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는 멋졌다
“그럼,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싶지.”
한 일 년 전쯤이었던 거 같아.
회사에서 같은 층 옆 부서에 일하던 선배와 교회에 같은 셀 안에 있던 언니를
만나보라고 소개팅을 주선해준 적이 있어.
“나한테 너무 과분한 사람 같은데…”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한 번 만나보세요, 둘이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아니면 좋은 친구 하면 되죠.”
사실 그 당시에는 언니랑도 선배랑도 별로 안 친했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되게 뚱딴지같고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
근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보고 싶다는 언니의 말에 그 순간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그 선배가 떠올랐고,
둘 다 좋은 사람이고, 둘 다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만나 보면 좋겠다 싶어 그렇게 연결을 해준 거야.
“그래요, 그럼 만나볼게요.”
“좋아, 만나보면 되지.”
그렇게 둘은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딱딱 들어맞아서 만나게 되었어.
언니가 북촌에 한번 가보고 싶다 했는데, 마침 우연히 선배가 북촌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서
만나기 전부터 느낌이 좋다고 하더라고.
그러고 첫 만남에서 서로 마음에 들어했으니 그 정도면 성공적이었어.
사실, 그때 내가 둘을 잘 알지는 못했기에
성격이, 취미가, 생활이 잘 맞을 거 같다고 다 생각해서 따져보고 맺어준 건 아니었는데,
좋은 사람 둘을 소개해주니 서로 또 잘 맞아서 좋아하더라고.
그렇게 잘되려나 보다 했어.
근데 한두 달 정도 지났나?
우연히 언니랑 얘기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는데, 선배랑 더 이상 연락을 안 한다는 거야.
나는 둘의 첫 만남 이후로 그사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됐는지 몰랐어.
왜,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까 언니 말이 그냥 흐지부지 그렇게 됐대.
흐지부지 연락이 끊겼다 하더라고.
선배랑 좀 더 친했으면 내가 중간에서 물어봤을 텐데
정말 그냥 옆 부서에 한 번 프로젝트를 같이 한 회사 사람이었기 때문에 물어보지도 못하고,
속으로 그냥 몇 번 더 만나보니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하고 언니한테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라며 넘겼지.
둘 다 좋은 사람이라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는데.
그렇게 그 둘의 인연도 끝인 줄 알았어.
근데 또 그로부터 몇 주 후, 우연히 다른 일 때문에 선배한테 연락했다가
어쩌다 자연스레 언니 얘기가 나와서 더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날 거라고 그랬더니 그게 아닌 거야.
얘기하다 보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시기를 놓쳐버린거였더라고.
나는 같은 층에서 그 선배의 삶을 봐왔으니까 바쁘다는 말이 실제로 얼마나 바빴다는 건지 알았거든.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이상, 타이밍이 엇갈려서 엇갈려버린 그 둘의 마음을 알게 된 이상
그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운 인연 같았어. 그래서 오해를 풀어주었지.
그것도 쉽진 않았어. 서로 감정이 상했을까 봐, 조심스러운 성격 탓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다가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언니가 다시 연락해서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어.
그리고 이제는 오해가 풀렸으니 그렇게 다시 잘 만나는 듯했지.
그즈음에 나는 잠깐 해외에 나갈 일이 생겨서 둘이 잘 되겠다는 좋은 느낌으로 마무리를 하고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지 않았어.
근데 또 사람 인연이 그렇게 쉽지 않더라.
오해가 풀리고 몇 번 더 만나는 거 같더니, 또 서로 타이밍이 안 맞았던 거야.
한 명의 마음이 조금 더 빨리 깊어졌고, 그 속도를 상대가 따라와 주지 못하니 혼자 결론을 내리더라고.
뒤늦게 상대방은 마음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다른 쪽은 아닌 거 같다는 결론을 내린 후.
그렇게 복잡하더라. 결국, 둘은 잘되지 않았어.
그래서 결국 한 반년 간의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여정의 끝에 둘은 더는 만나지 않기로 했어.
나는 마음이 없는데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애매하게 구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인연이 아닌 거로 굳혔다면 자꾸 시간을 끄느니 마음이 적은 사람이 정리하는 게 맞다 생각했어.
한쪽만 마음이 계속 깊어지고 있었거든,
한쪽만 미련을 정리하지 못한 채 붙잡고 있고.
그런데도 애매하게 시간을 끄는 건 조금 이기적이잖아, 사람의 감정과 마음이 달린 일인데.
둘이 처음 만난 게 여름이었고, 마지막으로 만난 게 겨울이었지.
그렇게 그사이에 해가 바뀌고 그게 정말 끝인 줄 알았어.
그 후로 또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선배랑은 연락을 안 했기 때문에 그사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언니랑은 계속 마주쳤기 때문에 그저 언니는 아직 특별한 누군가가 없다고만 알고 있었어.
