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동네 터줏대감, 대원약국

할아버지(와 애니)는 멋졌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cover.png


우리 외갓집은 서교동이야.

원래 할머니, 할아버지 고향은 대구이지만 우리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인가 그즈음,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 전서울에 올라온 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지내시는데 조금 더 편할 아파트로 한 번 이사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쭉 서교동에 자리를 지키고 있지.


나는 어렸을 적에 베트남으로 이사하기 전 잠시 몇 달 외갓집에서 살았던 기억도 있고,

여름 방학마다 놀러 와서 일, 이주 지내다 간 기억도 있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나오던 그 당시 우리의 천국 맥도날드와

(나는 꼭 맥너겟 해피밀 세트를 시켰지, 그 당시 참 귀히 갖고 놀던 장난감을 모으기 위해)

가끔 할아버지를 따라가던 바글바글한 망원시장,

또 자주 가던 식당으로 치면 집 앞에 가원이란 중국집과 시장 입구에 있는 동경이란 일식집과,

화요일마다 시켜먹던 도미노 피자와 또 식당은 아니지만 가끔 가던 골목길 미장원…

그 후 망원역이 생겨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살기 편리해진 기억도 있고,

한참 후 합정동 쪽으로 상권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동네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 기억도 있고,

예전에 있었던 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또 많이 사라지기도 하고,

이곳도 그렇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옛것은 사라지고 서서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갔더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서교동을 지킨 집이 하나 있는데

망원역과 합정역 사이 그즈음 1층에 꽤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약국이야, 대원약국.

예전부터 할아버지는 우리 중 누가 아파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오거나,

할머니 혈압약을 새로 타와야 하거나, 모기에 물려 모기약이 필요하거나 하면

늘 그렇게 약국 갈 일이 있을 때는 항상 대원약국에 가시고는 하셨어.


2년 전 우리 가족은 베트남과 미국에서 철수하고는 오랜만에 서울에 다 함께 살게 되었고,

동생 학교, 내 직장, 엄마 카페, 교회 등 모든 곳의 중심이었던 서교동 옆 합정동에 둥지를 틀기로 했어.

그래서 덕분에 낯선 서울 중 그나마 친숙한 서교동 근처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

그렇게 동네를 왔다 갔다 할 때면 대원약국을 지나치고는 했어.


첫해에는 회사에 적응하랴, 교회에 적응하랴, 한국에 적응하랴 정신이 없었는데,

살면서 이렇게 추운 겨울은 거의 처음이라 자주 감기에 걸려 동네 병원을 가고는 했었어.

그럼 처방전을 받아 병원 근처 약국에서 약을 타고는 했지.

그 약국은 새로 생겨 깔끔하고, 또 조제도 계산도 빨리 해줬기 때문에 갈 때마다 꾸준히 손님이 있더라고.

그 정도면 장사가 꽤 잘되는 편이었어.


그런데 해가 바뀌고 회사를 나오며 작업실을 카페로 잡고 합정동에서 서교동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

예를 들자면, 나는 혼자 걸을 때는 걸어가는 길에 위치한 가게들을 둘러보며 걷는데,


그렇게 매일 왔다 갔다 지나치며 보게 된 대원약국 안에는 이제 80이 다 되신, 혹은 조금 넘기신,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 어렸을 적 약을 타러 다니실 때부터 2016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시는

할아버지 약사 분만 어딘가 조금 쓸쓸히 약국 안에 앉아 계시더라고.



생겼을 당시에는 서교동에서 큰 약국으로 자리 잡아 몇십 년 동네 장사를 했지만,

그 후 새로 병원이 생기면서 그 밑에 약국이 또 하나둘 같이 개업을 하고,

그렇게 그 옆에 약국들이 하나둘 너무 많이 생겨버리고,

새로운 공간에 더 깔끔하고, 일 처리가 더 빠른 곳들로 사람들이 하나둘 빠지다 보니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면 할아버지 혼자 공간을 지키시는 날들이 더 많더라고.


나는 성격도 급하고 마음이 넓은 편도 아닌데

괜히 그 광경에 내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라.

저러다 어느 날 대원약국마저 없어져 버릴까?

그러면 이 장소에는 새로운, 또 낯선 다른 무언가가 들어오게 될까? 그런 불안함 말이야.

나는 한결같은 편안함, 또 오래 자리를 지키는 것들을 중요시하고 또 존경하기에

대원약국도 없어지려나 생각하니 괜히 내 마음이 씁쓸하더라고.

한평생 이 동네에서 약사로 살아오신 삶과,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던 동네 약국의 위엄이,

결국 이것조차, 이것마저 다 사라질까 봐 말이야.

한순간에, 마치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인생에 비록 아주 작은 조각일지라도 없어진다는 것이 어딘가 쓸쓸해서.



우리 할아버지가 자주 들리시던 약국.

