇게 들어가게 된 거리의 천사들 밥퍼 사역과 또 언니가 빅이슈 판매원 옆에서 돕는 ‘빅돔’을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꾸준히 한다는 것을 듣게 된 것.
그것이 계기가 되어 몇 번을 미룬 빅돔 교육을 신청했다.
토요일 오전, 5호선 신정역에 도착하니 역에는 그리 사람이 많지 않다.
안내 문자 보내준 걸 다시 확인하고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니, 마침 내 앞에 빨간 조끼와 빅이슈 잡지가 한가득인 가방을 끌고 가시는 빅판 분이 계신다.
그분의 뒤를 따라가니 혼자 왔더라면 놓쳤을 엘리베이터 입구가 보이고,
내 뒤에는 오늘 같은 교육을 신청한 것 같은 학생들이 “여긴가 봐” 하며 따라 들어온다.
여행사에서 하는 패키지여행을 가면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우르르 움직이듯,
우리는 어느새 아저씨 뒤에 쪼르르 일렬로 서 사무실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사무실에 내리니 들어가자마자 큰 방이 있고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있다.
빨간 조끼를 입은 분들이 중간에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잡지 포장을 하고 계신 걸 보니 빅이슈 사무실 느낌이 난다. 쭈뼛쭈뼛 걸어 들어가서 어디로 가야 하지 하고 둘러보고 있는데,
잡지를 한가득 들고 나오시던 아저씨 한 분이 문 앞에서 몇 발자국 떼지 못한 나와 내 뒤에 학생들을 보고
“저기 앉으면 뎌~” 하고 알려주신다.
그렇게 제일 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우리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기다린다.
한쪽 벽에는 그동안 발간된 빅이슈 표지들이 붙여져 있고, 또 반대편 벽에는 사진들이 여러 장 붙어있다.
그 사이 벽에는 큰 책장과 책이 한가득 꽂혀있다.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서 아저씨들은 서로 대화를 하시면서 열심히 잡지 포장을 하신다.
주말인데도 나와 밝게 열심히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니 이곳은 몇 안 되는 참 행복한 직장인 거 같다.
11시 정각이 되자 옆 방에서 빅이슈 판매국장님이 나오셔서 인사를 하신다.
이전에 빅이슈 관련된 정보를 많이 찾아본지라 얼굴이 친숙하다.
빅이슈에 관한 인터뷰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곳에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로 오시는 분들도 대단하고, 그분들이 다시 일어서실 수 있게 자기의 청춘과 그 외 많은 조건과 환경을 희생 혹은 양보하며 섬기시는 분들도 대단하다.
일은 어느 기업 못지않게 바쁘고 빡센데, 정말 사명과 비전, 가치와 뜻을 가지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는 빅이슈 직원, 아니 가족분들.
홈리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가능케 하는 귀한 사람들이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4명과 나, 그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 하나, 그렇게 6명이 교육을 받는다.
노숙인과 홈리스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가고, 그분들이 처한 상황과 빅이슈가 시작된 계기, 목표, 비전에 대해 듣는다.
홈리스하면 보통 떠오르는 단어들은 더럽다, 게으르다, 알코올 중독, 지하철역, 위험하다 등 안 좋은 인식이 대부분이지만, 그건 너무 치우친 편견이라 알려주신다.
실제로 그렇게 정말 ‘위험한’ 분들은 아주 소수이지만, 그 소수 때문에 그들 모두 한 뭉치로 묶여 그런 시선을 받고는 한다.
우리의 사회는 그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하고,
그런 상황을 개선해보자는 의미에서 거리의 천사들이나빅이슈 같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마지막 교육 과정으로 롤 플레이를 한다. 한 명은 지나가는 행인 역할, 또 한 명은 빅돔 역할.
해야 하는 일은 간단하다.
최대한 차갑고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행인 역할의 사람에게 “빅이슈 신간이 나왔습니다,”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등 간단한 멘트를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던지는 것.
이곳에서 목소리와 태도가 통과돼야 실제 지하철역으로 나가서도 할 수 있다.
지하철역으로 나가 빅이슈를 판매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사회에서 소외된 그들이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홈리스라는 것을 밝히고 또 투명인간처럼 횅하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 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삶에 치이고 지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세상을 바꾸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이 한 줄을 외치기까지 얼마나 목이 메고 목소리가 잠기는지.
새로운 아저씨가 오시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머뭇거리시며 빠르게 스쳐 가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에이, 더 큰 목소리로 해야 해.”
“그렇지! 그렇게 하면 돼!”
우리가 각자 돌아가며 몇 번씩 연습하는 동안 옆에서 포장하시던 분 중 다큐멘터리에서 몇 번 뵌 친숙한 얼굴의 빅판분이 오셔서 코치를 해주신다.
그러고는 우리가 한 명 한 명 다 돌아갈 때까지 흐뭇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그렇게 한 시간이 좀 안된 교육을 마치고 이제 우리는 거리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갈고닦은 씩씩한 목소리로 무장하고 사무실을 나오려는데
아까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잠실역 빅판분이 손에 무언갈 잔뜩 들고선 문 앞에 서 계신다.
“이거 먹어요.”
간식거리가 들은 봉투를 하나씩 우리에게 건네주신다.
뭐라도 하나 주고 싶으신 마음을 받고선, 가진 것과 나누는 것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또 한 번 느낀다.
몇 번이나 좋은 주말 보내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시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배웅해주신다.
“언제든지 잠실역에 와요!”
그 후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합정역으로 돌아와 보니 오늘도 집 앞 출구를 지키고 계신 아저씨가 보인다. 빅이슈 신간이 나왔다며 지나가는 분들에게 행복한 하루 되시라는 말을 한 분 한 분에게 다 건네신다.
마침 이번 달 표지 모델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릭남이라 더욱더 반갑다.
아저씨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는 잡지 한 권을 달라한다.
“아, 잠시만요.”
잡지를 건네주시고는 갑자기 뒤에 가방이 있는 데로 가시더니 그 안에서 무언갈 찾으신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와서 나에게 손을 내미신다.
“지나가면서 받은 건데, 이거 쓰세요.”
안에는 제법 큰 여행용 샴푸와 린스가 들어있다. 미안해할까 봐 지나가면서 받은 거라 거듭 강조하신다.
내가 해드리는 건 지나갈 때마다 덥지 않으시냐는 인사와 신간 구매밖에 없는데,
건네받은 선물에 아저씨의 마음이 잔뜩 담겨있어 부자가 된 기분이다.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많이 한 부자들보다, 가난한 중에서 자신의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처럼,
가진 사람들보다 더 나눌 줄 아는 이들, 이들이 진정한 거리의 천사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실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더운 여름이 가기 전 쩌렁쩌렁한 목소리 한 번 외쳐볼까 한다.
“세상을 바꾸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5. 그들은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