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작가 노희경을 듣다

그녀는 멋졌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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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대학로에서의 만남이었다.


몇 주 전, 엄마가 관심 있으면 신청해 보라 보내준 링크를 따라 들어가,

비어있는 칸에 문장을 하나둘 채워 넣고 접수한 후 잠시 잊고 지냈다.

무어라 써야 할지 몰라 지금은 그저 여럿 중 (아니, 바다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은) 하나인

아무개 작가 지망생이지만, 훗날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인 작가가 되고 싶다고 써내었던 거 같다.

유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문구였지만 얼마 후 합격했다는 문자가 왔고,

한국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 작가를 만나게 되 설렘을 가득 안고 기다렸더란다.


8월 25일, 목요일 오후.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눈앞에서 타야 하는 버스가 지나가 버린다.

어차피 그다음 버스가 3분 후면 도착한다고 나와 있었기에 여유롭게 버스를 보내고 기다리지만

두 번째로 도착한 버스가 긴 버스의 대열 뒤에 묻혀 내가 보지 못한 사이 정류장을 떠나 버린다.

결국, 적당히 오랜 시간을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다른 버스를 타고 내려 헤매다 도착한 대학로.

과연 명성대로 이미 본 강의실 안에 좌석은 다 차있었고,

안타깝게 한 10명 앞에서 잘려 나와 내 뒤로 온 나머지 100명 정도의 사람들은 스크린 앞에 앉는다.

두 번째 버스만 놓치지 않았더라도 멀리서나마 직접 보고 들을 기회가 되었을 터인데,

어쨌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나마 스크린 앞자리라는 걸 감사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다.


노희경 작가.

작가 노희경.


29살에 데뷔를 했다. 생각보다 이른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부터 그 누구보다도 많고 다양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왔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 이후로부터의 대표작만 꼽아도 2008년도의 “그들이 사는 세상,”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2013년도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2014년의 “괜찮아, 사랑이야” 및

최근작으로 올해 방영한 “디어 마이 프렌즈”가 있다.

정말 꾸준하게 글을 쓰고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라 그 외에도, 그 전부터 집필한 작품이 워낙 많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은 그러하다.

그 누구보다 사람 이야기를 잘하고, 자기만의 섬세한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노희경이란 이름 석 자에는 신뢰와 기대가 담겨 있다. 대단한 업적이다.


나는, 그녀가 인생을 바라보는 그 섬세한 시각에 대해 듣고 싶었다.


전에 회사를 다닐 때, 부서 안에 여러 팀장님이 계셨다.

그리고 팀장님마다 고유의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계셨다.

어떤 분들은 기획서의 틀, 전체적인 흐름을 잡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계셨고,

어떤 분들은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채워가고 맞춰가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계셨고,

또 어떤 분들은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계셨다.

노희경 작가는 세 가지를 다 충족하지만, 특히나 마지막 기준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뽐내지 않나 싶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다.

두 달 전 만났던 다른 작가분과는 다루는 매체도 다르지만, 또 매우 다른 매력을 표현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가 더욱 듣고 싶었다.


4시가 조금 넘으니 짧은 머리에 흰 남방과 찢어진 청바지 차림의 작가님이 들어오신다.

그리고 토크콘서트는 얼마 전 종영한 “디어 마이 프렌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케이블에서는 5%만 넘기면 성공이라 하는데, 될지 안 될지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었던 소재로

8%란 시청률을 끌어올렸으니 본인이 가장 시도하고 싶었던 작품에 뿌듯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과정,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또 손꼽히는 명장면들이 탄생하기까지의 어려움과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해 주시면서 드라마 작가의 미덕으로서 짚은 세 가지가 관찰, 겸손과 협력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같은 사물을 다루더라도 그 시각의 차이는 있다. 옳은 말이다.


관찰에 있어 작가는 전체적인 숲을 보고, 또 그 안에 하나하나의 나무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즉, 환경, 상황, 사물, 주제를 넓게 보고 훑는 능력도 중요하며,

또 그 속에 파고들어 디테일을 잡아내는 능력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 둘을 골고루, 적절히, 알맞은 균형을 맞춰가며 이루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신다.



또 자기 것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의견을 들을 줄 알고 모르면 모른다 할 줄 아는

열린 마음과 배우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간혹가다 자기가 쓴 대본과 배우가 생각하는 해석이 다를 때 무조건 대본대로 하라고 하지 말고

작가의 대본대로 한 컷 찍고, 배우가 생각한 대로 한 컷 찍고 더 좋은 그림을 비교해보고 사용하면 된다.

이는 감독의 관점과 작가의 관점이 다를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각자 생각하는 그림들을 놓고 여럿이 모여 무엇이 더 나은지 보고 투표하면

사람들의 마음에도 가장 아름답게 다가갈 장면이 선택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신다.


특히나 드라마의 경우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여러 시각을 합쳐 만들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에,

감독, 작가, 배우, 그리고 그 외 스텝들의 합이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신다.

그 합을 잘 맞추는 것이 작품의 비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작가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덧붙이시는 것은

쪽대본 문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고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본을 제시간에, 아니 일찍 넘기기로 유명한 분으로 이 문제에 있어 확고하게 짚어주시기를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라 하신다.

미리 쓰고, 일찍 쓰고, 시간에 맞춰 쓰는 것은 습관의 문제이지

창작의 고통으로 덮어버리는 문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가만 창작의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독, 배우, 모두 저마다의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에

대본을 제시간에 맞춰 일찍 넘겨주어야 그들도 그들의 몫을 충분히 고민하고

고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충고이자 조언이다. 진정한 협력에 필요한 첫걸음이다.


노희경이란 이름 석 자가 지금의 명성을 갖기 전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교육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선생님이 이제 더는 대본을 들고 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쓰고, 다시 쓰고, 또 쓰셨단다.

그렇게 꾸준히 쓰고, 매일 쓴 세월이 오늘의 거름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24시간 글을 쓰겠다거나, 시간계획표를 짤 때 하루에 2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다 글을 쓰겠다

하면 오히려 지치기 마련이니,

충분히 자고, 충분히 먹고, 꾸준히 매일 쓰는 것이 장거리 여정에 더 중요하다 하신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는 가장 기본적이자 또 그래서 그만큼 가장 중요한 거름은

매일의 힘, 꾸준함의 힘, 한결같음의 힘일지도 모른다.

매일 쓰고 꾸준히 쓰는 것, 그것은 이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지망생들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겠다 한다.

형태가 바뀌어도 가족은 영원할 것이고, 고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게 노희경이란 사람이 보는 인간과 삶에 대한 고민이 담길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창조의 끈을 놓지 않는 그녀는 작가를 뛰어넘어 창작자이다.

인생을 보는 그녀의 관점. 인간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 또한 삶을 그려내고 묘사하는 그녀의 필력.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작가 노희경만의 섬세한 시각 덕분에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이 웃고 울지 않았나 싶다.



노벨 문학상은 “이상(理想)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께” 수여하게 된다.

보통은 특정 작품보다 그 작가의 일생을 거쳐 나온 인생에 대한 인정이라 알고 있다.

만약, 이상적인 방향으로 드라마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께 수여하는 상이 있다면

노희경 작가가 가장 먼저 손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그러할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서도 그러하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10.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작가 노희경.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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