그리고 할아버지는 떠나셨지만 이 자리에 여전히 남아있는 약국.

그 약국이 없어지는 게 싫어서,

할아버지가 한 조각 더 사라지는 거 같아서.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래서 그즈음부터 약국에 갈 일이 있으면 (혹은 2% 정도는 일부러라도 갈 일을 만들어서)

처방전은 집 옆에 병원에서 받아도 약은 한참을 걸어서 대원약국에서 타고는 했어.

전에 가던 새로 생긴 동네약국에서는 아침/점심/저녁 약 표시도 다 봉지에 프린트해서 주고는 했는데

여기선 할아버지가 손으로 직접 아침, 점심, 저녁을 쓰시는 걸 기다리며

느긋함과 여유로움, 그런 걸 배운 거 같아.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감기가 3주 동안 떨어지질 않아서 결국 병원에 들러 받아온 처방전을 건네니

할아버지가 한 번 쓱 보시고는,


“약 두 개가 없네요. 미안해요…”


위층 병원과 아래층 약국이 미리 오더를 내고 특별히 관리하는 시럽이 하나 들어있었기에

그 날 나는 그 근처 약국들을 다 뺑뺑이 돌다가 결국 다시 병원 1층에 있는 약국으로 돌아가야 했어.

좀 바보 같기는 한데, 그래도 뭐 그래 봤자 30분이었을 텐데

더워서 땀이 줄줄 흘러도 마음은 괜히 편하더라고.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얼마 후 다시 들른 대원약국에 턱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치과에서 받아온 처방전을 건네고는

혹시나 이 약도 없으려나… 하고 조마조마했는데

이번에는 처방전을 들고 뒤에 약이 있는 곳으로 가시더라고.

그래서 다행이다, 하고 둘러보는데 갑자기 왈! 하더니 의자에서 뭐가 불쑥 일어나는 거야.


“깜짝이야.”


그동안 몇 번 들락날락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말티즈와 섞인 것 같은 갈색 푸들이었는데 털이 의자 색깔이랑 똑같고,

다시 앉는 자세를 보니 평소에는 완전히 의자와 한 몸이 되게 누워있어서 전에는 본 적이 없는 거였더라고.

약을 들고 다시 계산대로 오시는 할아버지에게 여쭤봤지.


“에, 강아지가 있었네요?”

“아, 하하, 가끔 여기 와 있어요. 집에 아무도 없으면 혼자 짖으니까.”

“이름이 뭐에요?”

“애니, 애니에요. 애니야.”


그렇게 할아버지가 이름을 부르시니 한 번 쳐다보고는

도도하게 다시 누워 의자와 한 몸으로 합체하던 애니.


“통통한대요?”

“비만이에요, 비만. 살이 너무 많이 쪘어.”


그렇게 애니는 내 뒤에 손님이 들어오니 한 번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는

도둑놈은 아닌가 보다 싶으면 다시 의자와 한 몸이 되고,

도도한 그 녀석의 자태가 어찌나 재밌던지.



그런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었어. 그저 가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처방전을 들고 가는 것뿐.

그래도 마음은 좋은 거 있잖아, 왠지 이 조각 하나는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나서 남긴 몇 안 되는 조각 중

그 하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으니까.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여기 처방전이랑, 할머니가 오늘 눈약 들어온 거 같이 받아오라 하셨는데.”

“아, 할머니 성함이?”


지난주에 손가락이 아파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전날 할머니가 시키신 눈약이 내일 들어온다고 해서 내 약 받아오는 김에 할머니 약도 같이 받아왔거든.

그래서 처방전을 드리고 약을 기다리는데,


“얼마에요?”


글쎄, 할머니가 우리 손녀가 일부러 대원약국에 와서 약을 타간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곤

계산을 하려는 내게,


“2,300원인데, 허허, 2천원만 줘 학생.”


우리 엄마는 옆에서 아니 약값을 깎아주시냐고 그러고,

그렇게 할아버지, 나, 엄마 우리 셋은 그 몇백 원에 몇만 원의 웃음이 오가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보면 그래. 사는 게 참 별 게 아니야.

“빨리,” “다시,” “더” 외치던 걸 멈추고

조금 느긋하게 걸으며 여기, 저기 관찰하며 흡수하고

오늘도 눈으로, 마음으로 하루를 기록하고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더 큰 웃음으로 보답받는 거.

살아보니 그렇더라. 행복이 참 별것 아니더라고.



인생에 작은 조각일지라도 없어지는 것은 늘 아쉬운데,

대원약국은 오래, 계속 그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아이가 왔다 갔다 처방전을 들고 가는 그 날까지.

예전에, 옛날 옛적에,

우리 왕 할아버지가 항상 여기서 약을 받아가셨다면서 말이야.


대원약국,

지금처럼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세요.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6. 할아버지(와 애니)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cover.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 빅이슈,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