한 달, 한 달 시간이 가고 그사이 인연을 찾으려는 노력은
쉽게 풀리지 않더라고, 사람 일이 다 그렇듯이.
근데 있지, 여기서 재밌는 일이 일어난 거야.
언니가 가끔 “그때 그 사람이 인연이었을까?”라는 말을 하고는 했는데,
그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했는데,
그러다 정말 그 둘이 처음 만난 날로부터 한 일 년쯤 후
그 둘이 다시 마주친 거야, 우연히 길에서.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서울은 생각보다 좁으니까. 나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거든.
작년에는 가족끼리 식사하러 갔다가 차가 밀려 있어서 입구에서 내리지 못하고 저 끝에서 내렸는데
우연히 마침 고등학교 동창도 식당을 나오던 길에 입구가 아닌 그 끝에 서서 일행이랑 대화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6년 만에 마주치기도 하고
(꽤 넓었기 때문에 만약에 내가 입구에서 내렸다면 서로를 보지 못했을 거야),
또 그전에 고등학생일 때는 여름방학에 학원을 다니다가
그날도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데
혹시 베트남에 살지 않았냐며, 10년 전 초등학생 시절 주말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가 알아보기도 하고
(나는 그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어, 옆 반이었다는데 어떻게 나를 기억했나 몰라)…
아무튼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어서 나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는데
그들에게는 단순히 “그럴 수도 있지”의 만남이 아니었던 거 같더라고.
언니는 친구랑 지하철역에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고,
선배는 친구랑 지하철역에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고,
그렇게 서로 스쳐 갔는데 언니만 보고 선배는 못 본 거야.
사실, 마음이 없었더라면 그저 얼른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그날 저녁 언니가 나한테 연락이 왔어.
그런 일이 있었다며, 너무 신기하다고.
그다음 날 교회에서 언니랑 마주쳤는데 너무 신기하지 않냐며 또 이야기하더라고.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선배가 친구랑 같이 있어서 못했다면서.
그래서 내가 대신 선배한테 오랜만에 연락해 물어본 결과
그 날 그곳을 지나친 건 선배가 맞았고, 옆에 있었던 사람은 그냥 친구였고.
그렇게 둘은 일 년 만에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었던 거야.
인연이 참 신기하지.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그렇게라도 다시 만나게 되나 봐.
이미 그 전에도 몇 번을 만났다 엇갈렸다 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만나게 되는 그 둘은 보고 신기했어.
그리고 그전에 아닌 거 같다던 태도와 달리 언니의 마음이 많이 열려 보였기 때문에 선배한테 말을 해줬지.
사실 어제 언니가 선배를 우연히 봤다고 연락이 왔다고.
그래도 난 그때까지도 확신은 없었어.
정말 이 둘을 다시 이어주는 게 맞는 걸까?
대충 넘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우와, 신기하다로 정리해야 하나 했는데
언니가 선배를 봤다는 말에 선배가 한 대답이 마음에 남더라고.
“올라오면서 봤다고요? 나는 왜 못 봤지.
내가 봤으면 잡았을 텐데.”
그 말에 마음이 정해지더라. 아, 아무래도 다시 이어주는 게 맞는 거 같다고.
“아, 그렇구나” “그랬구나” 정도의 반응이었으면 더는 상처가 되지 않게 말려고 그랬는데,
“잡았을 텐데”라는 선배의 말에 말해주었어.
혹시 여전히 마음이 있는 거라면, 한 번 연락해 봐도 괜찮을 거 같다고.
“근데 선배는 계속 언니 생각이 났어요?
그때 마지막으로 보고 그 이후로도?”
그 당시 마음이 깊어졌다 하더라도
마음이 계속 깊이 남았으리란 보장은 없잖아.
사람은 또 지나가면 잊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니까.
처음 봤을 때로부터는 한 일 년, 마지막으로 본 것으로부턴 한 반년,
그사이에 많은 감정들이 오가고 변했을 테니까,
궁금해서.
처음에는 비밀이라고 말을 안 해주더니
결국 그 날, 대화를 마무리하기 전
그 질문에 그런 대답을 남기더라.
사실 생각은 했는데, 용기는 없었고
혹시라도 한 번만 더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진짜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앞으로 둘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잘될 거 같기는 한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이제 정말 내 손을 떠났다는 생각뿐, 그 외에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둘이 잘됐으면 좋겠어. 그 선배가 정말 멋진 사람 같거든.
선배가 그랬단 것처럼, 이번에는 언니가 그런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
서로 함께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나를 마음에 품고, 생각하고,
한 번의 기회가 더 온다면 - 이란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아. 내가 살아보니까 그래.
한 번만 더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진짜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니까
이번에는 둘이 서로를 정말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 인연이
기적처럼
기적 같고
아니, 기적이니까.
그 어려운 걸 둘이
해내고 있으니까.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7. 그와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