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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Oct 07. 2016

네가 가득한 곳에 다시 들어서도

다 괜찮아지면, 이번에는 정말 다 괜찮아지면



“안녕하세요”


그곳으로 돌아가 계획한 여정 중 일주일만이 남았던 시점에

떠나기 전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방학이라 조용해진 캠퍼스를 가로질러

학교 근처에 식당을 하시며 학부 시절 많이 챙겨주셨던 분께 인사드리러 갔었어


‘오늘 우연히 들렀어 그 집

그러고 보니 우리 참 많이도 찾아다녔다’


“어, 어 잘 왔어”


확실히 연휴라 평소 꽉 차던 식당이 한가하더라고

덕분에 나는 카운터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어

그러고는 가방을 내려놓고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이

그 시절 항상 시키던 음식을 부탁드렸지


‘가는 동네 집집마다 우리

같이 꼭 붙어먹던 그 음식 추억들뿐인데’


“그 친구랑 같이 안 왔어?”


주방에 오더를 내시고는

나도, 그분도 눈치채버린 어색한 빈자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먼저 물어보시더라고

너는 같이 안 왔냐고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오랜만이죠 잘 계셨죠’


“네, 오늘은 저만 왔어요”


일 년의 3/4 이 흘러

계절이 두 번이나 지나고 뵙는 건데

한국은 어떤지, 회사는 어땠는지 소식도 나누고

이곳은 어떤지, 학교는 어땠는지 얘기도 나누려면

할 얘기가 많겠다 싶었으니까


‘오늘은 그냥 친구랑 왔어요

아니에요 헤어진건 아니에요’


“이제, 안 만나나?”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려

심사숙고 끝에 단어를 고르고 또 골라 물어보신 건데

이별에도 과연 완곡어가 있을까

어떤 말로 포장을 해도

이별은 이별이고, 아픈 건 아픈 거니까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나요

목으로 넘어가질 않아요

오늘은 정말 친구랑 온 거예요

다음에 꼭 같이 올게요 우리’


“그래, 자네 아직 어리잖아

또 만날 기회가 많을 거야”


생각보다 많이 놀라신 거 같았어

네가 없이 나 혼자 돌아왔다는 게

두 계절 전에는 널 보러 내가 돌아갔던 것이었으니까

두 계절 후에는 널 보지 못하는데도 내가 돌아갔다는 게


‘여전히 널, 여전히 날

또렷이도 아시더라’


“자, 주문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놀라셨나 봐

얼른 주제를 마무리하려 하시더라고

내가 너와 같이 밥을 먹으러 오던 시절, 그분도 아셨던 걸까

널 바라보던 내 마음의 깊이를


‘하나 변한 게 없어서 괜히 속상하더라

우린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잘 먹겠습니다”


늘 먹던 걸 시켰으니까

늘 골라내던 당근을 골라냈고

늘 같이 오던 네가 없으니까

늘 골라낸 당근이 그대로 그릇에 남겨졌고

그래도 난



‘네가 좋아했던 떡볶이집

우리가 항상 먹던 팥빵집’


“그게 제일 맛있어?

시간이 지나도 항상 같은 걸 시키네”


‘한 번쯤 그냥 이렇게 와보고 싶었어

모든 게 선명해서’


“다른 데서는 이 맛이 안 나더라고요

한국에 없어서 여기까지 왔네요”


그래도 난

그래도 난 괜찮았어

오히려 한 겹 더 강해진 거 같았어

네가 가득한 곳에 다시 들어서도

이제는 그 공간에 머무를 수 있어서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나서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어’


“좋은 사람 만날 거야

걱정 말아”


‘오늘은 그냥 친구랑 온 거라고 했어

꼭 다시 오겠다고 너랑’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나오던 내게

다른 위로는 필요 없었어

그저 따뜻하게 내주신 음식 한 그릇과

다 괜찮을 거라는 오랜 인생에서 우러나오는 지혜


“건강하세요 권사님

다음에 또 올게요”


그 약속을 한 지도 벌써 네 번의 계절이 지났네

그 약속을 지키러 갈 시간이 다가온 거겠지


‘꼭 다시 오겠다고 너랑’


다 괜찮아지면

이번에는 정말

다 괜찮아지면





Reference. “이별 맛집,” 소심한 오빠들 (feat. 볼빨간 사춘기)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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